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상수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가 아닌 어떤 조건에도 일정한 값을 유지해야 하는 상수.
반듯하지만 차갑거나 건조하지 않다. 툭툭 내뱉는 말이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 아부하는 법도 변명하는 법도 없다. 그저 자신의 몫의 일을 넘치게 잘 해낸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하상수는 달랐다. 주춤대고, 어눌해지고, 후회하고, 머리를 쥐어뜯고, 감정에 허우적댔다. 그렇게 만든 건 ...
상수와 대학교, 대학원, 은행까지 함께한 절친이다. 서글서글, 유들유들, 능치고, 까불거리고 변죽까지 좋은 그의 은행 내 별명은 소지랖. 겉으론 헐렁하다 싶을 만큼 생각 없어 보이지만, 그 속엔 팔십 노인이 들어앉은 남자다. 어떤 날은 마대리처럼 철딱서니 없다가도 어떤 날은 상수처럼 속이 깊기도 하고.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 알 수 없는 의문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
잔챙이같은 고객을 상대하는 대신 우량 고객만 상대하면서 굵직한 성적을 내고, 그게 통하니 '육지점장이 상대하는 고객은 거물급이다'라는 평판이 퍼져 VIP들이 더 몰린다. 위에서는 예쁨받고 밑에서는 충성을 아끼지 않는 선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나 점잖은 것만은 아니다. 인사고과를 핑계로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종용하고, 격려를 핑계삼아 여행원들의 손을 잡기도 하며, 남자 편도, 여자 편도, 팀장 편도, 대리 편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의 편이다.
나이 차이 얼마 나지도 않는 육지점장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면서도, 지점장이 눈앞에 있으면 본능적으로 허리가 자동으로 접히는 애잔한 사람. 사실 그는 사랑밖에 몰랐던 로맨티스트라 찢어지게 가난한 여자와 결혼해, 찢어지게 가난하게도 살았다. 회식 때마다 '니들은 사랑만 보고 결혼하지 마라' 토로하지만, 막상 퇴근길엔 술에 떡이 되어도 마누라가 제일 좋아하는 전기구이 통닭 두 마리 양손 가득 사 들고 들어가는 가장이다.
조직에서 출세욕 좀 있는 40대 남자의 표본같은 캐릭터. 행복을 추구하는 욜로족이자, 그 중에서도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횰로족. 부모형제는 이구일의 도움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잘 살려면 처자식 안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역할 하느라 비굴하게 사는 노태평 부지점장을 볼 때마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까딱하면 저렇게 살 뻔 했네...
인간확성기, 주접메이커. 이구일 팀장과 함께 영포점 갈(수록)비(호감) 2인분 중 1인분으로 활약. 머리에 있어야 할 뇌가 식도 끝에 달린 탓에 생각을 거쳐 말하는 법이 없다. 미운 네 살 마냥, 따박따박 남의 심기 건드리는 말을 툭툭 잘도 한다. 허세와 허풍이 묻어난 말투에, 밉상밉상 개밉상인 아부형 인간이지만, 생각보다 소심하고 의외로 순진한 구석까지 있는 만만한 캐릭터다.
은행에서는 노련미 만렙의 과장이지만, 집에서는 떡두꺼비같은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 여기서 방점은 아들이 ‘둘’이라는 데 찍혀야 한다. 은행 일은 만만해졌는데 육아는 해도해도 체질에 안 맞는다. 내가 왜 잘 하는 거 두고 육아로 고생해야하는 지 한탄스럽다. 어딘지 모르게 추워 보이는 수영을 잘 챙겨주는 인물이다.
칼같다. 매몰차고, 가차 없다. 창구에서도 최대한 내 앞으로 오지 말라고 고객들에게 레이저를 쏜다. 번호표가 코앞에서 지났다며 사정하는 고객에게도, 환자복을 입고 온 고객에게도, 인정사정 안 봐주고 칼같이 쳐낸다. 그러면서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대상을 가려가며 비굴하게 싸가지 없는 캐릭터는 아니다. 두루두루 공평하게 싸가지가 바가지인 나름 개념있는 싸가지다.
낙하산 타고 들어와 그 낙하산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금수저. 하상수, 소경필과 함께 영포점의 핵인싸로 활약 중이다. 결혼은 사랑으로 하겠다며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의 장녀와 열렬한 연애를 했으나,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상수, 경필과 함께 영포점의 삼총사로 활약하며 때론 웃음을, 때론 짠내를 풍기는 인물.
남편이 죽었다. 거액의 빚을 남기고. 그 후 안정적이라 생각했던 일상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슬퍼할 겨를도 막막해할 여유도 없이 정임은 강남 사모들의 여드름을 짰고, 학벌이 종잣돈이 되는 세상, 아들 상수를 강남 8학군에 넣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남편이 죽은 후 상수가 큰 의지가 되었지만, 그런 자신의 마음조차 아들에게 부담이 갈까 부러 더 쿨하게 아들을 대했다.
타고나길 유순하고, 어질며, 독하지 못한 성격. 그러나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악착같은 생활도 버텨내는 사람. 이른 나이에 한 결혼. 해외에서 지게차 기사로 일하는 남편은 대부분 집에 없었다. 외로웠지만, 아이들을 빠르게 커갔고 들어갈 돈도 배로 불어났다. 남편을 그리워하며 외로워할 여유 같은 건 경숙이 처한 현실에선 사치였다. 경숙은 분명, 자식밖에 모르는 엄마였다.
머리가 하얗게 새는지도 모르고 치열하게만 살았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외롭다고 느낄 새도 없이. 인재가 정작 외로워지는 순간은 몇 달에 한 번 집에 돌아갈 때였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족이고 집이었는데, 참 이상하게도 그 집안에서 자신은 꼭 이물질 같았다. 가족들이 하는 말도, 대화도, 사춘기를 지나 달라진 아이들의 무서운 성장세도, 낯설었다. 그럼에도 가족들을 위한 자신의 삶을 감지덕지했는데. 인재의 인생이 거친 풍랑에 흔들렸다.
외로움 많이 타고, 유약하기도 한, 새침떼기 공주이고 싶었으나 푼수떼기 사모가 된 여자. 젊은 시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할 유명 여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평생 돈 걱정 없이 살게 해주겠다는 미경부의 박력 있는 프러포즈에 결혼을 선택했다. 다행히 남편은 돈 버는 게 천직인 사람이라, 정말 평생 돈 걱정은 안 하게 해줬는데. 외로웠다. 행여나 스트레스 받아 피부에 주름이라도 질까, 회사에 출근하듯 마사지샵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대성건설 대표. 묵묵하게 처자식을 먹여살리는 말 없는 남자. 갓난아이였던 미경과 처음 마주한 날. 대성은 뜨거운 부성애를 느꼈다. 그리고 결심했다. 쓸모 있는 아비가 되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다정한 말 한 마디보다, 지폐 한 장을 더 쥐어주자. 무능했던 자신의 아버지처럼 처자식 고생시키기 싫어, 일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 보니 딸 미경이 바랬던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다정한 말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