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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의 랜드마크인 도시 북쪽의 바바 로그만 사라크시 영묘
서남쪽 45km 지점의 리바트 샤라프 카라반사라이
1. 개요
페르시아어: سرخس영어: Sarakhs / Serakhs / Saraxs
이란 동북부 레자비 호라산 주의 도시. 마슈하드에서 동쪽으로 100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4만 5천명으로, 대부분 튀르크멘이다. 튀르크메니스탄과의 국경 도시로, 튀르크메니스탄 제2의 도시인 마리 (메르브)와도 100km 거리이다. 테젠 (하리루드)[1] 강을 따라 늘어선 국경 건너 튀르크메니스탄령 도시 역시 이름이 세라스 (세락스)로, 같은 어원의 다른 발음이다. 두 도시 사이에는 왕래가 잦다.
중세 시기 실크로드 무역으로 번영하였고, 니샤푸르와 메르브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기에 종종 호라산의 패권을 두고 중요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비록 옛 사락스는 국경 너머의 세라스에 있었지만, 당시 흔적 중 가장 잘 남아있는 바바 로그만 영묘는 현 사락스 북쪽에 남아있다. 사락스는 비록 큰 도시는 아니지만 천연가스, 석유, 황의 정제와 저장 및 사암 채굴 등의 산업을 갖추고 있으며 서남쪽 5km 지점에는 사락스 공항까지 갖추고 있다.[2]
2. 역사
샤나메에 의하면 투란의 영웅 아프라시압의 시대부터 도시가 있었고, 케이카우스의 명으로 도시를 건립한 사락스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한다. 고고학적으로도 기원전 2천년부터 마을이 생겼고, 기원전 500년경 도시화되었다. 다만 당시 도시는 국경 건너의 세라스에 있었고, 1993년 창건 2500주년 행사를 열었다. 사락스는 11세기 들어 번영기를 맞았다. 1038년 사락스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의 토그릴 1세가 가즈니 제국군을 격파하고 호라산에 대한 패권을 확립하였다. 셀주크 제국기 사락스에는 미술 학교와 여러 도서관이 세워지는 등 문화적으로도 번영하였다.번영하던 도시는 1221년 몽골 제국에 의해 파괴되었고, 셀주크 시기의 흔적은 3개의 영묘만이 남아있다. 그중 11세기의 수피 바바 로그만 사라크시의 영묘는 이란 쪽에 남아있다. 1459년 3월에는 티무르 내전의 일환으로 아부 사이드가 사락스에서 헤라트 왕공 알라웃 다울라와 이브라힘 부자를 격파하고 호라산과 티무르 제국의 단독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6세기 가량 마을 규모로 남아있던 사락스는 19세기 중반 카자르 왕조의 나세르 웃딘 샤에 의해 재건되었는데, 이때 (러시아 제국에 빼앗긴) 테젠강 동안의 기존 도시가 아닌 서안에 도시를 세워 현 사락스로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