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06:21:22

샤카 히즐롭

샤카 히슬롭에서 넘어옴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前 축구선수
파일:Hislop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샤카 히즐롭
Shaka Hislop
본명 닐 샤카 히즐롭
Neil Shaka Hislop
출생 1969년 2월 22일 ([age(1969-02-22)]세)
잉글랜드 런던 해크니
국적
[[트리니다드 토바고|]][[틀:국기|]][[틀:국기|]]
|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93cm | 91kg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하워드 대학교 (1987~1991 / 대학)
레딩 FC (1992~1995)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995~1998)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98~2002)
포츠머스 FC (2002~2005)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05~2006)
FC 댈러스 (2006~2007)
국가대표 26경기 (트리니다드토바고 / 1999~2006)
1. 개요2. 클럽 경력3. 은퇴 후4. 수상 경력
4.1. 클럽4.2. 개인
4.2.1. 클럽4.2.2. 대표팀

[clearfix]

1. 개요

파일:Hislop_Portsmouth.jpg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前 축구선수이자 現 방송인.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잉글랜드 무대에서 14년간 여러 팀의 골문을 지키며 경쟁력을 보인 잔뼈굵은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문장이었다.

2. 클럽 경력

잉글랜드의 런던에서 태어난 히즐롭은 스트라이커로 축구를 시작했었으나 큰 키로 인해 골키퍼로 전향했고 이후에도 계속 골키퍼로 축구 선수 생활을 해왔다. 이 분처럼 공격수하면 되는데?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워드 대학교에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왔으며 NCAA에서 팀을 결승까지 이끌기도 했다. 이후 무사히 졸업하며 기계 공학과 학위를 수료한 그는 잉글랜드의 레딩 FC로 스카웃되었고 1992-93시즌을 앞두고 프로무대에 입성한다.

2.1. 레딩 FC

레딩에서 그는 초반에는 자리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내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며 팬들과 스태프들을 만족시켰고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199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건 볼턴 원더러스와의 승격 플레이오프에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고 팀은 아쉽게 4:3으로 패하며 승격이 좌절되는 순간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했다. 그래도 시즌 내내 훌륭한 퍼포먼스로 클럽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그는 1995년 여름에 15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2.2. 뉴캐슬 유나이티드

뉴캐슬에서 첫 시즌부터 주전 수문장이었던 파벨 스르니체크를 밀어내고 팀의 넘버원으로 등극한다. 16라운드 윔블던전까지 풀타임 선발로 출전했으나 다음 경기 첼시 FC전에서 전반 41분, 부상으로 스르니체크와 교체되었다. 교체 직후 팀은 단 페트레스쿠에게 중거리 슛으로 골을 허용하며 패하고 만다. 이후 34라운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에서 복귀를 했고 시즌 종료까지 주전으로 나섰다.

두번째 시즌부터는 초반에 스르니체크에게 밀리면서 세컨키퍼로 사작했으나 이후 19라운드 블랙번전부터는 히즐롭이 주전으로 활약하다가 36라운드 아스날전부터는 다시 스르니체크에게 넘버원 자리를 넘겨주었다. 팀은 3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1997-98시즌을 앞두고 블랙번의 감독이었던 케니 달글리시가 새로 부임하면서 셰이 기븐을 데려오게 된다. 히슬롭은 초반에는 기븐에게 밀렸으나 15라운드 사우스햄튼전부터 24라운드 아스톤 빌라전까지 주전으로 나섰고 이후에는 다시 서브로 복귀하면서 시즌을 마쳤다.

2.3.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시즌 종료 후 골키퍼를 찾고 있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오자마자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며 올해의 해머스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다음 시즌에는 여전히 팀의 주전으로 낙점받았으나 25라운드 브래드포드 시티전에서 전반 2분만에 부상으로 교체되며 이후 장기간 출전불가 판정을 받고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부상 복귀 후에는 다시 주전으로 리그 34경기를 뛰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0-01시즌에는 팀의 미래이자 주축이었던 리오 퍼디난드프랭크 램파드가 팔리고 성적 부진으로 감독이 해고되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히슬롭은 데이비드 제임스에게 주전을 내주었고 시즌 12경기 출전에 그친다. 주전에서 밀린 히슬롭은 새 팀을 찾기로 결심한다.

2.4. 포츠머스 FC

히즐롭은 해리 레드냅이 새로 취임한 포츠머스 FC에 입단한다. 그는 오자마자 래드냅의 신임을 받아 디비전 1 전 경기 출전을 보장받았으며 디비전 1 우승과 동시에 시즌 동안 공로를 인정받아 챔피언십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이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이후에도 주전으로 출전하며 팀의 잔류를 이끌었으나 2004-05시즌이 진행 중이던 2005년 1월, 레드냅이 해임되고 새 감독 벨리미르 자제크는 그리스의 코스타스 찰키야스와 제이미 애쉬던을 중용하면서 히즐롭은 명단에도 들지 못하고 순식간에 써드로 전락한다. 이후 새 감독 알랭 페랭이 임명된 후에도 그의 입지에는 변함이 없었고 2005년 6월에 계약이 만료되면서 히즐롭은 방출되었다.

2.5.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기

2005년 7월 29일, 히슬롭은 맨유의 골키퍼인 로이 캐롤과 함께 영입되면서 3년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한다. 구단은 히즐롭을 튜터용 선수목적으로 영입했기 때문에 주전은 캐롤이 낙점받게 된다. 시즌이 시작되고 그는 매경기 세컨키퍼로 벤치에서 대기했으나 캐롤이 등 부상으로 출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크리스마스 전까지 몇차례 경기에 나섰다. 그러다가 1월에 캐롤의 부상이 재발하면서 히즐롭이 완전히 주전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 그는 FA컵 결승에서 리버풀을 만나기 전까지 컵대회 전경기를 모두 출전했고 리버풀과의 결승전에서도 선발로 출전한다. 후반 종료 직전까지 팀은 3:2로 앞서며 우승을 눈앞에 뒀으나 후반 45'+1분 스티븐 제라드의 드라마틱한 동점골을 허용하며 승부는 연장으로 흘러가게 된다. 연장전에서도 승부가 안난 두 팀은 승부차기에서 운명을 가르게 됐고 히즐롭은 사미 히피아의 슛을 막았지만 웨스트햄의 마지막 키커인 안톤 퍼디난드가 실축하며 눈앞에서 우승컵을 놓친다. 특히 이 경기는 웨스트햄에서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2.6. FC 댈러스

2006년 7월 5일, 히즐롭은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FC 댈러스로 이적한다. 댈러스에서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나서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한다.

2.7. 국가대표 경력

그는 잉글랜드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버지의 나라인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선택했다. 1999년에 A매치 첫 경기를 치렀고 2000년 골드컵 준결승 진출에 공헌한다.

하지만 팀은 드와이트 요크의 원맨팀에 불과했고 은퇴 전까지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는가 싶었으나 2006 FIFA 월드컵 지역 플레이오프에서 바레인을 꺾고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며 히즐롭은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다.
파일:Hislop_National_1.jpg

당초 월드컵 본선에는 주전으로 칼빈 잭이 나서기로 예정되었으나 1차전 스웨덴전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면서 급하게 히즐롭이 주전으로 나서게 됐다. 37살의 나이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히즐롭은 전반 40분에 스웨덴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골문을 향해 때린 강슛을 몸을 날려 막아내는가 하면 경기 종료를 앞두고 마르쿠스 알베크와 일대일 대결에서도 동물 같은 반사신경으로 막아내는 등 스웨덴의 파상공세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야신을 빙의한 선방쇼를 펼쳤고 역사적인 팀의 첫 승점을 안기는데 큰 기여를 한다. 경기 후 스웨덴의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히즐롭의 활약으로 도저히 골문을 열 수 없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2차전 잉글랜드전에서도 그는 골문을 굳게 지키며 잉글랜드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면서 172분까지 월드컵 본선에서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반 37분, 우측에서 베컴의 얼리 크로스를 2m에 달하는 피터 크라우치가 높은 타점을 이용한 헤딩골로 연결하면서 첫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후 추가시간을 향해가던 후반 45분, 스티븐 제라드가 박스 바깥에서 때린 왼발 중거리 슛이 그대로 히즐롭을 통과하면서 쐐기골을 만들어냈고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무너지고 만다. 당장 1달전에 열린 FA컵 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골로 그의 비수를 꽂았는데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재현된 셈. 이정도면 제라드가 히슬롭 킬러 인듯 이번 경기에서도 그는 여러차례 선방을 선보이며 상대를 답답하게 했고 지난 1차전처럼 승점을 가져갈 수 있을듯 보였으나 후반 막판 뼈아픈 2골 실점을 허용하며 무산되었다.

마지막 파라과이와의 3차전에서는 부상에서 회복한 칼빈 잭이 골문을 지켰고 팀은 0:2로 패하며 조 4위로 월드컵을 마감했다. 대회 이후 히즐롭은 은퇴를 선언하면서 잉글랜드전이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로 남게 됐다.

3. 은퇴 후

은퇴 이후 히즐롭은 ESPN의 해설가로 활동 중이며 스포츠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다.

4. 수상 경력

4.1. 클럽

4.2. 개인

4.2.1. 클럽

4.2.2. 대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