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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7 15:21:39

샐리 헤밍스

1. 개요2. 일생3. 기타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Sarah "Sally" Hemings

1773년 출생(추정). 1836년 사망.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노예이자 그의 정부로 추정되는 여성. 본명은 사라 헤밍스이며 애칭이 샐리.

2. 일생

1773년 경에 태어났다. 원래는 제퍼슨아내 마사 웨일스 스켈턴 제퍼슨(Martha Wayles Skelton Jefferson) 여사의 이복여동생이자 집안 노예였다.

마사 여사의 친정아버지 존 웨일스가 세번째 아내 사후인 1761년 경부터 1773년 사망할 때까지 흑인 노예(정확히 말하면 흑백 혼혈 노예) 엘리자베스(애칭은 베티) 헤밍스를 정부로 두고 가까이 한 결과 태어난 혼혈아 6남매 중 막내였던 것이다.[1] 샐리의 어머니 베티 헤밍스는 영국인 선장과 흑인 여자 노예 사이에서 태어나서, 웨일스 이전의 다른 노예 남성과의 사이에서 4남매, 웨일스 사후 다른 두 남성들에게서 각각 존 헤밍스, 루시 헤밍스 등 다른 자녀들을 더 두었다. 즉, 샐리는 흑백혼혈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쿼터(4분의1)혼혈이었고, 따라서 외모도 피부가 거무스름한 백인으로 보였다고 한다.

샐리의 이복언니인 마사는 첫 남편 바터스트 스켈턴이 결혼 2년 만에 죽고 1771년에는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존도 죽으면서 토마스 제퍼슨과 재혼하였다. 이 때 자신이 소유한 약 135명의 노예들과 함께 제퍼슨가로 오게 되었는데, 당시 샐리는 이부언니 베티 브라운과 함께 마사의 시녀로 따라가서 제퍼슨가에서 일했다. 마사가 결혼 10년 만인 1782년에 죽고 토머스 제퍼슨은 1789년경[2]부터 샐리를 가까이 하였다.[3] 이 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약 15~16세경.

토머스 제퍼슨과 가까워진 이후부턴 사실상 그의 정부가 되어 그와의 사이에서 최대 7명[4] 의 아이들을 낳았고, 그 중 비벌리 헤밍스, 해리엇 헤밍스, 메디슨 헤밍스, 이스턴 헤밍스 등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녀의 아들 매디슨 헤밍스는 훗날 자신이 토머스 제퍼슨의 아들임을 주장하였고, 그의 후손들 역시 제퍼슨 가의 후손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제퍼슨의 백인 가족[5]과 옹호자들은 제퍼슨 본인이 아니라 제퍼슨의 조카들인 카(Carr) 형제[6]가 샐리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덕분에 20세기까지 이 논란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다 1998년 제퍼슨의 방계 후손들과의 유전자 검사 결과 샐리 해밍스의 사생아들 중 일부는 토마스 제퍼슨 본인 혹은 제퍼슨 가문의 남성 중 한명의 자녀로 인정된 바 있다.[7][8] 현재 샐리와 제퍼슨의 관계는 (일부 반론을 제외하면) 거의 정설 취급받는 상황.

샐리의 형제들과 그 자녀들은 모두 농장에서 일하지 않고 목수로 일하는 등 고급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9] 매디슨의 회고록에 따르면 제퍼슨이 샐리에게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을 21살이 되었을 때 해방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하며, 실제로 성년기에 도달한 4명의 자녀들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해방시켜 주었다.[10] 하지만 정작 샐리 본인은 제퍼슨이 죽은 뒤에야 그의 딸 마사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해방되었다.

말년에는 자기에 앞서 해방된 두 아들과 가까이 살면서 손주들을 돌봐주었고 1836년에 61세 또는 62세로 사망했다.

3. 기타

파일:external/3.bp.blogspot.com/Sally-Hemings.png
샐리 헤밍스의 상상화
샐리의 초상화는 남아 있지 않다. 위의 그림은 당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상상화. 몬티첼로의 노예였던 사람 중 한 명인 아이작 제퍼슨의 증언에 따르면 샐리는 옅은 색의 피부에 긴 생머리를 지닌 상당한 미녀였다고 한다. 제퍼슨의 외손자 토머스 제퍼슨 랜돌프도 샐리가 미인이었다고 증언.

샐리는 4분의1만 흑인혈통이라[11]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지녀 피부가 다소 어두운 백인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러한 샐리와 백인인 제퍼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흑인혈통을 8분의1만 타고나서, 샐리와 제퍼슨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혼혈티가 거의 나지 않고 그냥 백인처럼 보였다고 한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995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Jefferson in Paris》[12]에 등장. 배우는 탠디 뉴턴. 제퍼슨 역은 닉 놀테, 제퍼슨의 딸 마사(팻시) 역은 기네스 팰트로가 맡았다.

2002년 그녀의 이야기를 주제로 CBS에서 《Sally Hemings: An American Scandal》이라는 미니시리즈를 만들어 방영한 적이 있었다. 샐리 역의 배우는 카먼 이조고(Carmen Ejogo). 제퍼슨 역은 샘 닐이 맡았다.

뮤지컬 해밀턴의 2막 넘버 'What'd I Miss'에 등장한다.


[1] 마사는 존 웨일스와 첫 아내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딸이며 존 웨일스는 마사 외에도 두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4명의 딸을 두었고 그 중 하나는 어린 나이에 사망. 세번째 아내와는 자녀가 없었다.[2] 제퍼슨이 프랑스에서 외교관으로 재직하던 시기다. 당시 샐리는 제퍼슨의 막내딸 마리아의 시녀로 있었다.[3] 아들 매디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첩(concubine)'이 되었다.[4] 첫 아이에 대해선 논란이 있었다. 토머스 C. 우드슨이라는 농부의 후손들은 샐리가 파리에서 미국으로 돌아와 낳은 아이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한 반면, 매디슨 헤밍스는 회고록에서 그 아이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언급해서 두 주장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로 인해 우드슨 가문의 남계 Y염색체와 제퍼슨 가문의 남계 Y염색체의 불일치가 드러났고 우드슨과 몬티첼로의 연관성을 제시하는 그 어떠한 문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매디슨의 언급에 무게가 더 실리는 부분.[5] 주로 적장녀 마사의 자녀들[6] 제퍼슨의 여동생 마사의 아들들인 피터 카와 새뮤얼 카를 지칭[7] 확률적으론 샐리와 가까이 지낸 토마스 제퍼슨의 후손일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다.[8] 샐리 아이들의 친부가 제퍼슨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 쪽은 제퍼슨의 남동생인 랜돌프 제퍼슨이 유력한 후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제퍼슨의 외손자인 토머스 제퍼슨 랜돌프와 그 가족들은 랜돌프 제퍼슨을 유력 후보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랜돌프는 유전자 검사 이후 새로운 유력 후보로 등장하긴 했지만, 샐리의 임신 추정 시기 때 실제로 몬티첼로를 방문했는지도 불분명한 랜돌프를 샐리가 임신할 때마다 몬티첼로를 방문한 사실이 확실한 토머스 제퍼슨보다 가능성을 높게 보는 건 이상한 일이다.[9] 흑인 노예라고 해서 다 같은 대우를 받은 게 아니다. 가정부, 목수, 대장장이로 일하는 소수의 노예는 고급 인력으로 취급되어 나은 대우를 받았고, 대다수 노예는 뙤약볕 아래에서 밭일을 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10] 비벌리와 해리엇은 아버지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도주하면서 해방되었고, 매디슨 본인과 이스턴은 아버지의 유언에 의해 해방되었다.[11] 샐리의 어머니가 흑인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혼혈 노예였고, 샐리의 아버지(제퍼슨의 장인)은 백인이었다.[12] 국내 제목은 '대통령의 연인들'. 다만 내용은 대통령 재직 시기가 아닌 프랑스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시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