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선백중(宣百仲) |
생몰 | 1890년 7월 15일 ~ 1931년 1월 4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익산군 황화면 고합선리 |
사망지 | 전라남도 익산군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선백중은 1890년 7월 15일 전라남도 익산군 황화면 고합선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1년 6월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에 가입했고 김재원(金在元), 이열호(李烈鎬), 김한복(金漢福) 등과 함께 충남 논산군 소재 송종빈의 집을 거점으로 독립운동에 대해 협의했다. 그는 1921년 10월 25일 김재원, 김한복, 임종만(林鍾萬) 등과 함께 익산군 망성면 어량리에 있는 민가에 들어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다. 이때 그는 김재원과 함께 집 밖에서 망을 보았고, 집 안으로 들어간 동지들은 조선독립에 관한 격서문 등을 낭독한 후 180원을 모집했다. 같은 해 11월 25일 이후에도 논산ㆍ익산군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1921년 12월 26일 동지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다.이후 1922년 1월 25일 강경지청에서 공주지방법원으로 이송되었고, 그해 3월 2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강도죄, 협박 및 장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칙령 10호에 의거하여 징역 4년 6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6년 5월 28일 공주형무소에서 출옥했다. 이후 익산군에서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31년 1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선백중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