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안시 출신 독립운동가, 서병순
성명 | 서병순(徐秉舜) |
이명 | 서병순(徐秉淳) |
생몰 | 1885년 1월 3일 ~ 1920년 8월 11일 |
출생지 | 충청도 목천현 갈전면 병천리 (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천안시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서병순은 1885년 1월 3일 충청도 목천현 갈전면(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갈전면 아우내 장날을 기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유관순, 홍일선(洪鎰善), 김교선, 한동규(韓東奎), 이순구(李旬求), 조인원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3천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일본 헌병대는 그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천안에서 소집된 일본 헌병대와 수비대까지 가세하여 총칼로 시위대를 공격했다. 그 결과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등 19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때 서병순도 총상을 입은 채 체포되었지만 상처가 깊어 일단 귀가했으나 1920년 8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서병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의병장, 서병순
성명 | 서병순(徐丙順) |
생몰 | 1878년 ~ ? |
출생지 | 미상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일제가 편찬한 <폭도일기>에 따르면, 서병순은 1878년생이며 강원도 영월군 우변면 기곡리에 거주했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의병에 가담해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08년 8월 일제 헌병대에게 체포되었고, 강도 및 살인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서병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