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오유미 구보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딸로 제1차 고노다이 전투에서 요시아키가 전사하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으나, 사토미 요시타카가 환속시킨 후 며느리로 삼았다.
1562년 아버지가 머리를 깎고 은거하면서 가문의 대표가 되었으나, 실권은 여전히 아버지가 쥐고 있었다. 1564년 제2차 고노다이 전투에서 아버지와 함께 호조 우지야스에게 참패해 가문이 일시적으로 쇠퇴했으나, 다시 힘을 키워 1567년 미후네 산 전투에서 아버지와 함께 호조 군을 무찌르고 지바 반도 북부의 가즈사 국을 넘어 간토 본토의 시모우사 국까지 진출했다. 이후 우에스기씨와 동맹을 맺은 호조씨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1577년에는 호조씨와 화평을 맺었다. 1578년, 급사했다. 유언으로 가즈사는 아들 사토미 요시시게에게, 아와는 양자가 된 동생(친자설도 있음) 사토미 요시요리에게 분할 상속해, 가문의 분열을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