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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2007-0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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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클럽 경력/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ffe500 박지성의 클럽 경력}}}]]
2007-08 시즌
박지성
2007-08 시즌
파일:3357(07-08).jpg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13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 (07-16).svg
선발 8경기 교체 4경기
1득점 1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선발 4경기
1도움
파일:facup.png
선발 2경기
합산 성적
선발 14경기 교체 4경기
1득점 2도움

[clearfix]

1. 개요

박지성의 2007-08 시즌 활약을 정리한 문서.

2. 업적


2007-08 시즌: 18경기(선발 14경기) 1골 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2 8 4 1 1
챔피언스 리그 4 4 0 0 1
FA컵 2 2 0 0 0
합계 18 14 4 1 2

3. 프리미어 리그

지난 시즌의 장기 부상으로 인해 시즌 초중반을 재활에만 전념했다. 리그 19라운드 선더랜드 전에서 복귀전을 치렀으나 초반 몇경기에서는 장기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볼터치가 약간 세밀하지 못한 점은 있었다. 문전침투나 수비가담으로 여전히 활발한 스타일은 유지하였다.

2008년 3월 8일에 치러진 풀럼과의 리그 28R 경기에서 폴 스콜스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 선제골을 터트리며 부상 복귀 8경기만에 골 맛을 봤다. 경기는 3:0으로 맨유가 승리했다.

이후 4월 6일에 펼쳐진 미들즈브러와의 리그 33R 경기에서는 카를로스 테베스와 교체되어 출전하자마자 루니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면서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하기도 하였다.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4. UEFA 챔피언스 리그

2008년 4월 2일에 펼쳐진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 AS 로마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후반 웨스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웨인 루니의 골에 기여하면서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1:0 (총합 3:0)으로 맨유는 4강에 진출하였고,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3번 진출하는 기록을 이루어냈다.

특히 4월 23일과 29일에 펼쳐진 메시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4강 1,2차전에서 모두 선발 출장하여 공수에서 활발히 뛰어다니면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어[1] 맨유의 9년 만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우게 되고, 이로 인해 아시아 선수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출전에 대한 희망이 커진다. 퍼거슨과 박지성의 인터뷰 등을 보아할 때 모두가 최소한 출전 명단에 박지성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대한민국 온 동네가 치맥을 대기하고 기다리던 날...

그러나 퍼거슨은 박지성을 명단 제외시키면서 오언 하그리브스를 선발 출장시켰고, 하그리브스가 좋은 활약을 하며 우승에 일조했다.[2]
파일:20201127_235518.jpg
그래도 트로피는 마침내 들어올렸다.[3] 하지만 우승 공헌도 순으로 30인에게 증정되는 우승 메달은 받지 못해 국내에서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4]

5. 총평

부상에서 돌아온 후 오랜 휴식으로 인한 적응을 거치며 점차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시즌 중반부터 팀에 투입되어 프리미어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의 중요한 대목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

또한, 2006-07~2007-08 시즌에 선발 출전했던 모든 경기에서 26전 23승 3무를 달성하여 맨유의 행운의 마스코트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 그 해 많은 언론사에서 2차전 결승골을 기록한 스콜스와 함께, 박지성에게 최고 평점을 부여하였다.[2] 아이러니한건 이 시즌 이후로 하그리브스는 장기부상을 여러차례 당하며 사실상 축구선수로서의 커리어가 끝나고 만다.[3]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으며 2023년 현재까지도 챔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 선수는 박지성이 유일하다.[4] 스콜스도 98-99 챔스 결승에 출전하지 못하여 메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2008-09 3R 첼시전 이후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메달이 늦게 수여된 것은 분배 과정에서 구단끼리 조율을 하느라고 늦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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