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전차가 처음 실전을 겪은 것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였다. 영국군에게 공여된 이 스튜어트 전차들은 1941년부터 북아프리카의 추축군과 맞서게 되었으나 처음에는 여러 가지의 전술적 결함을 드러내었는데, 일례로 초기 스튜어트 전차에 장착되었던 콘티넨탈 엔진의 문제로 전차의 작전범위가 너무 짧다던가[1]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은 이 전차를 신뢰해서 위에도 서술된 '허니'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스튜어트는 북아프리카 전역 내내 영국군 기갑부대의 한축을 담당했다.
매우 작고 가벼운데다, 정글의 안좋은 도로 사정에서도 무리없이 기동하는 내구성 덕에 영연방군과 미군의 주력 경전차로 애용되었다.
기술력이 나름 안정된 국가이던 나치 독일이 있던 북아프리카 전선과 동부전선, 서부전선에서는 독일의 전차와 대전차 화력으로 인해 활약은 했어도 경전차의 한계로 주력전차로 기용까지는 못 미친 반면 기술력이 서구 열강에 비해 뒤떨어지던 일본군을 상대로는 주력전차로 활용해도 될 만큼의 활약을 보였다. 몇몇 일본군은 스튜어트 경전차를 자국 기준으로 중형전차로 봤기에 전차로 인식하였다.
일본군도 스튜어트 전차를 버마 전역에서 영국군으로부터, 필리핀 전선에서 미군으로부터 노획해 운용하기도 하였다.
인도-파키스탄 간의 전쟁이 발발하며 M3A3과 M5A1 다수가 인도군 측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이 중 매우 특이한 기록 중 하나가 바로 1948년 11월 1일 실시된 조지라 계곡 기습 작전으로, 당시 인도군에는 총합 11대의 M5A1이 동원되었는데, 스튜어트의 높은 기동성과 내구성 덕분에 다른 탱크나 기갑장비는 고장이 속출하는 와중에도, 스튜어트들은 무려 해발 3,500미터 고도에 위치한 외딴 지역에서도 문제없이 기동하였다.
이에 파키스탄군 측에서는 "설마 이런 곳에 전차가 올라올 수는 없겠지."라며 안이하게 있다가 인도 육군이 보란 듯이 스튜어트를 이끌고 기습을 행하자 손쓸 수도 없이[5]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으며, 인도군은 조지라 계곡을 점령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전투로, 스튜어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서 전투를 치른 전차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축구 전쟁 당시 엘살바도르 측에서 사용하였는데, 재밌게도 당시 엘살바도르는 육군이 강대한데 비해 공군이 빈약하여 제공권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상대인 온두라스군은 정 반대로 공군 전력만 강대하여 제공권을 잡았어도 지역 자체를 점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어, 온두라스 공군이 부재중일 때 엘살바도르군의 스튜어트가 빠르게 달려가 점령을 했으며, 이 때문에 구식 전력이었지만 굉장히 활약했다고 전해진다.
[1] 대략 120km 정도로 당시 영국군의 크루세이더 전차가 230km 가량이다.[2] 1946년 2월 8일에 촬영된 사진으로, 옆에 있는 전차는 97식 중(中)전차 치하이다.[3] 1949년 양쯔강 유역에서 촬영된 사진이다.[4] 1948년 11월에 라다크 방면에서 촬영된 사진이다.[5] 당시 파키스탄군의 대전차화기나 전차들은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방심한 탓에 대전차화기의 보급이 되질 않아 조지라 계곡에 주둔하던 파키스탄군에게는 단 한개의 대전차화기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