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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와 요이치 | |
출생 | 1950년 10월 26일 ([age(1950-10-26)]세) |
가족 | 어머니 에리카와 후사요(襟川 ふさ代) 아내 에리카와 케이코(襟川 恵子) 장녀 에리카와 메이(襟川 芽衣) 차녀 에리카와 아이(襟川 亜衣) 둘째 사위 에리카와 테츠야(襟川 徹也)[1] |
학력 | 게이오기주쿠대학 상경학부 |
직업 | 게임 개발자 |
소속 | 코에이 테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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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부사와 코우
삼국지 시리즈,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등의 프로듀서. 같은 형식으로 후쿠자와 에이지란 이름을 쓰기도 한다. 유래는 에리카와가 존경하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코에이의 코우
그 정체는 코에이의 창업자인 에리카와 요이치(襟川陽一)로, 부인이자 당시 전무였던 케이코가 입 생 로랑이나 셀리느, 디올 처럼 사람의 이름을 브랜드 화 시키자는 제안에 따라 만든 것으로 83년 노부나가의 야망을 시작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비슷한 것으로는 토에이의 야츠데 사부로, 선라이즈의 야타테 하지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원래는 일종의 팀 명이나 해당 작품의 프로듀서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2000년에 플스2용 소프트 '결전'을 발표하며 '에리카와 요이치'의 펜 네임, 이명으로 공식화하였다.
후쿠자와 에이지란 이름은 대항해시대 시리즈, 영걸전 시리즈 등의 리코에이션 계열 게임 오프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시부사와 코우란 이름을 쓰고[2] 리코에이션 게임에서는 후쿠자와 에이지 이름을 쓴다. 이쪽의 유래는 에리카와의 모교 게이오기주쿠대학 설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코에이의 '에이'+'2번째, 다음'을 뜻하는 '지(次)'.
2. 생애
1950년 일본 토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염료 도매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시절 학업성적이 뛰어났고 특히 고교시절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 졸업 후 아버지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게이오기주쿠대학 상경학부에 진학하게 되었고 하숙을 하다 하숙집 딸인 한살 연상의 에리카와 케이코를 만나게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대학 졸업 후 가업인 염료도매상을 경영하게 되나[3] 2년간 경영난이 극심해져 직원 급료를 줄돈이 없어 아내와 같이 일을 했고 수익은 커녕 부잣집 처가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서점에서 PC잡지를 발견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생일 선물로 당시에 초고가인 컴퓨터를 선물하게 된다.[4] 현실 도피에 대한 욕구가 그를 컴퓨터에 집착하게 하였다.
프로그래밍을 독학할 정도로 컴퓨터에 빠져든 그는 이윽고 직접 게임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게이오기주쿠대학 상경학부 출신이었던 그는 자신의 경제적 지식을 살려서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경제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했고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면 우편으로 디스켓을 보내는 통신 사업 방식까지 고안하여 컴퓨터 잡지에 게임 판매 광고를 냈다. 그 결과 본업인 염료도매업보다 게임 판매가 훨씬 잘 돼서 그는 염료도매업을 정리하고 다시 게이오대학에 사무실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코에이를 전문 게임 개발 업체로 개편하였다.
그 후 코에이는 다양한 작품들을 히트시키면서 현재 일본에서 주가 총액 2조엔을 달리고 있는 7번째 규모의 게임 전문 개발 회사가 되었다. 우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빠져든 컴퓨터가 인생을 바꾼 것이다.
3. 활동
1950년 10월 26일생으로 일본에서는 최고령 게임 크리에이터로 유명하며[5] 문명을 만든 시드 마이어와 비견되기도 한다.역사를 소재로 하는 게임을 개발하지만 게임 자체는 항상 새로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각 시리즈마다 개성을 갖도록 게임 기획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한다. 또한, 게임을 통해 역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게임 마니아들을 보고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코에이 테크모 홀딩스의 에리카와 요이치 사장과의 인터뷰 - 코에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인터뷰를 보면 [age(1950-10-2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인 듯.
2024년 G-STAR 를 방문해 컨퍼런스 'G-CON'에서 그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강연을 했다. (강연 전 국내 게임 매체 인터뷰)
4. 여담
가족으로는 어머니인 에리카와 후사요(襟川ふさ代, 1925년 8월 25일생)가 있으며 부인으로는 에리카와 케이코(襟川恵子, 1949년 1월 3일)가 있다. 자식으로는 장녀인 에리카와 메이(襟川芽衣, 1976년 4월 30일생)과 차녀인 에리카와 아이(襟川亜衣. 1978년 8월 9일)을 두고 있다.특히나 아내 에리카와 케이코가 지금에 코에이를 만드는데 상당히 일조를 했다. 코에이가 염료 도매상이던 시절 요이치가 게임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처가의 경제적 지원 덕분이였고 창업 초창기 게임은 애들이나 하는 거라는 생각이 팽배했을 때 이제는 성인들이 즐기는 게임이 돈이 된다고 주장하여 성인용 게임을 개발하게 했고, 남편이 역사에 관심이 많자 역사게임을 만들 것을 권유하였다.
그 뒤 90년대엔 당시 게임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기였음에도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라며 남편과 임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억지로 루비파티팀을 발촉해 성공을 거두었다. 코에이 게임이 옛날부터 디자인 감각이 좋다는 평이 많은데 이는 케이코가 타마 미술대학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인 영향도 있다.
근데 이러한 성공들 때문인지 상당히 독단적이다. 사내에서 여왕으로 불리며 케이코에 의견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면 퇴사라는 말이 떠돌 정도이다. 실제 루비파티때 반대했던 임원들 대부분이 루비파티 성공 이후 잘려나갔다.
이 외에도 주식투자의 상당한 귀재이며 요이치가 염료상으로 힘들때 주식투자로 번 돈으로 당시 초고가인 컴퓨터를 사줄 정도였다. 그래서 코에이의 첫게임도 주식투자 게임이다.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 회장도 인정할 정도(소프트뱅크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다)이며 2021년도에는 주식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큰딸 에리카와 메이는 코에이 테크모의 임원으로 참여 중이며 코에이 테크모의 브랜드 중 하나인 루비 파티의 대표자를 맡고 있으며 미혼이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듯 하며 2020년 12월, 일본 게임전문 웹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드라마 중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인상깊었다고 말하고,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JY Park(박진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코에이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경영능력에 질타를 던지고 있다.[7]
차녀인 에리카와 아이는 株式会社光優ホールディングス의 감사역으로 임원 명단에는 올라와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대신 株式会社光優ホールディングス의 상무이사에 올라와 있는 남편인 에리카와 테츠야(襟川徹也, 1979년 12월 29일생)가 코에이 테크모에서 근무하고 있다.
[1] 데릴사위이다.[2] 안젤리크 첫 작품에도 참여한다.[3] 가게이름이 코에이(光營)였다.[4] 기종은 샤프사의 MZ-80C.[5] 그 미야모토 시게루보다 2살 많다! 현재 고희를 넘겼는데도 전혀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아내인 케이코가 요이치보다 1살 더 많기 때문에 이 쪽이 최고령. 생일이 더 빠른 니이타니 마사미츠도 있다.[6] 리니지2와 아이온: 영원의 탑의 흥행을 밀었던 김택헌(TJ의 동생) 역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사람을 불려나갔다.[7] 메이가 루비파티 장을 맡으며 새로운 게임보다는 타 기종 이식 우려먹기와 미디어 믹스 우려먹기가 매우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