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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10:37:28

사마소(삼국전투기)

파일:삼국전투기_사마소.jpg
1. 개요2. 설명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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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 등장한 사마소를 서술하는 문서.

2. 설명

청의 엑소시스트오쿠무라 유키오로 나온다. 그 때문인지 그의 형인 사마사오쿠무라 린으로 나왔다. 덤으로 낙가 전투(6)에서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카타오카 텟신으로 코스프레하기도 했다. 또한 466편인 전투 외편(6-1)의 첫 컷에서의 ‘내 권세는 하늘을 뚫는 권세다.’라는 대사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의 ‘내 드릴은 하늘을 뚫는 드릴이다.’를 패러디한 것이기도 하다.[1] 정사 위주로 인물과 스토리를 설정한 본작을 고려할 시, 형과 대등한 수준의 인재로 전반적 고평가되어 그려졌으며, 그가 서진의 난맥상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영 부각되지 않는다.또한 그가 뛰어난 리더였다고 평가했다.

3. 작중 행적

낙곡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하후현의 친구로, 하후현이 촉 정벌에 관해 사마의가 뭐라 했냐고 묻자 바보짓이라는 한 마디만 했었다고 답했다. 이후 하후현이 대장부라면 한 번쯤 바보짓을 해볼 필요도 있다며 따라올 것을 청하자 거기에 동의하여 하후현과 함께 한중 정벌에 참여했다.

하후현이 흥세산 위에서 진을 친 촉군을 뚫을 방법이 없어 고민하며 계속 시간만 버리자 사마소는 자신들이 잘못 판단하고 너무 급하게 온 것이니 퇴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하후현에게 퇴각을 제의했지만 그는 끝까지 주저했고 결국 사마의의 서신이 도착한 뒤에야 퇴각을 결정한다.

전투외편 3편에서는 흥세에서의 패전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하후현을 위로해 주기도 했다.

전투외편 4편에서는 사마의, 사마사와 함께 고평릉 사변을 벌였고 사마의, 사마사와 함께 낙양을 점거했다.

신성 전투 편에서는 사마의의 지시로 조상 일파가 마구잡이로 만들어 놓은 법령 등을 수정, 보완하는 임무를 맡았다.

적도 전투 편에서는 적도 지원을 위해 군을 끌고 낙양에 와서 입궐했었다. 그리고 사마사에게 군을 빌려줘서 조방을 폐출하는 것을 도왔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사마사가 관구검의 난을 진압하러 직접 출진한 동안 낙양 수비 임무를 맡았다고 언급되었다. 관구검의 난 진압 후 사마사가 죽으며 사마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기에 그 위치를 이어받았으며, 동시에 유망주였던 가충과 종회를 눈여겨봤다고 묘사되었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황제 조모가 군은 부하에게 맡겨 두고 허창을 수비하라고 명을 내렸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군을 끌고 낙양에 입성한 뒤 대장군에 오르며 파워게임을 제압했다. 이후 가충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고위에 오른 걸 피로할 겸해서 사방장군에게 사람을 보내 위로하기로 정한다. 그렇게 가충이 정동대장군 제갈탄에게 찾아갔다온 뒤 제갈탄이 머지않아 반기를 들 것이라고 말하자 역시 그런 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사마소는 가만히 있는 제갈탄을 다짜고짜 공격할 수도 없으니 난감해했지만, 가충의 제안으로 사공 임명을 빌미로 제갈탄을 불러들이는 작전을 사용했다.[2]

작전이 성공해 제갈탄이 먼저 움직였고, 신하 1명이 한시라도 빨리 진압에 나서야 된다고 했지만 사마소는 이전 관구검이 빠르게 움직이다 훅 간걸 생각해 제갈탄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고, 대신 오와 손을 잡으려 할 테니 서두르기보다는 철저히 준비해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마소는 제갈탄의 난 진압을 위해 인재들을 요소에 척척 배치해 두고 본인은 종회와 가충... 에 더해 느닷없이 동행하기로 결정한 황제 조모까지 끼고 직접 수춘으로 출진했다.

오의 전휘, 전의 형제가 투항하고 종회가 이들을 이용하여 수춘에 있던 전씨 일족을 모두 투항하게 만든 뒤, 사마소는 슬슬 수춘의 식량이 다 떨어져갈 때가 됐다고 예견하여 일부러 수춘에 오의 지원군이 거의 포위망에 다가왔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려 제갈탄 세력이 급격하게 식량을 소모하게끔 유도했다.

사마망이 가문과 황제 사이에 끼어서 고민하다 어떻게든 보신을 위해 자신을 최전방에 보내 달라 자원하자 그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빵빵한 보좌가 있는 서량 방면에 꽂아 줬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제갈탄군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문흠까지 사망했기에 문앙이 위에 투항했을 때 위 진영에서는 그를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사마소는 문앙을 죽이는 대신 그를 살려둔 다음 투항을 유도하는 광고판으로 써먹었다. 당자를 비롯한 오군을 포로로 사로잡은 뒤에도 강남에 처자식이 있는 이들이니 진심으로 귀순하지 않을 것이므로 전부 산채로 파묻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사마소는 관용을 보여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이유로 이들을 살려뒀다.

7년에 걸쳐 수춘에서 사마 가문에 반감을 가진 왕릉, 관구검, 제갈탄의 난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난들은 오히려 사마 일족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언급되었다.

전투외편 6편에서는 제갈탄의 난을 제압하며 사마소의 파워가 정점에 달했다고 묘사됐다. 한편 제갈탄의 난을 계기로 가충보다 종회를 중하게 여겼고 이에 가충이 종회를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고 반쯤 시기심이 섞인 조언을 했지만 사마소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묵살했다.

한편 제갈탄의 난에서의 공으로 조모는 사마소를 상국에 임명하려 했으나 사마소가 이를 아홉 번이나 거절하며 무산되기도 했다. 사마소가 굳이 상국(승상)직을 사양할 이유도, 조모가 그걸 또 굳이 아홉 번이나 다시 내릴 이유가 없으니 이는 처음부터 사이가 나쁘던 두 사람의 감정싸움이 극에 달한 결과라고 묘사되었다.

전투외편 7편에서는 왕침, 왕업에게서 조모가 직접 사마소를 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난감해했다. 한편 가충이 독단적으로 성제를 시켜 황제를 죽여버리자 자신을 역적으로 만들 생각이냐며 크게 당황했고 일단 가충이 자기가 무마시켜보겠다고 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안을 떨치지 못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의견을 내지 못하자 사마소는 진태가 임기응변이 있고 일을 깔끔하게 해치운다고 들었다며 진태를 찾았고, 진태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순의를 시켜서 진태를 불러오게 하였다. 사마소 앞에 불려온 진태는 가충의 목을 벤다면 일이 풀릴 것이라고 했지만 사마소는 이를 듣지 않았다.

진태의 말은 무시했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으니 결국 사마소는 그냥 정신이 나가 미쳐 날뛰던 조모를 성제가 죽였다고 모든 죄를 성제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일단락지었고, 새로운 황제로 조환을 추대했다.

이후 호열이 형주에서 대치중인 오의 18개 지역 둔장들이 귀순할 뜻을 비쳤다는 정보를 전달하자 사마소는 형주가 위의 손에 들어온다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며 왕기를 시켜 오의 둔장들을 영접하게 하려 했지만, 왕기가 분명히 거짓일 거라며 강경하게 나오자 그냥 출병을 철회했다. 다른 사람들은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자신의 말을 따르려 난리인데 왕기는 정말 충직하다며 칭찬한 건 덤.

검각 전투 편에서는 촉의 강유가 자꾸 자신들을 자극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대신들에게 물었고, 순욱이 이에 아예 촉을 정벌하자고 주장하자 그 말이 옳다고 여겨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대신들은 낙곡에서의 실패 때문에 전부 주저했지만 종회만은 가능하다고 했고, 이에 사마소는 기뻐하며 종회를 진서장군으로 임명하고 대촉정벌 사령관의 임무를 맡겼다.

사마소는 낙곡에서의 패전으로부터 18년이 지났으니 후유증도 가셨을 거라 판단했고, 동시에 제갈탄을 잡은 후 4년 가까이 전투가 없었으니 전력 낭비도 없었으며[3], 강유와 유선의 사이가 별로라는 첩보까지 있으니 강유만 서쪽에 묶어 놓으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라 간단히 꺾을 수 있다고 여겨 종회에게 착실히 정벌을 준비시키고, 촉 정벌에 회의적이던 등애를 설득해 납득시켰다고 서술됐다. 그렇게 촉 정벌을 준비한 지 1년이 지나고, 종회가 출진할 때 건투를 빌어 줬다.

성도 전투 편에서는 종회에게 자화자찬투성이 보고서를 받기도 했고, 등애가 촉 멸망 후 지나치게 텐션이 올라가 오 정벌 등의 프로젝트를 남발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위관으로 하여금 진정시키게 했다. 종회가 여러 가지 발언을 꼬투리삼아 등애를 모함했을 때는 가충에게 진짜 등애가 반란을 일으킬 것 같냐고 의견을 묻기도 했고, 가충이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거의 틀림없을 거라고 하자 가충에게 종회를 믿지 못하겠냐고 물었으며, 이에 가충이 대장군은 종회를 믿냐고 역으로 묻자 사마소는 가충이든 종회든 자신은 일을 맡겨 놓은 수하를 아무런 근거 없이 의심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등애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며 등애를 낙양으로 소환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후 종회에게 서신을 보내 이번에 잡아오라고 한 등애가 만만찮은 인물이라 그의 난동에 종회가 상을 입을까 걱정된다는 구실로 가충을 야곡으로 보내고 자기도 군사 10만을 끌고 장안에 주둔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가충 앞에서는 일을 맡긴 수하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건 가충이나 종회나 그놈이 그놈이라 대충 답한 거고 실제 본심은 아내 왕부인이나 비서 소제와 이야기할때 살짝씩만 드러냈다고 묘사됐다. 소제가 종회를 촉으로 보내면 반란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고 하자 종회가 촉을 정벌하고 그 병력을 흡수한다 해도 그 촉의 병력들은 예기가 꺾이고 피로해져 있을 것이고, 10만이 넘는 기존의 병력은 전부 가족이 위에 있으니 그 상황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며 그 정도 계산도 못 한다면 딱 거기까지가 종회의 가치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등애의 체포령을 내렸을 당시 소제가 사마소에게 종회의 병력만으로 능히 대처가 가능할 텐데 굳이 직접 장안에 갈 필요가 있겠냐고 묻자 사마소는 정말 등애가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면 험담이 담긴 보고서나 쓸 시간에 당장 등애를 잡아버렸을 것이라며 역심이 있는 건 종회 쪽이니 자신은 등애가 아니라 종회를 잡으러 가는 거라고 답했다.

모든 사태가 일단락된 후 낙양에 들어와 살게 된 유선을 연회에 초대하기도 했으며, 유선에게 촉 땅이 그립진 않냐고 묻기도 했다. 그리고 유선이 이곳이 즐겁기에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답하자 그거 다행이라며 크게 웃기도 했다.[4]

전투외편 8편에서는 촉을 평정한 공으로 진왕이 되었다고 묘사됐다. 촉이 없어진 김에 국가 전반의 시스템 정비를 꾀하기도 했으며, 이후 후계자를 결정하고자 하는데, 본디 사마소는 두 아들 중 동생 쪽인 사마유를 조금 더 아껴 사마유를 사마사의 양자로 보내 후계자로서의 근거를 만들어 준 뒤 사마유를 후계로 세우려 했지만 가충 등의 측근들이 일제히 반대하면서 결국 그냥 큰아들인 사마염을 후계자로 세웠다. 그리고 사마소는 의상, 수레, 악대부터 칭호까지 전부 황제의 것과 동일하게 맞춰 제위 등극의 반석을 다져 놓지만 얼마 안 가 마치 짠 것처럼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묘사됐다.

작가는 사마소의 짧은 통치기간 동안 인구와 경제가 살아났다는 걸 근거로 사마소를 좋은 리더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런 작가도 사마소의 인격까지 실드치진 못했다.


[1] 사실 손침도 이렇게 말했다. 그 결과는...[2] 제갈탄을 중앙으로 불러오면 이후 제거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설령 본편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반기를 들더라도 이를 빌미로 찍어누를 수가 있다.[3] 이 전력을 동오에 쏟아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사마소는 촉의 산보다 오의 강이 훨씬 부담스럽다고 판단했다.[4] 해당 연회 장면 한정으로 사마소에게 콧수염이 붙었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일제 관료와 비슷한 이미지라는 의견도 있긴 하지만 정말 그걸 노린 건지는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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