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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공용 군사지도 표기규약인 APP-6A에 따른 아군 보병 반여단 표기[1] |
1. 개요
半旅團, Demi-Brigade반여단은 프랑스 혁명 전쟁 이래로 프랑스군이 사용해온 편제 단위이다. 반여단은 프랑스 혁명 전쟁 초기 봉건적 의미를 내포한 "Régiment(연대)"라는 단어를 대체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1803년 나폴레옹의 지시로 반여단들은 다시 연대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후 일부 부대에서 반여단 명칭이 다시 사용되었다.
2. 역사
1792년의 대오스트리아 선전포고 이후 프랑스군은 지속적인 열세에 놓여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793년 8월 말 라자르 카르노가 Levée en masse(대량 징집)을 도입하였고, 곧이어 보병부대를 통합하는 법률이 통과되어 1794년 최초의 반여단이 창설되었다.프랑스 혁명군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통일성 부족이었다. 프랑스 혁명군 보병은 크게 3종류로 나뉘었고, 각각 피복, 임금, 장비 수준이 달랐다. 프랑스 왕국군을 전신으로 하는 정규군은 비교적 잘 훈련되고 무장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국민위병과 연맹병(fédérés)들은 훈련도도 낮았고 장비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2] 이러한 차이 때문에 보급 부담이 가중되었고 임금 차이로 인해 부대 간의 갈등도 있었다. 반여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군 1개 대대와 국민위병 또는 연맹병 2개 대대를 휘하에 두는 방법을 사용했다. 각 대대는 동일하게 척탄병 1개 중대와 소총병 8개 중대를 보유했고 각 반여단은 서류상으로 2,437명의 병력과 6문의 6파운드 포를 보유했다.
1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과 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을 거쳐 1802년 아미앵 조약으로 짧은 평화가 찾아오고, 이듬해 나폴레옹이 연대 명칭의 재사용을 명령하며 반여단들은 연대로 이름이 변경된다. 하지만 혁명 이후에도 반여단이란 명칭은 프랑스군 내에서 사용되었고 유명한 부대로 프랑스 외인부대의 제13외인반여단이 존재한다. 이와는 별도로 폴란드 제2 공화국에서도 반여단이 사용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