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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비아 동부 자발알아크다르 주의 주도이자 키레나이카 (바르카) 지역에서 2번째로 큰 도시. 인구는 약 26만명 정도 되며 도시권 인구는 약 40만명이다. 19세기 중엽, 리비아 왕국의 전신인 세누시야 수피 종단의 중심지가 되어 본래의 지명인 시디 라파아에서 현재의 베이다로 개칭되었다. 20세기 중반 리비아 왕국 설립 후에는 사법 수도가 되어 최종적으로 트리폴리에서 천도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시가지 서쪽 외곽에는 고대 도시 유적인 발라그라이와 세누시야 자위야 (수도원), 오마르 무크타르 대학교[1] 등이 있다. 동쪽 7km 지점의 샤하트에는 (키레나이카의 어원인) 옛 키레네 유적이 있다. 샤하트 동쪽의 알 아브라크 공항을 통해 접근 가능하다. 리비아에서 가장 기후가 쾌적한 도시로, 해발 600m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30도를 잘 넘기지 않고 겨울에는 0도 대까지 떨어진다. 간혹 눈까지 내린다.
2. 역사
도시 서쪽의 발라그라이 유적의 아스클레피온 일대 |
고대 그리스 인들이 처음 정착하여 발라그라이로 불렀고, 치유 성소인 아스클레피온을 세웠다. 다만 로마 제국 때까지는 동쪽의 키레네의 교외 지역에 불과했다. 그러다 7세기 중반 이슬람 정복 당시 사하바 루와이피 빈 타비트 알-안사리가 이곳에 매장되며 그를 기리며 '시디 라파아' (성 라파아)로 명명되었다. 시디 라파아는 쇠락한 키레네를 대신하여 키레나이카 (바르카) 지역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2.1. 근현대
도서 서쪽 앗자위야 알카디마 (옛 수도원) 구역에 위치한 옛 세누시 모스크
그리고 1843년 세누시야 지도자 무함마드 앗-사누시가 이곳에 하얀 수도원이란 의미인 '자위야탈 바이다'를 세우며 현재의 지명이 유래되었다. 비록 세누시야의 중심지는 1855년 동남쪽 국경 지대의 자그붑 오아시스로 이전되었지만 베이다는 이후로도 세누시야에 있어 상징적인 장소로 남았고, 리비아 왕국 수립 후 1950년대에 대대적인 근대 도시 개발이 이루어졌다. 국왕 이드리스 1세는 부친의 탄생지이기도 한 베이다를 수도로 삼으려 했지만, 주요 정부 기관들이 이전되었음에도 천도는 결국 무산되었다. 카다피 정권기 구 왕정에 충성심이 있던 베이다는 감시의 대상이었고, 유서 깊은 세누시 대학교가 폐교되는 아픔을 겪었다. 1차 리비아 내전기에 반군이 처음 점령한 도시였다.
3. 지리
시가지는 구릉지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협곡 분지 지형을 이룬다.인근에는 리비아 내에서 보기 힘든 산인 아크다르 산이 위치해 있다. 가끔 눈이 내리는 걸로 유명하다.
4. 산업 및 관광
키레네 유적
리비아 동부 지역의 금융, 기타 과학, 스포츠의 중심지이다. 발전되었고 키레네의 그리스 유적 등 관광하기 좋은 도시이니 내전이 종식되면 벵가지와 함께 가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날씨 역시 선선하여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4.1. 발라그라이의 아스클레피온 유적
베이더 서쪽 언덕의 발라그라이 유적은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는 아스클레피온 (라트로스)으로 유명하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에피다우로스 아스클레피온을 모방하여 세운 '리비아의' 아스클레피온은 특히 아동 환자들의 치유로 명성이 높았다. 광장과 그를 둘러싼 3개의 신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운데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으로 아마 하드리아누스의 치세에 세워졌다 한다. 환자들은 성소의 방에서 취침하였고, 사제들은 (이미 대충 치료법을 알았음에도 신비성의 부각을 위해) 환자들의 꿈을 통해 치료법을 모색했다 한다.
부대 시설인 오데온 (소극장)에서는 음악 치료가 행해졌고[2], 일대에 많은 저수조를 통해 물의 공급과 위생 관리가 이루어졌다. 또한 기둥 장식에 나오듯 키레네의 특산물인 실피움 역시 고급 약재로 활용되었다. 번영하던 발라그라이는 4세기 무렵 파괴되었고, 동로마 제국기 요새 및 교회로 활용되다가 이슬람 정복 주민들이 동쪽의 시디 라파아 (현 베이다)로 옮겨가며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