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16:28:14

배복룡

<colcolor=#fff><colbgcolor=#0047a0>
파일:빈 세로 이미지.svg
출생 1874년
충청북도 충주
사망 몰년미상
묘소
본관
가족
학력
서훈 애족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 생애

1907년 충북 청안군(淸安郡)ㆍ보은군(報恩郡) 등지에서 김회경의진(金會景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충북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은 1907년 7월 7일 제천(堤川)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비롯하여, 9월 16일 싸릿재, 9월 27일 죽령(竹嶺), 10월 5일 단양(丹陽) 고리평(故里坪), 10월 23일 풍기(豊基) 백자동(柏子洞)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배복룡은 1907년 7월 17일 의병장 김회경이 의병을 모집하자 이에 참여하여 20여 명으로 포군을 결성한 후 총기를 휴대하고 10월경까지 청안군ㆍ보은군 일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