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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8 11:28:23

석상익

<colbgcolor=#000><colcolor=#fff> 석상익
石商益
출생 1919년 9월 6일
사망 1950년 7월 8일
강원도 영월
복무 대한민국 경찰
최종계급 경찰 경위
복무 기간 ?~1950
1. 개요2. 생애 및 경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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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석상익(石商益, 1919년 9월 6일~1950년 7월 8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경찰이다.

2. 생애 및 경찰 경력

초기 생애
석상익은 1919년 9월 6일 출생하였다.
대한민국 경찰로 복무 중 김해수 경감의 결사대에 합류하였다.

6.25 전쟁 참전
영월방어 및 후퇴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 이후 강원도 경찰은 남하했으나, 강원도비상경비사령부(사령관 윤명운 경무관)는 영월의 방어를 결정하였다.
10만kW 규모의 화력발전소가 있는 영월은 전략적 요충지로 강원도 경찰과 전경 제8대대, 홍천·인제 병력 등 100여 명으로 영월 방어부대 편성하였다.
7월 2일부터 영월 지역에서 수차례 공방전이 전개되었고, 일시적으로 영월을 점령하기도 했으나 결국 적의 반격으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영월 탈환을 위한 결성대 편성
영월 탈환을 위한 강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던 경찰부대는 7월 7일 김해수 경감을 대장으로 47명의 결사대를 편성하여 영월 재공격을 준비하였다.
김해수 경감은 대병력의 북한군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월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작전을 감행하였다.

치열한 전투와 최후의 항전
7월 8일 오후 2시경 결사대가 녹전리 송현고개를 넘어가던 중 북한군과 예상치 못한 조우를 하였다.
이에 선제공격을 감행하여 북한군 일진을 격퇴하고 백병전 전개하는 등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대병력의 북한군이 결사대를 포위하여 격렬한 전투를 벌이던 중 김해수 경감은 적의 박격포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김해수 경감이 박격포탄에 전사하자, 석상익 경위가 지휘권을 이어받아 전투 지휘하며 끝까지 저항했으나 결국 석상익 경위도 전사하였다.
- 전투 결과: 아군 24명 전사, 7명 부상 / 북한군 73명 사살

비록 영월 탈환에는 실패하였지만 그들의 용맹한 정신은 대한민국 경찰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로 평가되며, 전투가 벌어졌던 강원도 영월군 녹전리에는 ‘호국경찰전적비’가 세워져 매년 추념행사가 열리며, 전사한 경찰관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또한 2018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8년 7월)

4. 참고 자료

《호국경찰전사》, pp.117-119
《강원경찰전사》, pp.192-194
《경찰전사》, pp.382-384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김해수 경감, 석상익 경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