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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8 14:08:53

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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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 曹魏
처사군 고제 태제 무제
손오 孫吳
효의왕 무열제 장사환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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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 추존 군주
효의왕 | 孝懿王
시호 효의왕(孝懿王)
본관 부춘 손씨
종(鐘)
자녀 3남 1녀
부친 손탐(孫耽)
모후 불명
정실 불명
생몰 ? ~ ?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자 손강, 손견, 손정, 서곤의 모친 손씨[1]의 아버지로 오군 부춘현 사람. 시호는 효의왕(孝懿王).[2]

2. 생애

정사 삼국지에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건강실록 인용 상서지(祥瑞志)와 유명록에서 손종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다음과 같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손종은 (중략) 어릴 때 집안이 가난하였고, 모친과 함께 살며 극진히 효도하였고 오이를 팔아 생업으로 삼았다. 오이가 익었을 때, 옷이 단정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세 소년이 손종에게 오이를 구걸하였다. 딱하게 여긴 손종은 그들을 초막으로 데려갔고, 식사를 대접하는 한편 예를 다하고 은근하게 모셨다.
대접을 받은 셋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니 이는 인간의 생,사,운명을 관장하는 신이었다. 놀란 손종이 무릎을 꿇으니, 신들은 손종에게 말하였다.
"몽군(蒙君)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무덤자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현세에서 제후에 봉해지시겠습니까, 아니면 몇 대 후에 천자가 되시겠습니까?"
손종이 무릎 꿇고 절하며 말하였다.
"지금의 안위만을 챙기는것보다, 후손들을 위해 몇 대 후에 천자가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곧바로 (손종은) 무덤자리를 정하였다. 또 (셋은) 말하였다.
"그대는 산을 내려가되, 100보를 걸을 동안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손종은 60걸음[3]을 걷는동안, 집안에 있어야 할 노모가 위급히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4] 뒤를 돌아보니, 그들은 모두 흰 두루미가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수년 후 손종은 그의 모친이 귀천한 후 이곳에 묻었고,[5] 무덤에서 기운이 나왔는데 하늘에 닿았다.[6] 손종은 훗날 손견을 낳았고, 손견은 손권을 낳았으며, 손권은 손량을 낳았고, 손량은 손휴를 낳았고, 손휴는 손화를 낳았고, 손화는 손호를 낳았다.[7] 진이 토벌에 나서자, (손호는) 항복하여 귀명후에 봉해졌다.

손견전 주석 오서에서 손견의 집안은 대대로 오군에서 벼슬살이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오군에서 벼슬을 했을 수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얼버무리며, 정사 삼국지에서 나온 손종의 행적은 아들 손견과 같이 전당에 갔을 때 손견이 해적을 공격하려는 것을 말렸다는 기록이 유일하다.

3. 기타

《부춘손씨종보(富春孙氏宗谱)》에 따르면 손권이 황제가 되고 나서 할아버지 손종을 효의왕(孝懿王)으로 추존했다고 하는데 족보 기록이라서 신빙성은 보장하지 못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손견전의 기록을 그대로 차용해서 손견이 전당강 아래에 해적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하자 이를 말렸다.


[1] 손견의 여동생이다.[2] 출처: 부춘손씨종보[3] 상서지 버전에서는 삼사십 걸음으로 나온다.[4] 손권 대에 황제가 되었지만 손종이 백보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영토가 강동 지방 일부에 한정되었고 이 또한 몇대손 이어지지 못했다고 한다.[5] 상서지 버전에서는 손종 본인이 죽은 후 이곳에 묻혔다고 나온다.[6] 손견전 주석 오서에 따르면 무덤에서 기이한 빛이 나오고 오색구름이 하늘을 덮어 수 리에 퍼져서 동네 사람들이 손씨가 흥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7] 사실 손량, 손휴, 손화 모두 손권의 자식이고 손화는 추존 황제다. 전설을 만든 사람이 손오 족보를 잘 몰랐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