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성규원(成奎垣) |
본관 | 창녕 성씨 |
생몰 | 1862년 8월 9일 ~ 1927년 9월 13일 |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화원리 |
사망지 | 충청북도 청주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성규원은 1862년 8월 9일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화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이수란(李水蘭)·신경구·이용실(李容實) 등이 주도한 미원면 독립만세시위 계획에 참가했고, 3월 30일 오후 1시를 기해 동지들과 함께 거사 장소인 미원 장터에 집결하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미리 준비해온 태극기를 군중에게 배포하며 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태극기를 빼앗고 주동자인 신경구를 체포했다. 이에 격분한 군중 천여 명은 신경구를 구출하기 위해 주재소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했다. 경찰은 이를 거부하고 시위대를 탄압했고, 군중은 투석으로 맞서다가 주재소의 담장과 유리창, 기물들을 파괴했다. 이후 만세시위는 다음날인 3월 31일에도 계속되었고, 4월 1일에는 창원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마치고 돌아온 천도교 신자 300명이 산 위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성규원은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청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27년 9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성규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