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3:17:35

스카너/배경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스카너

1. 배경2. 14.7 업데이트 이전
2.1. 장문 배경2.2. 꿈노래
3. 구 설정
3.1. 구 장문 배경 13.2. 구 단문 배경3.3. 구 장문 배경 23.4. 리그의 심판

1. 배경

이쉬탈인이라면 누구나 이쉬탈의 고대 수호자, 스카너의 이름을 들으며 자란다. 그는 대지를 빚고 최초의 생태도시를 세운 브래컨이었다. 얼굴은 돋을새김으로 그려져 있으며 이쉬탈의 역사에 불멸로서 존재하는 스카너는 여전히 명예로운 존경의 대상이 되는 신화이다.

하지만 이샤오칸의 대도시 아래 깊숙한 곳에는 스카너가 살아가는 내실이 자리한다. 그곳에서 스카너는 위쪽에 있는 대지의 진동에 귀를 기울인다. 귀를 기울이며... 때를 기다린다.

스카너의 신화는 수천 년 전 시작됐다. 오팔힌이라는 브래컨 일족으로 태어난 스카너는 종족에서 전설로 일컬어지는 어미, 니샬레의 자손이었다. 함께 태어난 형제자매는 니샬레의 품을 떠났지만 불안과 호기심이 강했던 스카너는 니샬레의 힘과 지혜를 배우고자 남기로 했다.

관찰은 곧 독창성으로 발전했다. 다른 형제자매와 달리 브래컨의 타고난 대지 제어 능력을 연마하며 지하 진동 패턴을 읽는 기술을 갈고닦은 스카너는 멀리서도 움직임을 감지하고 해독할 수 있게 됐다.

세월이 흐른 후, 스카너는 이러한 진동을 통해 대륙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를 감지했다. 그 진동은 동쪽에서 정착민이 도착하며 발생한 것이었다. 오팔힌 일족은 이 새로운 정착민을 믿지 않았지만 스카너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들이 무엇으로 움직이는지 알아야 했다.

스카너는 이 '이쉬탈인'이라는 이들을 살펴봤다. 이쉬탈인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스카너가 관찰한 이쉬탈인들은 제한된 시간을 활용해 뭔가를 세우고 만들고 발명했다. 그들의 존재에 매료된 스카너는 어느 날 이쉬탈인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

근처에서 발생한 낙석이 급성장하고 있는 이쉬탈인 정착지를 위협하자 관찰 대상을 잃고 싶지 않았던 스카너가 개입했다. 정글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카너는 사람들 위에 우뚝 서서 튼튼한 몸과 대지를 다루는 능력을 사용해 마을을 덮치려는 낙석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먼지가 걷히자 이쉬탈인들은 경외와 감사가 뒤섞인 눈길로 자신들의 구원자를 바라봤다.

스카너의 내면에서는 이쉬탈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이 연약한 존재들은 자신이 지켜 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스카너는 더 이상 멀리서 이쉬탈인을 지켜보지 않았고,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일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다. 인간들은 스카너의 영원한 연구 대상이 되었고 인간들의 국가는 스카너의 새로운 집이 되었다.

스카너가 초기 이쉬탈인과 형성한 관계는 일종의 교환 관계였다. 이쉬탈인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공유했고 스카너는 자신이 지닌 대지의 힘으로 행성의 맥이 연결되는 곳에 이샤오칸의 대도시를 세울 수 있게 도왔다.

하지만 스카너가 한 가장 큰 공헌은 문명 지배 계급의 창립 일원이 된 것이었다. 이쉬탈의 과학적 사고방식과 브래컨의 집단주의 문화를 합쳐 이쉬탈인을 밝은 미래로 이끄는 것이 윤 탈의 목표였다.

그리하여 이쉬탈은 스카너의 보호 아래 번영을 이룩했다.

이쉬탈 바깥에서는 슈리마 제국이 세력을 확장했다. 스카너는 대륙을 휩쓰는 초월체의 모습을 지켜봤다. 힘을 향한 갈망으로 부패한 인간의 어두운 면을 목격하자 필멸자의 잠재력에 대한 스카너의 믿음이 흔들렸다.

슈리마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스카너는 자신의 의심을 분명히 밝혔지만 슈리마 제국이 이쉬탈에 동맹을 제안하자 윤 탈은 적극적으로 수락했다.

이케시아의 반란이 일어나며 스카너가 옳았다는 게 밝혀졌지만 그 대가로 수많은 목숨을 치러야 했다. 슈리마 제국이 무너지고 이쉬탈이 자주권을 되찾자 스카너에게는 정글 밖 세계, 고통과 고난이 가득한 황무지에 대한 혐오감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황무지는 룬 전쟁으로 더 끔찍한 곳이 되었다.

처참한 파괴의 참상을 목도한 스카너는 마침내 윤 탈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윤 탈은 세상에서 물러나며 마법과 거짓말로 그들의 땅을 보호하고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윤 탈에 대한 스카너의 믿음은 흔들렸다. 윤 탈은 이쉬탈인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했지만 스카너는 다를 것이다.

자신만이 이쉬탈을 지킬 수 있음을 깨달은 스카너는 대륙 구석구석 이어져 있는 진동의 가닥이 증폭되도록 설계한 지하 내실을 이샤오칸 아래에 만들었다. 낮게 울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이쉬탈의 안전을 위협했지만 스카너의 귀에는 위에 자리한 이쉬탈의 안정적인 소음 또한 들려왔다. 스카너의 통치로 도시가 계속해서 살아남았다는 증거였다.

그곳에서 스카너는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어두운 땅 아래 깊숙한 곳에서 스카너의 편집증은 곪을 대로 곪다 못해 경계심이 은둔으로 이어지기에 이르렀고 결국 스카너는 내실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 지상의 이쉬탈인에게 스카너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신화로 남게 되었다. 스카너와 이쉬탈의 미래를 의논하기 위해 지하를 오가는 윤 탈만이 스카너의 존재를 알았다.

이제 새로운 세대의 원소술사들이 윤 탈에 들어오면서 다시 한번 세상과의 교류 가능성을 따지는 논의가 시작됐다. 이러한 속삭임은 스카너의 편집증을 자극했다. 문호를 개방하면 몇 세대 전 그랬듯 고통과 고난, 죽음이 몰려오리라.

스카너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었다. 스카너는 이쉬탈과 이쉬탈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 자신이 파멸의 근원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2. 14.7 업데이트 이전

2.1. 장문 배경

위대한 슈리마 제국이 탄생하기 전, 멀리 떨어진 북서쪽 계곡은 고대 브래컨 종족의 고향이었다.

이 고귀한 생물들은 매우 독특했다. 단일 개체는 원시적이고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브래컨의 거미 같은 신체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들은 룬테라에서 가장 오래됐을지도 모를 고대 집단 지성의 관리자였다. 각 브래컨은 동족의 기억, 희망, 꿈 등을 담은 하나의 마법 수정을 품고 있으며, 수정은 곧 그들 자신이었다.

브래컨의 신체가 죽으면, 수정의 핵은 가장 깊은 계곡에 소중히 매장된다. 시간이 지나면 새롭고 젊은 브래컨이 나타나 수정을 물려받고, 조상의 역할을 이어 나가게 된다.

이로써 브래컨은 수정의 영원한 노래를 통해 영생에 근접하게 된 것이다.

훗날 스카너라고 불리게 될 한 브래컨은 땅속 어딘가에서 수정의 부름을 들었다. 그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땅을 파 복잡한 나선 모양으로 계곡 전체를 뒤졌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껏 본 어떤 수정보다도 거대한 수정을 발톱에 거머쥐었다. 수정은 금이 가고 빛이 바래 있었지만 안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빛은 스카너의 존재에 반응해 깜박였다. 수정의 노래가 스카너를 감쌌다.

스카너가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그는 수정과 융합되었으며 '수없이' 많은 조상들과 무언의 만남으로 하나가 되었다. 스카너는 자신을 둘러싼 물질 세계의 마법을 느낄 수 있었다. 낮은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와 자신의 존재와 함께 공명하는 듯했다.

인간들은 브래컨의 존재를 인지하고 존중했으나... 두려워 하기도 했다. 그들은 조잡한 언어로 '수정의 상처'와 같은 이름을 붙인 계곡 입구에 이따금 공물을 두고 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들은 전쟁과 정복으로 관심을 돌렸고, 브래컨은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동면 상태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인간이 전쟁으로 자멸한다 해도, 수정의 영원한 노래 속 희미한 음표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브래컨은 긴 잠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래는 갑자기 비명이 되었다. 브래컨의 은신처를 파괴한 큰 폭발에 스카너는 갑작스레 깨어났다. 주변 땅은 메마르고 황량했으나, 인간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불과 쇠로 무장한 채 지하로 파고들어 잠들어 있는 동족의 마법 수정을 캐 가려는 것이었다.

스카너는 격노하여 모래를 뚫고 나왔다. 그는 잔혹한 도둑들을 여럿 살해했고, 나머지는 공포에 떨며 도망쳤다. 스카너는 잠든 동족을 되살리려 했으나 수정 구조가 손상된 브래컨들은 깨어난 직후 사망했고, 남은 동족 대부분은 집단 지성에 큰 충격을 받아 깨어나지 못했다.

스카너는 슬픔에 잠긴 채 계곡을 방황했다. 수정의 마법이 아직 남아 있더라도, 인간들의 손에 들어가면 금세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몇 주 뒤, 새벽하늘에 동이 틀 무렵 스카너는 정신 속에서 희미한 부름을 들었다. 과거의 힘찬 화음이 아닌, 겁에 질린 절규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스카너는 잠시 망설였다. 그가 납치된 동족을 찾으러 간다면, 모래 속에 잠들어 있는 자들이 무방비 상태가 될 터였다...

그러나 절규가 더는 들리지 않게 되자, 그는 선택지가 없음을 깨닫고 사막을 향해 동쪽으로 나아갔다.

스카너는 동족을 찾아 홀로 헤맸다. 이따금 잃어버린 수정의 희미하고 차가운 노래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하다가 다시 작아지곤 했다. 그럴 때면 희망과 고통이 동시에 찾아왔지만, 그는 슬픔을 원동력 삼아 마음을 다졌다. 브래컨 종족의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2. 꿈노래

인간들이 우리의 기나긴 잠을 깨웠다.

나는 오랜 세월을 지하에서 잠들어 있었지만, 그동안에도 세상의 아찔한 흐름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눈으로 굳이 보지 않아도 하늘의 별들이 폭발해 죽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대지에 따스한 햇살이 스미면서 생명력이 되살아나는 것까지도 생생히 느껴졌다.

처음에 모래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기나긴 잠을 청했을 때만 해도, 나는 지하에서 잠자는 시간이 지극히 고요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지가 나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 주위에 있는 동족들이 잠결에 뒤척이는 기척이며 나직한 웅얼거림이 모두 내 마음에 전해져 왔던 것이다. 그들이 꿈꾸면서 부르는 노래도 끊임없이 들려왔다. 인간도, 공포도, 의혹도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꿈이 깃든 노래들.

모래 속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 몸처럼 꿈꿨다. 노래하는 동족들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우리와 함께였다. 모래 알갱이들 사이로 기어가는 벌레들도, 새끼를 낳으려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뒤쥐들도, 심지어는 밤의 휴식을 찾아 어둠 속으로 찾아드는 솜털투성이 거미 새끼 한 마리까지도.

대지를 이루는 돌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부였다. 나는 돌이 차갑고 무정한 존재일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가 더 깊은 지하로 파고 내려갈수록 모래, 흙, 돌멩이 들의 따스한 온기가 우리를 감싸왔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습기를 가득 머금고 비옥해진 대지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지하가 분노로 끓어오를 때에는 지상 가까운 곳까지 진동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면 나도 똑같이 분노의 노래로 화답하며 공감을 나누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그대의 분노는 나의 분노다.’

인간들이 왔을 때 대지는 고통스러워했다. 우리는 대지와 함께 부서지고 찢어지고 깨어지면서 노래가 아닌 비명을 내뱉었다. 우리의 울부짖음이 지진보다 더 큰 소리로 울려 퍼졌지만, 놈들은 아랑곳도 없이 내 동족들을 땅속에서 끄집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놈들은 우리의 몸에서 소중한 수정의 결정체를 뜯어내 훔쳐가 버렸다. 다름아닌 우리의 ‘이름돌’을.
이후로 나는 수많은 밤을 노래하며 보냈다. 내 심장이 텅 비고 싸늘하게 식을 때까지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그러나 놈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혼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지상을 헤매고 있다. 메마른 바람이 내 피부를 할퀴고, 내딛는 걸음마다 모래가 내 발을 찔러댄다. 다시금 저 깊고 아늑한 지하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치솟는다. 하지만 꾹 참아야 한다.
‘나는 외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야. 여전히 나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어.’

저 멀리 어딘가에서 공포의 노래가 들려온다. 희미하지만 귀에 익은 멜로디다. 내가 슬픔의 노래로 거기에 화답하자, 한 줄기 희망의 노래가 선명하게 내 마음에 전해져 온다.
‘괜찮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하늘에서 별들이 빙빙 돈다. 별들의 우주가 끝없이 눈을 깜빡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어마어마한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이 든다.
‘본래 지하에 있어야 할 내가 이토록 차디찬 지상의 공기 속에 혼자 있다니.’

지금껏 나는 달이 세 번 뜨고 지는 동안 지상에서 지냈다. 그 정도면 눈 깜짝할 찰나이고, 기나긴 삶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지하에서 따뜻한 웅얼거림이 조용히 울려퍼진다. 지상에서도 나는 영원을 느낄 수 있다.

저편에서 인간의 소리가 들려온다. 인간들의 고함 소리가. 인간들이란 노래를 부를 줄 모르는 모양인지, 언제 봐도 항상 고함만 질러댄다. 그들의 목소리는 아무런 운율도 조화도 없이 할퀴어대고 충돌하기만 한다. 게다가 저 인간들은 가짜 불에 고기를 굽고 있다. 공기 중으로 피어오르는 기름진 연기의 악취에 숨이 막혀온다.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대지가 우리에게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고도 넘치는데.

어렴풋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조금만 더’라는 소리. 우리의 이름돌이 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 인간들이 이름돌을 갖고 있다는 뜻이리라.

나는 인간들에게 나의 목적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종족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야 막 땅을 파기 시작했고, 태초의 지하 세계를 거의 파악하지도 못했으며, 말만 할 뿐 노래할 줄은 모른다. 앞으로 차차 터득하게 되리라.

나는 인간들의 마음을 향해 평온한 땅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잠들 때 만나게 되는 위대한 아름다움을 그들에게도 일깨워주기 위해. 그리고 죽은 내 동족들을 위한 노래도 부른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훔쳤는지 알려주기 위해.

그러나 인간들은 내 노래에 화답하지 않는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나는 목소리를 더 크게 높여, 빼앗아간 이름돌들을 돌려달라고 요청해본다.
‘돌려줘. 그건 우리 거야. 너희는 이미 우리 중 한 무리를 죽였잖아. 우리의 미래까지 죽이지는 마.’ 나는 애원의 노래를 부른다.
‘나는 그 수정들을 깊은 어둠 속으로 가져가야 해. 우리는 그 수정들과 다시 합쳐져야 해. 제발 부탁이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고통을 잠재우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인간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고함치고만 있다. 그들 중 하나는 무언가 박자가 있는 소리를 낸다... 웃음소리인가? 내 몸이 공기에 짓눌려 으스러지는 것만 같다. 나는 결국 못 버티고 땅속으로 파고든다. 그러자 나를 감싸오는 모래의 무게에 비로소 좀 편안해진다.

어째서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망가뜨렸는지 보지 못하는 건가? 어떻게 감히 우리를 이런 식으로 결딴낼 수가 있나?

‘무자비하고 막돼먹은 것들.’
내 껍질이 분노로 하얗게 달아오른다. 인간들이 우리를 파괴하게 가만히 내버려둘 순 없다.

나는 모래 속에서 뛰쳐나간다. 깜짝 놀란 놈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동안, 나는 대지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내 이름돌에 불어넣는다. 그때 한 인간이 내던진 칼날이 내 다리로 날아와 나의 투명한 껍질을 깨뜨린다.
‘너희는 죽음의 노래만 부르는군. 그래, 그 노래는 나도 부를 줄 안다.’
나는 태양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그러자 땅에서 날카로운 수정 조각들이 터져 나와 인간들을 공격한다.

인간들이 혼비백산 법석을 떠는 동안 가짜 불이 다른 데로 옮겨 붙는다. 그들이 나뭇가지와 짐승 가죽으로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불집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어둠을 밝히고 인간들을 집어삼킨다. 하늘에서 눈을 깜빡이는 별들을 향해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인간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지만, 아무리 빨리 뛰어도 나를 앞지르지는 못한다. 나는 그들을 한 바퀴 둘러가서 뒤처진 인간 한 명을 발톱으로 해치우고, 또 한 명을 발로 공격한다. 금세 사방이 죽음으로 물든다.

‘너희의 죽음은 우리의 대지를 만질 자격이 없다.’
나는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이건 노래가 아니라 외침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꼬리를 휘둘러 인간 여럿을 한꺼번에 쓰러뜨리고, 다시금 태양의 에너지를 불러와 수정 조각들을 그들에게 날려보낸다.

‘이제야 내 노래를 듣는군...’
나도 그들처럼 무자비해졌다. 나는 잔혹이다. 나는 죽음이다.

앞으로 나는 꿈속에서 분노만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깊은 어둠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이제 살아남은 인간은 딱 한 명뿐이다. 그 인간 여자는 나무와 금속으로 만든 번쩍이는 물건을 들고 허우적거린다. 나를 죽이려고 저러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물건에서 뿜어져 나온 가짜 햇빛이 내 딱딱한 껍질을 뚫더니, 그 빛이 내 속살을 그을리고 내 수정에 비쳐 반사되면서 나를 마비시킨다. 나는 고통에 빠져 비틀거린다.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제는 끝장인가보다.

그때 어렴풋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리는 하나야.’

여자가 다시 무기를 겨눈다. 그걸 본 나는 퍼뜩 공포를 떨쳐낸다. 그 무기에 우리의 하얀 이름돌이 묶여 있었다. 여자는 우리의 생명 에너지를 빨아들인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끔찍한 노래를 부르는 데에 수정을 낭비하다니. 분노와 고통이 차올라 폭발할 것만 같다.
나는 고함을 내지르며 대지에서 힘을 끌어올려, 꼬리에 박힌 침으로 그 여자를 강타한다. 그리고 곧바로 여자의 무기를 빼앗아 움켜쥐고 단숨에 으스러뜨린다. 무기는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우수수 쏟아지고, 내 손에는 하늘의 흰 빛이 담긴 수정만 남는다. 드디어 우리의 이름돌을 되찾은 것이다.

‘나는 여기 있어. 우리는 하나야.’
나는 수정을 혹시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입으로 꽉 물고, 바닥에 쓰러진 여자를 돌아본다.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앞으로는 절대로 우리의 이름돌을 훔쳐가지 마라.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 우리는 모든 것이며, 오로지 깊은 어둠에 속하는 존재다.’

여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도망친다. 나는 여자가 도망치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자비심 때문에 살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 여자가 내 꿈노래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노래를 들은 이상, 그녀도 반드시 노래하게 될 것이기에.

3. 구 설정

3.1. 구 장문 배경 1

스카너에 대해 알고 싶은가? 그럼 먼저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의 오딘 계곡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는 브락컨이라는 종족이 살았는데, 이들은 신체는 수정으로 이루어졌고 생명은 태고의 대지 마법의 축복에서 비롯한 신비로운 존재였다. 브락컨은 무척 사나웠으나 그만큼 현명하기도 했던 것 같다. 비전 의식을 통해 자기 생명의 정수를 수정에 옮겨 담은 후 공명을 통해 수정의 마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니까. 이들은 그 강건한 신체와 마법의 힘을 활용해 오딘 계곡을 지켜 왔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적이 대지 마법의 힘과 계곡의 수정을 탐내고 침입해 왔지만, 그 누구도 브락컨의 방어선을 뚫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브락컨들도 룬 전쟁의 재앙을 피해갈 순 없었다. 오딘 계곡 근처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끔찍한 혼돈 마법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혼돈의 힘이 수정을 오염시키자 브락컨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방어 마법으로도 이를 막아낼 수 없음이 분명해지자, 브락컨들은 절멸을 피할 최후의 수단으로 동면을 선택했다. 땅 속 깊은 곳에 잠든 채로 전쟁의 참화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언제 끝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누군가 강하고 현명한 브락컨이 먼저 깨어나 상황을 살피고 동족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했다. 이 수호자 역할로 선택된 이가 바로 스카너로서, 그는 다른 브락컨들보다 지면 가까이, 좀 더 얕은 곳에서 동면하고 있었다.

스카너의 동면은 계획보다 일찍 끝났다. 캘러맨다 마을에서 광산이 발견된 이후 사람들이 무분별한 채굴을 시작했던 탓이었다. 느닷없이 지면에서 파헤쳐진 스카너는 분노와 혼란에 빠져 사방에 무턱대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다 겨우 이성으로 분노를 억누르고 보니, 스카너를 파낸 자들에겐 적의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리그에 봉사하는 하급 일꾼들에 불과했다.

전쟁 학회에 초대받은 그는 소환사들에게 브락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대신 브락컨들이 잠든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룬 전쟁은 이제 끝났으며 인간들은 무시무시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마법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세계는 아직 위험한 곳이었다. 스카너는 잠들어 있는 동족들을 깨우는 대신,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기로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챔피언으로 활약하기로 한 것이다.

"인간들은 아직 마법을 통제할 방법을 찾지 못했소. 예전에 캘러맨다였던 이곳은 이제 이 세계의 역사에 남은 수정의 흉터일 뿐이지." - 스카너

3.2. 구 단문 배경

슈리마의 깊은 계곡에 서식하는 강력한 수정 전갈, 스카너. 고대 브래컨 혈통을 지닌 스카너와 그 동족은 뛰어난 지혜를 갖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브래컨의 영혼은 선조대의 모든 사상과 기억이 내재되어 있는 생명 수정과 결합되어 있는데, 이것은 브래컨이 물속뿐만 아니라 육지와도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이들 브래컨 종족은 생명 수정의 마법이 풀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면에 들어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발생한 매우 위협적인 사건들로 스카너가 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수많은 브래컨 가운데 오직 혼자서만 깨어난 스카너는 위해를 가하는 적들로부터 동족을 보호하기 위해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3.3. 구 장문 배경 2

슈리마의 황폐한 사막 땅에 인간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모래 사막은 태고부터 존재하는 마법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파른 절벽과 제멋대로 솟아오른 바위로 둘러싸인 외딴 계곡. 그곳에는 오랜 혈통을 자랑하는 브래컨 종족이 광활한 모래더미 한 가운데서 수정 원석을 캐내고 있었다. 힘겨운 노력 끝에 자신만의 수정을 발견하면 각각의 브래컨들은 영혼과 결합하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 그러고 나면 이 원석에는 생명 수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육신이 죽고 나서도 이 생명 수정에는 브래컨의 영혼이 그대로 남아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브래컨은 천 년이 넘도록 생을 이어가고, 영혼까지 소멸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육체적 죽음에 맞닥뜨린다 해도 그것은 완전한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육체가 죽음에 이를 경우 생명 수정은 계곡 깊은 곳에 묻혀 새로운 브래컨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된다. 생명 수정 그 자체는 외부의 충격에 매우 취약하지만 이런 식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그 속에 내재된 선조들의 지혜까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린 브래컨들이 모두 자신만의 수정을 찾아 헤매는 이유이다. 원시의 마법과 기억이 새겨진 수정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브래컨을 향해 부드럽게 손짓한다. 그렇게 꼭 맞는 브래컨과 수정이 만나게 되면 성스러운 결합 의식이 진행된다. 수정은 선조의 기억과 지식으로 브래컨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태고의 마법이 걸리도록 주문을 건다. 이렇게 되면 원석 수정은 그 영혼에 생명이 불어 넣어진 생명 수정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후 브래컨은 이 생명 수정 없이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기운도 달려 결국 오래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비교적 어린 축에 속하는 스카너는 여느 브래컨과 마찬가지로 몇 년의 세월을 자신만의 수정을 찾아 헤맸다. 결국 찾지 못하고 죽을 것을 두려워한 스카너는 더욱더 끈질기게 수정 찾기에 매달렸다. 밤이고 낮이고 온 계곡과 언덕을 파헤치며 돌아다녔지만 결코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거의 포기했을 무렵, 스카너는 알 수 없는 옛 선조의 영혼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래로 아래로 쉬지 않고 땅을 팠다. 그렇게 며칠 동안 힘겹게 파 내려 갔지만, 미지의 그 영혼은 마치 더 깊이 파 내려 가라고 주문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스카너의 집게발이 닳고 닳은 돌멩이 하나를 꽉 물었고, 그 순간 스카너는 자신의 뒤에서 희미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느꼈다. 아주 희미하게 들렸지만 스카너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카너 자신만의 원석 수정을 마침내 발견했다는 것을.

그 수정은 그가 여태껏 본 가운데 가장 큰 크기였다. 하지만 너무 많이 닳아서 광택은커녕 순간순간 느껴지는 희미한 빛줄기만 겨우 감지될 정도였다. 억겁의 세월을 땅속에 묻혀 지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표면은 갈라질 대로 갈라지고 둔탁해져 있었다. 스카너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수정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행여 상처라도 날까 전전긍긍하는 눈치였다. 후 – 후, 마치 스카너의 숨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 수정은 희미한 불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스카너는 원석 수정과 함께 깊은 땅속으로 내려가며 결합 의식을 시작했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무척 힘들고 지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온몸은 기운이 모조리 빠져나간 듯 보였다. 하지만 벅찬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고, 태고의 기억과 지혜가 자신의 영혼 속으로 전해지는 그 느낌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경지였다. 옛 선조들이 경험했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하는 순간, 스카너는 온몸에 마법이 걸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낮게 들려오는 허밍 소리는 자신의 육체가 세상과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말없이,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숨결을 오롯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와중에 룬 전쟁이 점차 격렬해지며 온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브래컨 종족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이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래서 인간이 이 전쟁을 완전히 끝낼 때까지 동면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인간 종족은 분명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정 전갈 브래컨 종족은 슈리마 사막의 깊은 땅속으로 들어갔다. 젊고 강력한 전갈은 표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제일 먼저 잠에서 깨어나 동족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에서였다. 생명 수정으로부터 얻은 강력한 힘을 통해 스카너는 브래컨 종족 내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우뚝 올라섰다. 종족 보호 차원에서 그는 다른 전갈들이 모두 동면에 들고 난 후 가장 늦게 긴 잠을 청했다.

평화로운 동면은 수 세기가 넘도록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펑! 펑! 갑작스러운 폭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표면 가까이에서 동면하고 있던 무리는 굉음에 놀라 정신을 잃고 말았다. 폭발물은 브래컨이 잠들어 있는 땅속을 겨냥하고 있었다. 생명 수정을 노린 도적떼의 짓이었다. 유일하게 잠에서 깨어난 스카너는 생명 수정의 보호 덕에 폭발물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간신히 화를 면한 스카너는 잠시 놀란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집게발과 독침으로 도적떼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스카너 혼자 여러 명의 도적떼를 상대하기는 사실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놈들은 하나 둘 나가떨어졌고, 남은 몇몇은 지레 겁을 먹고 있는 힘껏 도망쳤다. 스카너의 완벽한 승리였다. 스카너는 그제야 자신만이 이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깨어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브래컨의 생명 수정은 이미 도난당했다는 사실도 함께.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스카너는 여전히 동면 중인 다른 브래컨들을 깨워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도적떼의 손에 생명 수정을 빼앗긴 브래컨들은 잠시 정신이 드는가 싶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 아예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슬픔을 가눌 길 없던 스카너는 잠든 동료들의 주위를 서성이며 여러 날을 보냈다. 생명 수정은 인간의 손에 넘어가는 즉시 모든 능력을 상실하고 말기에, 뼈아픈 상실의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부서지듯 흩어지던 어느 해 질 녘. 스카너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메아리를 듣게 되었다. 비록 작은 소리였지만 아주 선명하게 들려오는 생명 수정의 외침이었다. 도적떼의 손에 넘어간 생명 수정들이 스카너를 향해 다시 브래컨과 결합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고 있었다. 스카너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들을 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브래컨이라도 제대로 지켜야 하는 것인지.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스카너는 포악한 도적떼에게 시달리고 있는 생명 수정의 간절한 외침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수정들을 구해내기로 결심했다.

스카너는 생명 수정의 위치를 찾아 나섰다. 아주 고된 여정이었다. 혼자라는 사실에 외로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빨리 찾아달라고 부르짖는 수정들의 울부짖음에 그런 생각은 쉬이 사라지곤 했다. 고통 속에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외로움 조차 사치였다. 스카너는 더욱 결연한 의지로 모든 생명 수정을 찾아내리라 굳게 다짐했다.

3.4. 리그의 심판

후보: 스카너
날짜: CLE 21년, 8월 5일
관찰
으스스한 침묵이 감돈다. 한 때 캘러맨다Kalamanda는 정신없이 활기찬 곳이었고, 하루의 어느 때든지 마을의 곳곳에서는 곡괭이와 광물 손수레의 합창,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함 소리로 이루어진 노래가 울려퍼졌다. 이제 이 마을은 죽은 듯이 조용하다. 먼 곳에서 들리는 새 소리도, 풀잎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의 속삭임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머리 위에 아른거리는 푸른빛의 투명한 반구는 갇힌 이들의 마음 속에 도사린 적의도, 선의도 모른 채 그 안에 모든 생명을 가둬두고 있다.
갑자기 마을 한가운데의 땅이 위로 터져나온다. 캘러맨다에 위치해 있던 리그 구조대원들은 날카롭고 위험한 수정 하나가 땅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멍청히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마치 공기를 맛보는 듯 그 자리에 잠시 머무르다가, 갑자기 근처에 서있는 인간들을 덮친다. 그 수정에 붙어있는 나머지 몸뚱아리가 흙을 뚫고 솟아오르자 이들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피한다.
그 거대한 생명체는 대지의 가장 귀중한 보석들로부터 만들어진 듯하다. 그 분절된 몸체의 각 면마다 빛이 반사되어 반짝여 마치 이 이상한 생명체의 탄생을 축하하는 듯한 후광을 비춘다. 인간들을 향해 날아드는 위협적인 집게발이 만나는 모든 것을 잘라버리려 한다. 리그의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을 보호하며 절망적으로 고함을 지른다.
그 수정 전갈이 으르렁대며 괴성을 지른다. 분노만큼이나 슬픔으로 가득 차있는 포효이다.

성찰
스카너는 작은 복도에 옆구리를 긁히지 않으려 다리들을 힘겹게 움직이며 전쟁 기관 안을 종종걸음으로 가로질렀다. 인간들이 이 예상치 못한 방문객을 위해 공간을 내주는 대신 그를 쳐다보기만 하며 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도 그를 귀찮게 했다. 호위병 하나가 거대한 한 쌍의 문까지 그를 인도하였고, 그 너머에 있는 한 어두운 방에는 인간 한 명이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 스카너는 힐끔힐끔 엿보는 시선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이 그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엿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 인간의 정직한 몸가짐은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목적을 알려주었다.
"저는 비전 마법관의 역사 관리인, 버트랜드 워즈워스입니다. 당신과 같은 종족의 분을 만나게 돼서 실로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군요. 제 연구 어디에서도 브래컨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버트랜드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카너의 장엄한 형상을 눈여겨보았다.
"그래, 인간들은 우리 종족뿐 아니라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없애려 했었던 모양이더군." 스카너가 차분히 답했다.
역사학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너무 스스럼없이 말했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없이-"
"아니, 사과해야 될 것은 나다." 스카너가 턱을 악물었다. "날 용서해다오. 이 새로운 세상은 너무나도 이상하구나, 수백 년 전의 슬픔이 아직도 내 기억에는 이렇게 생생해."
"당연한 일입니다."
"자, 그럼 어서 너희들의 이 심판 의식이라는 것을 진행하지." 스카너는 어서 이 곳을 떠나고 싶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마을에서 보여주신 그 일과 우리가 나눈 대화를 통해 당신이 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은 이미 모두 충족된 셈입니다. 당신의 동족들의 귀환을 위해 싸우겠다는 헌신적인 면모는 정말 훌륭한 것입니다. 당신처럼 독특한 분을 우리 기관에 모시게 된 것 또한 정말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군요." 그가 망설였다.
"하지만 브래컨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은 것이군."
"그렇습니다." 버트랜드가 손에 든 두루마리를 높이 들었다. "여기에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줄 주문이 있습니다."
스카너는 잠시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형제들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나도 강렬했지만, 거기에 따르는 대가 또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
빛나는 마법의 파동이 방을 채웠다. 갑자기 스카너는 예전 그대로의 세상을 다시 보고 있었다.
대지의 차가운 흙이 그를 감싸며 지친 다리를 위로해주었다. 스카너는 자신의 삶의 원정의 마지막 순간 그를 휩쌌던 피로와 광기를 인지할 수 있었다. 자신의 생명의 정수와 공명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수정을 찾기 위해 동족들로부터 떨어져 산 속 깊은 곳으로 여정을 떠난지 벌써 수 년째였다. 그의 것이 아닌 수정을 파내고 또 파내는 동안 절망이 스카너를 집어삼키려 위협하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흙 속으로 집게발을 파넣었을 때 마침내 그는 남은 평생 동안 그와 결속될 주형석을 찾을 수 있었다.
스카너는 숨막힐 듯한 안도감과 경외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끼며 그 보석을 조심스럽게 파내었다. 그 수정은 브래컨과 공명하는 모든 수정들 중에서, 아니 그가 본 모든 수정들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었다. 그는 수 세기 동안의 지식을 엮어 보석으로 만들어낸 대지의 유산에 감탄하며 모든 반짝이는 면에 새겨져 있는 정교한 무늬를 한참이고 들여다보았다. 스카너가 자신의 몸으로 수정을 감싸자 그 수정이 맥동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주형석을 찾아내지 못한 채 수치스럽게 홀로 죽을 것이라는 그의 두려움을 전부 달래주었다.
그가 결속의 주문을 속삭이자 자신의 영혼이 대지와 하나가 되며 노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억겁의 세월 동안 축적된 지식을 마음 속에 받아들일 수 있었던 수정과의 첫 번째 명상 이후 그는 수 일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자연계의 목소리들이 그에게 원시 마법의 비밀과 수백 년 전의 역사를 속삭여 가르쳐주었다. 그 뒤 수십 년 동안 스카너는 거의 매일매일 자신의 수정과 이야기하며 그 안에 부여된 지식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스카너는 동료 브래컨들에게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전해주었고, 그들은 다시 미래의 브래컨들을 위해 그 지식을 자신들의 주형석에게 가르쳐주었다.
파괴적인 폭발이 땅을 뒤흔들었다. 스카너는 무엇이 올지 알고 있었다.
몇 초 뒤 맹독성 구름이 계곡을 휩쌌고, 수정들이 생경한 빛을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윙윙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귀청이 멀듯한 비명 소리로 바뀌었다. 수정들이 하나씩 깨지며 사방으로 빛나는 파편들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 수정들과 결속되어 있던 브래컨들은 비명을 지르며 땅 위에 쓰러져 고통으로 몸을 뒤틀었다.
혼돈이 가득했다. 브래컨들은 죽어가는 형제들에게 회복의 마법을 불러내리고 계곡 주변에 방어막을 형성하였지만, 모두 허사였다. 브래컨들은 계속 죽어갔고, 그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브래컨의 필사적인 간청은 마침내 주형석 수정 안에 담긴 고대의 마법을 일깨웠고, 그 마법은 그들을 지하로 불러들였다. 브래컨과 수정이 하나가 되어 둘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 될 때까지 힘을 합해 서로를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스카너는 마지막까지 잠들지 않고서 낙오된 동료들을 지하로 인도하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또다른 비정상적인 에너지의 파동이 계곡에 물결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서 지하로 뛰어들어 동족을 위해 기도하며 동면의 주문을 시전했다.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날카로운 빛이 그를 깨웠고, 그는 눈을 홱 떴다. 주형석이 맥동하고 있었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기억 속에는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스카너는 수정을 향해 다리를 뻗었고, 갑자기 다시 한 번 과거로 내던져졌다.
오딘 계곡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브래컨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전쟁 중인 인간들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로브를 입은 인간들이 원의 중심에 세심히 놓여진 여러 개의 룬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들의 목소리가 동시에 높아지자 갑자기 룬들에 금이 가더니 사라졌다. 그 자리에 잠깐 동안 강렬한 에너지의 덩어리가 잠깐 동안 머무르다가 깜빡이며 사라졌다. 잠시 뒤, 멀리 떨어진 도시 하나가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라지며 계곡 전체가 맹렬히 흔들렸다.
대지는 몸을 떨며 도움을 찾아 마법의 손가락을 뻗었다. 그 손가락은 작지만 사나운 생명체들을 찾아냈고, 이들을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수정들로 불러들였다. 그 곳에서 대지는 전갈들에게 수정의 힘을 부여하였고, 둘이 융합하며 브래컨이 등장하였다.
주위가 사라지자 둘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브래컨과 인간 모두 이 새로운 사실의 무게에 짓눌린 채 침묵하고 있었다.
인간의 실수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갔고, 인간의 실수가 그들을 무에서 창조해내었다.
스카너는 분노와 슬픔에 휩싸인 채 괴성을 지르며 방 여기저기로 꼬리를 마구 휘둘렀다. 그는 마치 죽어가는 형제들의 모습을 마음 속에서 몰아내려는 듯 집게발로 땅을 계속해서 내려쳤다. 간신히 몸을 피한 버트랜드는 스카너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버트랜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역사학자는 고귀하게도 이 놀라운 역사의 발견에 대한 자신의 흥분을 감추려 애썼지만, 형편없는 시도였다.
브래컨의 목소리는 상실의 무게에 짓눌린 채 거칠고 낮았다. "우리의 종족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기억될 수만 있다면 이런 슬픔은 수천 번이고 다시 겪어도 좋다. 너희들이 원하던 답은 모두 얻었는가?"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많이 얻었군요." 버트랜드는 경이로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더 볼 일은 없겠군."
버트랜드는 그 생명체를 위로하려 했지만, 그가 아는 어떤 말도 위안을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깊이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려 로브를 휘날리며 방에서 뛰쳐나갔다.
스카너는 방에 남아있었다. 쓰디쓴 깨달음이 남아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 이상한 세상에는 그가 이해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이 전설의 리그에서의 매 호흡, 매 순간, 매 싸움이 다시 한 번 브래컨들을 되살릴 수 있는 데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길이기를, 그는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