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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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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지
이희진
심은진
간미연
윤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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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UALIZEHER
199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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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 V.O.X II
199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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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Come Come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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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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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대급 안티3. 이하늘의 비난4. 문희준 극성 팬의 간미연 살해 협박

1. 개요

베이비복스의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

2. 역대급 안티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당시 활동했던 모든 남자 아이돌[1] 팬들의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안티 없는 아이돌 가수 없었지만, 베이비복스는 그 당시의 극성팬들이 많았던 문화를 감안해도[2] 정도가 지나쳤고, 그야말로 '팬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안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심한 안티에 시달렸다.[3] 오죽하면 활동하고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악명이 높은 정도다.

당시 안티들은 대부분 여학생들이었다. 남자 아이돌 팬들이 대부분 여학생이기도 하고, 그 또래 어린 학생들은 미숙한 사회 경험과 정신 상태를 갖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 문화 초창기 특성상 가짜뉴스음모론은 범람하는데 그걸 제대로 여과 못하니[4] 보이그룹 팬덤에선 아 그런가 보다식 마녀사냥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 눈엔 질투의 대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2017년 2월,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 팬이었던 사람이 당시 팬 생활을 하면서 털어놓은 고충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글쓴이는 베이비복스의 데뷔 초창기부터 공방을 다니는 등 꽤 열성 팬이었다고 하며, 데뷔 연차가 차면서 여성 팬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데뷔 초창기에는 현장에 거의 없던 어린 여성 팬이라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알아보고 챙겨주기까지 했던 골수팬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충격이 너무 커서 이 글쓴이뿐만 아니라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팬들 중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글쓴이의 탈덕 이유가 '언니들이 한국 팬들 보면 테러 당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게 보여서'라고 하니까 말 다 한 상황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상황을 공감하는 네티즌들도 상당할 뿐더러, 링크된 글의 내용 중 대부분이 기사나 영상 자료 등으로 남아있기에 증거를 함께 첨부하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공개 방송마다 수백 명의 남자 아이돌 극성팬들이 다 같이 베이비복스를 향해 "꺼져라", 혹은 입에 담기도 힘든 인신공격성 멘트를 외쳤다.


-대표적인 예시로 2000년 7월 같은 방송에 출연한 신화 팬들이 이러한 욕설 테러를 저질렀고, 결국 이 사건으로 신화는 다음 회차 출연 정지 및 차트 제외라는 중징계를 받았다.[5][6]
2. 베이비복스 출근길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의 스케줄이 없어도 찾아와서 음란 사진, 면도칼 등으로 협박. 이 중에는 죽으라는 협박 문서와 혈서는 일상다반사였다. 특히 베이비복스 멤버들한테 악수를 청하다가 면도칼을 집어넣어서 손을 다치게 하는 일도 있었다.
- 당시 신문 보도로도 나왔던 면도칼 테러
3. 베이비복스 숙소에 죽은 시체, 고양이 시체를 보내 매니저나 팬들이 치우는 건 자주 있던 일. 대문에는 각종 인신공격 등의 문구가 써있었다. 칼은 종류별로 배송되었다.
- 심은진이 인증하는 고양이 시체 테러, 커터칼 인증
4. 베이비복스 공연에 모두 몰려와서 "꺼져라"를 외치는 테러. 수백 수천 명의 극렬한 안티들 앞에서 공연해야 했음. 베이비복스가 무대 나오면 풍선을 밑으로 숨긴다든지, 고개를 단체로 숙인다든지, 소위 '텐미닛'[7]을 한다든지, 공개 방송이든, 콘서트든 꾸준히 계속되던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 당시 뉴스 보도 자료에서 베이비복스의 언급
5. 어느 날, 출근길에서 또 안티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이들을 조롱하고 위협하자 당시 16살이었던 윤은혜는 차에서 한동안 내려오지 않다가, 결국 매니저한테 거의 질질 끌려나오면서 울움을 터뜨리며 오늘은 무대를 서지 않으면 안 되냐고 애걸복걸. 그날도 결국 안티들이 무대 위에서 중지 손가락을 올리고 호응 없이 침묵했음.
- 윤은혜 "베이비복스 시절, 아픈 기억이다... 추억이 없다" 솔직 고백[8]
6. H.O.T. 팬들의 황산 테러 위협에 결국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팬들한테도 걱정되니까 공개방송 오지 말라고 당부.
7. 자신의 신상까지 올리며 찾아가서 베이비복스를 죽이겠다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던 안티 팬.
- 당시 베이비복스 측의 협박범 소재 확인 보도 자료
-베이비복스 측이 자신들의 협박범으로 지목한 사람은 울산시에 거주하는 C모양. 그는 최근 베이비복스 측에 간미연 등을 비방하는 글과 테러 위협 메시지를 담은 디스켓에다 자신의 이름과 주소 등이 적힌 편지까지 전달하는 등 대범하게 이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는 것.
- 베이비 복스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 차례 테러 위협이 있어도 철 없는 학생의 소행이겠거니 하며 그냥 넘겼는데 최근엔 자신의 소재까지 밝히며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나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들은 베이비복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자 '간미연 사건'은 자작극이란 소문을 퍼뜨리며 조직적으로 활동을 방해해와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경찰에 알렸다"고 말했다.
8. 결국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이런 격동을 함께 겪은 팬에게,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기억 못 줘서 미안하다. 우리보다 더 유명한 사람 좋아해"라고 언급.
- 링크 전문 中.
9. 한 괴한이 윤은혜에게 간장, 식초, 고춧가루, 후추, 모래 등 자극적인 식재료를 넣은 물총을 쏘아 눈을 크게 다치게 한 사건도 있었다. 눈에 이물질을 직접적으로 맞은 윤은혜는 부상이 심각하여 실명 위기까지 겪었다.

이 외에도 링크 안의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모두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가히 충격적인 내용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거기다 이 글에 대해 반론은커녕 당시를 기억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신빙성은 높아졌다. 이 폭로 이후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H.O.T.의 멤버 문희준의 한 팬이 베이비복스와 그들의 팬을 일본군 위안부에 빗대 표현한 댓글이 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팬은 간 크게 해당 사이트의 고정닉을 사용한다. 해당 팬덤 일부는 아직도 추억팔이만 할 뿐 진정한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대목.

보이그룹 팬들의 견제가 심했던 1세대 걸그룹들 중에서도 유달리 베이비복스가 타겟이 된 배경에는, 당시 아이돌 걸그룹 중 드문 섹시 컨셉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걸크러시적 요소도 있던 베이비복스가 여성 팬들에게 외면받았던 현상은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9], 당시엔 걸크러시 개념도 확실히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인지라 베이비복스는 걸크러시보단 섹시 이미지가 더 강한 그룹이었고, 그렇다고 10대 멤버도 있는 마당에 아예 우먼그룹 컨셉으로 간 것도 아닌지라 그 애매한 간격차에서 보이그룹 팬덤의 표적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요정 컨셉의 핑클이나 S.E.S.는 상대적으로 부담 없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을 공격하는 보이그룹 팬들을 '빠순이'라고 지칭해 비난할 여지라도 만들 수 있었지만[10], 베복은 이들보다 쉴드쳐줄 팬덤도 미약했고 지금보다 보수적인 당시 기준으론 일반 대중에게도 패션불량 이미지로 비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에 더 안티들이 극성으로 날뛴 것도 있었으니 어찌보면 시대를 앞서간게 죄라면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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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하늘의 비난

2007년 2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어느 여자 스타의 일생' 편 캡쳐 요약.[11]

7집 타이틀곡인 'Xcstasy'는 힙합계에선 신적으로 추앙 받던 2Pac의 죽기 전 감옥에서 힘든 심경을 담은 미공개 곡을 합법적으로 돈 주고 사서 샘플링했으며, 그 중 한 멤버와 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가사를 붙인 곡이다.

그런데 DJ DOC이하늘이 샘플링 곡을 두고 당시 자신이 출연하던 엠넷의 힙합 프로그램 '힙합 더 바이브'에서 '2PAC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베이비복스는 빠따 좀 맞자'[12]라 언급했고, 이 발언이 스포츠 신문을 통해 기사화되어 당시 7집 타이틀곡 엑스터시의 작업 및 랩 피처링을 맡았던 플로스 피(Floss P)의 귀에 들어가면서 사태가 커지게 된다. 플로스 피는 'DJ DOC도 미국 랩을 따라하는데 남의 것을 아니라 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고, 이하늘이 이에 대한 반박글을 쓰면서 문제의 '미아리[13] 복스', 'SEX 가수', '썅년' 등의 폭언을 쓰게 된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이하늘의 잘못이겠지만, 이하늘이 문제의 발언 후 잠수를 타고 있는 동안 해당 단어를 계속 되새김질하는가 하면, 몇몇 연예 언론들은 진작 7집 활동 초반에 마무리된 표절 해프닝[14]을 확대 해석하여 베이비복스에게 표절 가수라는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심지어 소속사인 DR 뮤직마저 이하늘과 싸우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인 나머지 저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대처하지 않았고,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심은진이 직접 해명해야 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분명 자신들을 둘러싼 싸움인데 아무도 자신들을 배려해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멤버들의 멘탈은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이하늘은 일식집에서 공개 회견을 가져 베이비복스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건 나와 DR뮤직의 싸움이다'라는 뜻을 분명히 한 데다 기자회견 이후 돌연 입장을 바꿔 베이비복스에게 사과할 뜻이 없다며, 그런 표현 사실 니들한테 잘 어울린다며 끝까지 적대감을 보인다. 결국 DR뮤직 측은 이하늘을 고소하여 승소했지만, 베이비복스 멤버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아 기사화되지 않았다. 만약 기사화됐다면 '미아리복스 파문, 이하늘 패소' 같은 타이틀을 뽑아서 같은 단어로 또 되새김질을 했을 것이 뻔하니.

1세대 아이돌의 황혼기였던 이 시기 더블 타이틀곡이었던 'Xcstasy'와 'Play Remix' 부진에 이런 사태까지 겹쳐지면서 베이비복스의 7집 활동은 끝이 좋지 않게 막을 내렸고, 소속사와의 계약 기간 만료 후 재계약 논의도 없이 그냥 각자 갈 길을 갔다. 솔직히 저런 상황에서 누가 재계약을 하겠는가. 대놓고 공식 해체는 아니었지만, 활동 내내 시달렸던 안티 공격부터 시작해 뜬금포 간미연문희준과 열애설이 나는 바람에 무개념한 문희준의 팬들로부터 살해 협박 및 각종 테러를 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은 데다가[15] 2016년 기준으로는 그저 그렇겠지만 섹시 컨셉 푸쉬와 이하늘 사건, 소속사 문제 등을 겪으면서 회의감을 느낀 멤버들이 심은진의 탈퇴를 시작으로 뒤를 이어 계약 기간이 끝난 사람부터 나간 것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해체 후 윤은혜가 잘 나갔고 나머지 멤버들도 미약하게나마 연예 활동을 계속하니까 망정이지, 베이비복스 자체만 놓고 보면 이하늘의 폭언 한 마디가 5명 인생에 많은 악영향을 끼친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이하늘은 미아리복스 발언은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투팍의 노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2번 죽였다'라는 발언은 사과할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 사건 몇 개월 후 발매된 본인들의 새 앨범에 '베이비복스 디스곡'을 넣으려고 했다고 홍보하거나, 본인들 콘서트에 '미복 데려와서 빨간 조명이라도 틀 걸 그랬다'며 뒤끝을 보였다.

2Pac이 힙합 음악계어서 전설적인 인물인 것을 감안해도 절대 이하늘의 발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이하늘 자신은 힙합에 대한 자부심은 그렇게 높으면서 한 예능에서 그룹 백두산유현상과 부활의 김태원이 있는 앞에서 '락 음악의 최고봉은 문희준이다'라며 다른 장르는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건 당시 락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문희준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얘기였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은 힙합 자부심에 후배 가수에게 단순 악플과는 비교가 안 될 더한 짓을 해놓고 이중적 행태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해당 발언은 아무리 힙합계의 전설인 투팍의 음원을 샘플링했어도 지나친 발언이었다. 당시 멤버들의 나이대나 아이돌 가수로 살아왔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하늘이 신중하게 발언을 했어야 한다. 또한 당시 DR 뮤직의 대처와 스포츠 신문으로 대표되는 막장 기레기들의 행각도 베이비복스의 해체에 큰 지분을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이하늘은 베이비복스 멤버들에게 가수로서의 명예훼손 이전에 여자로서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상처를 줬다. 그리고 이하늘은 결혼 발표하면서도 계속 까이지만, 베이비복스에게 욕설한 것은 잘못 없다는 뉘양스를 풍기기도 했다.

이 사건 당시 인터넷에서 이하늘을 지지하는 여론도 많았다. 여성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 각종 성적 비하[16], 모욕, 무시를 일삼는 일들이 지금보다도 많았던 시절이며, 또한 지금보다 아이돌의 이미지가 더 나빠서 각 음악 장르의 매니아들의 허세 섞인 부심, 스노비즘이 더 컸던 시절이기도 하다.[17] 그리고 이제는 이미지가 많이 실추된 편이지만, 당시까지는 철 없는 마초적 동경심에 빠져 이하늘을 멋진 형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기도 했다.

다만 이하늘의 언행으로 이들을 해체시켰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는데, 여자 아이돌 팀이 정규 7집에 스페셜까지 8개 앨범을 냈으면 꽤 오래 존속했고, 2003년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물론 많은 베이비복스 팬들은 그때까지 괜찮았으며, 7집도 잘 했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핑클, S.E.S. 역시 비슷한 시기 내려온 것을 보면 베이비복스도 전성기 시절 수명은 많이 소진된 상태였던건 맞다. 특히 베이비복스는 이중에서도 앨범도 가장 많이 내고 2004년 이 사건으로 사실상 활동 중단이 되긴 했지만[18] 1세대 걸그룹 중에선 명목상으로나마 2006년까지 활동하며 당시 기준으론 할 만한 컨셉은 다 했던 상황이었다.[19] 베복의 7집이 발매된 2004년은 1세대 아이돌 시대가 저물고 휘성, 박효신, SG워너비 등으로 대표되는 본격적인 소몰이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하늘의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한편, 사건의 당사자였던 이하늘은 이 사건 이후로도 자잘한 사고를 일으키다가 2011년 자신이 소속된 그룹의 전 멤버였던 박정환을 비하한 사건과 10년 후 김창열과의 갈등으로 또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4. 문희준 극성 팬의 간미연 살해 협박

파일:external/40.media.tumblr.com/tumblr_o392thWtts1sq377wo1_540.jpg
1999년 여름, 사회적 파문으로 일었던 간미연 살해 협박 사건
1999년 9월 11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자료

1999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O.T.문희준과 간미연 사이의 스캔들로 인해 다량의 협박 편지가 배달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들의 존재가 각인됐었다. 1세대 사생팬이 일으킨 사건들 중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로 다량의 커터칼날+피로 쓰여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문구+간미연의 눈을 모조리 파낸 사진 등.

결국 뉴스 등에서 자작극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로 두각되자, 해당 극성팬들은 간미연 측이 꾸민 자작극이라며 헛소문을 퍼뜨려서 실제로 간미연이 자작극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2000년 당시 베이비복스의 안티팬이 "간미연 혈서 사건이 국과수 조사 결과 매니저의 혈흔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야간 뉴스에 보도되었는데 베이비복스측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건지 그 소식이 추가로 더 보도되지 않았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있긴 한데 베이비복스 쪽에서도 이 일을 이용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조직적으로 이들의 활동에 지장을 주자, 베이비복스 측이 해당 학생을 고소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베이비복스가 이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아 선처했다. 아직도 간미연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터무니 없는 루머를 재생산하는 안티들도 있으니까 조심하자. 상식적으로 방송 3사 메인 뉴스에 보도된 사건이 자작극이었다면 왜 어느 언론에서도 반론을 보도하지 않았을까? '간미연 자작극 루머'는 무식함과 과도한 팬심이 불러온 희대의 촌극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SNS도 활발하고 연예인들이 악플을 읽어보는 이야기도 쉽게 하는 요즘과 달리, 당시는 아이돌의 경우 자신들의 팬클럽 외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아이돌들은 인터넷으로 팬사이트만 확인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 보니 안티들의 공격이 단순히 악플이나 루머 양산, 안티카페 개설 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직접적인 신체적 위협(폭행, 의상 훼손)이나 협박(살해 협박)처럼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20]

사실 문희준이 안티가 급속도로 늘어난 이유는 간미연을 악의적으로 괴롭힌 H.O.T. 극성 빠순이들의 악행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이란 역풍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훗날 과도한 비방이 더더욱 커졌다는 의견도 있다. 안티들의 괴롭힘에 괴로운 나날을 보냈던 간미연은 이런 행태를 아니꼽게 보던 많은 팬들 및 타 그룹 팬의 동정을 샀고, 그 결과 많은 남성들과 일부 여성들이 간미연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뿐만 아니라 H.O.T.는 당시 국내에서 압도적인 최대 규모의 10대 팬덤을 지녔기에 그 횡포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거대 팬덤 특유의 횡포뿐 아니라 절대 다수가 10대란 점 때문에 청소년기 특유의 감정적인 면모까지 더해 극단적인 행태를 보였다. 이렇게 문희준이 안티들의 괴롭힘에 시달린 것은 간미연을 지나치게 괴롭혔던 H.O.T 빠순이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이려는 목적이었다. 결국 문희준의 극성 빠순이들은 과거 자신들이 간미연을 괴롭혔던 업보를 그대로 되돌려받아서 이후 문희준이 안티들한테 크게 괴롭힘 당하는 꼴을 보면서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21]

한 네티즌이 H.O.T의 팬클럽에서 올린 공지사항을 텍스트화 한 뒤 2차 유포를 한 게시글이 발굴되면서 H.O.T 팬클럽에서 현재까지도 주장하고 있던 혈서 사건 자작극 및 야간 뉴스 보도설은 사실무근의 루머인 것으로 밝혀졌다. H.O.T 팬클럽에서 혈서 사건 자작극 루머를 만들었다는 증거

이런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는 끝물에 일어난 것이 유노윤호 본드 음료수 테러 사건이다.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코어 팬덤 이외에 일반인들에게까지 번진 요즘은, 팬덤들 사이에서만 도는 "그랬다더라" 수준의 소문 외에 아이돌이 실제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경우는 공식적으로 없다. 요즘 같으면 당연히 감방으로 보낼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세계적으로도 테러 같은 것과 관련된 범죄도 엄청나게 민감한 시대라서 처벌도 어린애들 장난 수준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한편 간미연한테 살해 협박을 하던 세대들이 30대에 접어든 2010년대 들어서 이들 정도 나이대인 세대들이 자신들을 여자라서 차별 등 부조리를 겪었다고 할때마다 이들 세대들의 이런 추악한 과거를 알고있는 사람들은 이 간미연 협박사건을 들먹이며 이런 주제에 뭔 부조리를 겪었다는거냐며 비판하는 주장들이 나오곤 한다.


[1] H.O.T., 젝스키스, 신화 등.[2] 당장 2세대 아이돌 시대로만 넘어와도 이런 막가파식 안티 문화는 많이 줄어들게 된다.[3] 가장 심했던 시기는 문희준과 간미연의 열애설이 터진 3집 활동 중반(99년)부터 4집(2000년) 활동 시기. 오죽하면 이시기 간미연이 멤버들에게 울면서 미안할 정도였다고 하며 이후 베이비복스의 해외 활동이 잦아지면서 안티들의 극성도 점차 줄어들게 된다.[4] 이때만 해도 가정용 PC 자체가 없거나 인터넷이 안되던 집도 제법 있었고, 설치한 집도 갓 생겨난 포털 사이트 내용도 부실하고 법적, 제도적 장치도 미비하던 시절이다보니 안티들의 가짜 찌라시들을 반박할 자료 따위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이시기 연예인 특히 걸그룹 관련 키워드는 검색시 안티 사이트들이 상단에 뜨는 황당한 경우가 허다할 지경이었다. 그걸 당시 학생들이 처음 접하고 다른 정보는 접할 경로조차 없던 친구들 사이에 퍼트렸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5] 파일:18BCDC74-DF88-48C4-AB46-4EA97FF05AB2.jpg 파일:0AA4420B-7371-44F5-8B47-80D311A80E0E.jpg 파일:C16D8332-4262-45FC-8D50-18BBC6E8FD19.jpg[6] 첨부된 영상은 하이라이트 구간이 짤린 버전이며 풀 버전은 이곳에서 볼 수 있으며 배신 이 외의 무대로는 Killer 무대도 있다.[7] 공연장에 싫어하는 연예인이 나올 때 단체로 약 1분간 아무 응원 없이 침묵하는 것.[8]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 안티 짓은 핑클도 당한 적이 있었다고 옥주현이 직접 방송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9] 심지어 베복 1집은 대놓고 페미니즘을 표방한 앨범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웃픈 일이다.[10] 사실 핑클도 당시 보이그룹 팬덤 안티들의 시달림을 제법 당했다. 성유리도 훗날 인터뷰에서 방송사 화장실 한번 잘못 갔다가 몰래 침입한 안티들의 집단 폭언을 듣기도 했다고 트라우마를 고백하기도 했다. 다만 나머지 핑클 멤버들은 다 한 성격 하다보니 오프라인에서 안티 보이면 빡쳐서 색출 하러갔다고 한다.[11] 이 방송은 2007년 1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니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관련되어 나왔다. 베이비복스와 유니 둘 다 지독한 안티와 악플에 시달렸다는 점이 같다.[12] 빠따 좀 맞자는 표현은 해당 프로그램에서 이하늘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었다. 반대로 뭔가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국밥 한 그릇 드시고'라는 표현을 썼다.[13] 미아리는 원래 마을 이름인데, 아시다시피 미아리에 한때 전국 최대 규모의 집창촌이 존재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0대 이상 장년층들은 미아리라고 하면 성매매 업소의 대명사로 떠오르기도 한다.[14] 2PAC의 어머니가 주체가 된 아마루 레코드에서 우리의 허락 없이 곡을 갖다 썼다며 법적 대응을 운운했지만 2PAC의 곡들은 저작권이 여기저기 갈라져 있는 상태였고, 엑스터시는 정당하게 저작권을 행사하여 만든 곡이었다.[15] 당시에는 문희준도 무뇌충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당하던 시기였으니 이 머저리 같은 빠순이들이 확실한 자충수를 뒀고 문희준도 테러를 당했다.[16] 가해자는 남성, 여성 가리지 않았다.[17] 아이돌 음악 때문에 한국 음악계가 망한다는 둥, TV에서 들을 음악이 안 나온다는 둥 하는 레퍼토리가 흔하던 시절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도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18] 그해 심은진이 이 여파 때문인지 계약을 종료하면서 사실상 팀이 해체된다.[19] 다만 걸그룹 수명이 대폭 연장된 2세대 이후 기준에서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기도 하다.[20] 문희준 갤러리에 올라온 당시 베이비복스 팬의 회상글. #[21] 특히 눈을 파낸 사진이 임팩트가 컸는지 이후 문희준도 눈을 파내겠다는 식의 욕설을 안티들에게 듣게 되며, 구봉숙도 문희준에게 눈을 파겠다는 욕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