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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7 09:39:01

세르게이 예세닌

[ruby(Серге́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Есе́нин,ruby=Sergei Alexandrovich Yesenin)]
파일:세르게이예세닌.jpg
국적 러시아 제국 > 소련
직업 시인
생년 1895년 10월 3일
몰년 1925년 12월 28일
1. 개요2. 생애3. 참고자료

1. 개요

러시아 제국소련의 시인.

2. 생애

랴잔 출신이며 1910년대 시인으로 등단했고,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계속 활동하던 도중에 소련 정부의 초청으로 방문해 무용을 가르치던 이사도라 덩컨과 교제한 뒤 1922년에 결혼했다. 푸가초프의 난을 배경으로 다룬 시를 1921년에 쓰기도 했고 주로 자연을 주제로 다룬 시를 썼다.

이 때 예세닌은 25세였고 덩컨은 44세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잘 풀리지 않았는데, 평소에 우울증을 앓던 예세닌은 우울증을 술로 풀려다가 알코올 중독까지 겹쳤고 덩컨도 원래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가 소련에서 예세닌에게 반해서 결혼한 터라 연애할 때도 자주 다퉜다.[1]

결혼 후에도 상황이 바뀌진 않았고, 덩컨이 미국 순회 공연을 떠날 때 예세닌도 따라갔으나 거기서도 알코올 중독 문제를 일으켰으며 소련인과 결혼하고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는 의심을 받던 덩컨도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소련에서도 스탈린이 집권할 무렵이라 당에서도 예세닌을 좋게 보지 않았으며[2], 결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부부는 별거했다. 덩컨은 잠시 소련을 찾은 뒤 쭉 프랑스에서 머물렀고, 예세닌은 소련으로 돌아가서 요양하다가 레프 톨스토이의 손녀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톨스타야(1900~1955)[3]와 재혼했으나 얼마 뒤 레닌그라드에서 자살했다.[4]

3. 참고자료



[1] 예세닌과 덩컨은 소련에서 만나기 전까지 저마다 연애 경험이 있었지만 모두 헤어졌고, 덩컨은 감독 고든 크레이그, 재벌가 패리스 싱어 사이에서 낳은 딸 데어도르, 아들 패트릭도 있었으나 소련으로 오기 전에 프랑스 파리 세느 강에서 자동차 추락사고로 잃었다.[2] 예세닌의 출신 성분은 빈농이라 나쁘지 않았으나, 당에서는 그의 창작 성향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3] 톨스토이의 9번째 자녀인 안드레이 르보비치(1877–1916)의 딸.[4] 덩컨과 정식으로 이혼하진 않았으므로 법적으로 예세닌은 사망 시점까지 덩컨과 부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