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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17:35

서재익

파일:서재익.jpg
성명 서재익(徐在益)
이명 서재옥(徐在玉)
생몰 1905년 9월 7일 ~ 1943년 6월 23일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대촌면 칠곡리
사망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재익은 1905년 9월 7일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대촌면 칠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광주청년동맹(光州靑年同盟)에 가입한 뒤 1928년 8월 5일 전남소년연맹 창립총회에 참가했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며칠간 구금되었다. 1928년 10월 5일에는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정동화, 윤승현(尹昇鉉), 이대기(李大基), 최규창 등과 함께 동맹휴교 반대 인사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을 인쇄하여 광주 시내에 살포했다. 이일로 체포된 그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은 선고받았다.

이후 서재익은 1930년 11월 조선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청년 계몽 및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활동하다가 1931년 5월에 체포되어 1934년 3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엔 광주에서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1943년 6월 23일 광주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서재익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