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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룰리사트 지구의 정착촌 사카크 Saqqaq | Solsiden | |||||
<colbgcolor=#d00c33><colcolor=#FFFFFF> 경위도 | 70°00′35″N 51°56′45″W | ||||
국가 | [[그린란드| ]][[틀:국기| ]][[틀:국기| ]]그린란드 | ||||
주 | 아반나타 | ||||
지구(地區) | 일룰리사트 | ||||
시간대 | UTC-02:00 | ||||
우편번호 | 3952 Ilulissat | ||||
지역번호 | 94 | ||||
인구 | 160명[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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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해안에서 본 사카크 |
사카크(Saqqaq)는 아반나타 주 일룰리사트 지구의 정착촌이다. 이름은 그린란드어 및 덴마크어로 모두 양지(陽地)라는 뜻이 된다.
그린란드의 선사시대를 논할 때 등장하는 사카크 문화(Saqqaq Culture)의 이름이 이곳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그 문화의 고고학적 발견이 주로 이 일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누수아크 반도 남서쪽, 수흘로르수아크 해협과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2. 역사
2.1. 선사 시대
▲ 킬라키초크에서 발견된 생후 6개월 아이의 미라 |
유전자 조사에 의하면 이들은 기원전 3500년경 이주한 시베리아인의 한 갈래로서, 현재의 이누이트와 아메리카 원주민과는 별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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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덴마크의 식민지
서기 1755년 1월 15일부로 개척이 이루어졌는데, 당시의 이름은 Ritenbenk로 이는 당시 그린란드의 행정 및 무역을 담당하는 회사였던 Det almindelige Handelskompagni(英: General Trade Company)의 회장이었던 Christian August von Berkentin의 성으로 만든 아나그램이었다.그린란드어로는 아파트(Appat)라 불렸고, 유지 관리가 곤란하여 1781년부로 한 번 정착지를 통째로 옮긴 바 있다.
1787년경에는 디스코 만 일대에서 가장 사냥에 적합한 곳으로 알려졌었다. 당시에 선교 학교를 건립할 계획이 있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불발되었다.
1807-1814년 본국인 덴마크가 나폴레옹 전쟁[2]에 휘말림에 따라, 처음에는 별 영향이 없었으나 점차 이곳의 포경 활동과 교역이 중단되고 급기야는 정착촌 자체가 해체되었다.
1814년 이미 폐쇄된 정착촌에 다시 두 가구가 입주하였으나, 바로 이듬해부터 기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1816년경에는 인구가 다시 급증하여 60명에 도달하였으나, 해상 자원의 감소로 포경 산업이 이전처럼 활발하지 못하여 이후로도 전쟁 이전과는 같지 못하였다. 1850년에 이르러서는 그린란드에서 고드하운(현 케케르타르수아크)에 이어 두 번째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식민지 구역이 되었다.
1840년부로 사카크가 다시금 정식으로 재설립되었으며, 당시에는 겨울에만 기능하는 부분적 정착촌이었으나 1860년경에 이르러 연중 기능하는 정착촌으로 재분류되었다.
1911년부로 독립적인 행정구역(municipality)으로 분류되었으며, 일룰리사트 교구에 속하였다.
1915년경 인구는 27가구 170여명으로,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주택이 잘 정비되었으며 이곳 사람들이 '매우 성실하게 근로하였다'고 한다. 엽사 35명, 어부 3명, 정착촌 관리자, 산파 1명 및 해당 식민구역의 교리문답 교사가 거주하고 있었다.
1942년부로 야콥스하운(현 일룰리사트) 식민지구에 속하게 되었고, 북그린란드 식민지와 남그린란드 식민지가 통합된 1950년부터 1963년까지는 바이가트(Vaigat) 지구에 속하게 되었다가 다시 1963년부로 일룰리사트 지구에 속하게 되었다.
2.3. 현 그린란드 정부
2000년 11월 21일 인근의 파투트(Paatuut)에서 산사태가 발생하여 수흘로르수아크 해협 일대에 대규모 쓰나미를 일으켰다. 사카크에는 3미터 규모의 쓰나미가 도달하였다.3. 산업
크게 어업과 관광업으로 먹고산다. 넙치 어업이 주된 산업이 되며, 가공 공장이 설치되어 있다.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보니 관광업도 기능하는 편이다.4. 인프라
- 전력
누키시오르피트(Nukissiorfiit)에서 디젤 발전기를 구동하여 정착촌에 전력 공급을 담당한다.
- 수도
정착촌 북쪽에 위치한 작은 호수로부터 가정용수를 공급하게 되며, 주로 난방은 기름 난로를 활용한다.
- 오폐수 및 폐기물
하수 시설은 없고, 정착촌 서쪽으로 조그맣게 매립지가 설정되어 있어 분뇨를 포함한 쓰레기나 오폐수는 전부 여기에서 처리한다.
- 주택
대부분의 주택은 지상에서 떨어진 1.5층 단독주택으로, 대부분은 크고 작은 수리가 필요한 상태이며 일부는 아예 버려졌다. 현재로서는 약 40가구를 추가 수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문화생활 및 교육
학교가 설립되어 있어 학생 약 28명이 재학 중에 있다. 보육 시설과 축구장이 병설되어 있으며, 그 외에는 마을회관, 간호실, 다목적 상점 등이 설치되어 있다.
4.1. 교통
헬리포트가 설치되어 있어, 겨울철에는 이 헬리포트에서 일룰리사트 공항까지 항공편이 편성된다. 바다가 녹아 있는 그 외의 기간에는 Diskoline을 통해 배로 통하며, 헬리포트는 그동안 기능하지 않는다.배는 일주일에 한번씩 오가는 편이다.
5. 참고
아반나타 개발 계획[A] 2023년 1월 1일 기준[2] 1807년 8월 12일 - 1814년 1월 14일 사이에 진행된 소위 '포함 전쟁(Gunboat War; 덴: Kanonbådskri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