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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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9호 | |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奉天洞 磨崖彌勒佛坐像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산 4-9 |
시대 | 1630년 (인조 8년)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
수량 / 면적 | 마애불 암반1基, 토지 79.7㎡ |
지정연도 | 1982년 11월 18일 |
관리자 (관리단체) | 관악구 |
<colbgcolor=#ae1932>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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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시대의 미륵불 불상.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관악산에 있다. 1982년 11월 13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받았다. 첫 등재 명칭은 '약사사 석불(藥師寺 石佛)'이었으며, 2009년 6월 4일에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2. 상세
대부분 불상은 만든 시기를 정확하게 알기 힘든데, 이 불상은 조성한 때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불상 오른쪽에 "미륵존불 숭정3년 경오4월일 대시주박산회양주(彌勒尊佛 崇禎三年 庚午四月日 大施主朴山會兩主)"란 명문이 있기 때문이다. 숭정 3년은 조선 인조 재위 8년, 서기 1630년이다. 또한 명문으로 불상의 명칭이 '미륵존불(彌勒尊佛)'이고 시주자가 박산회(朴山會)임도 알 수 있다.연꽃 봉오리를 든 채 연꽃대좌 위에 앉아있는데 손은 옷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다. 민머리로 육계[2]가 낮고 머리 뒤편으로는 이중 테두리를 두른 광배가 있다. 얼굴은 갸름하며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몸 부분은 얇고 어깨가 둥글므로 매우 실력이 뛰어난 석공이 조각한 듯하다. 몸 뒤에도 광배가 있는데 머리 광배와 달리 테두리가 하나이다. 가사를 입은 형상으로 조각했는데 옷의 형태를 꽤 자세히 묘사하였다. 결가부좌를 튼 다리를 군의가 감싸서 발이 드러나지 않는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이를 상투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상투는 머리카락만 올리는 것이고, 육계는 불교설화에 따르면 부처님의 정수리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형태가 된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둘은 다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머리를 틀어올린 육계는 무엇이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솟아오른 정수리 뼈에 머리를 올렸다고 생각하면 모순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