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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01:51:04

니이타니 마사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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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파일○ 대표
니이타니 마사미츠
仁井谷正充 | Moo Niitani
파일:仁井谷正充.png
<colbgcolor=#ff55aa><colcolor=#ffffff> 출생 1950년 2월 10일 ([age(1950-02-10)]세)
일본 히로시마현 미하라시
거주지 일본 치바현 마츠도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게임 기획자, 기업인, 스트리머
현직 컴파일○ 주식회사 대표이사
학력 히로시마대학 이학부 물성학과 중퇴
신체 165cm, 52kg, B형
종교 무종교[1]
가족 아버지 니이타니 스스무[2]
어머니 니이타니 사나미

아들 니이타니 케이고
경력 히로시마 전철 차장
컴파일 대표이사
前 아이키 대표이사
前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아카데미 강사
前 요요기 애니메이션 학원 강사
별명 무사장, 뇨끼할배, 컴파일의 아버지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회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메인)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바둑)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파일:스팀 아이콘.svg 컴파일○ 파일:트윗캐스팅 아이콘.svg 파일:트위치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컴파일 설립 이전2.2. 컴파일 대표이사
2.2.1. 게임 개발 외 활동
2.2.1.1. 음악 활동
2.3. 컴파일 파산 이후2.4. 컴파일○ 대표이사
3. 한국에서의 인지도
3.1. 컴파일 사장 시절 - 1997년3.2. 디시인사이드에서의 유행3.3. 스트리머 활동3.4. 언론 보도
4. 기타
4.1. 개인 신상 관련4.2. 스트리머 활동 관련

[clearfix]

1. 개요

일본의 게임 개발자, 가수, 인터넷 방송인. 컴파일○ 주식회사(コンパイル丸株式会社)[3]의 사장. 컴파일과 아이키의 사장을 역임했다.

필명은 Moo 니이타니. 'Moo'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무'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2. 생애

니이타니 마사미츠의 생애는 일본 게임사에 있어 그 중요성이 크다 판단되어 리츠메이칸대학히토쓰바시대학이 공동으로 구술 채록을 진행하여 2018년 발표한 바 있다. 구술 채록 1 구술 채록 2

2.1. 컴파일 설립 이전

파일:moouniv.png
대학 시절 수영부 활동
히로시마현 미하라시 출신. 유년기 집에서 오코노미야키 가게를 하다가 만화책 대여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히로시마식 오코노미야키를 자주 해 먹는다. 당시 TV가 없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만화책을 많이 접했다 한다. 학창 시절을 전부 미하라시에서 보낸 그는 수학에 두각을 나타냈고, 이학 계열에서 종사하기를 희망하여 히로시마대학[4] 이학부 물성학과에 진학한다. 물리학과에 진학을 희망하였으나, 2지망인 물성학과[5]로 가는 바람에 대학 시절 공부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학공투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나리타 투쟁에 참여 후 체포되는 등 학생 운동에 몰두했고, 7년간 대학에 적을 두다가 1975년 결국 중퇴하였다.

중퇴 이후 니이타니 마사미츠는 여러 곳을 전전하게 된다. 사숙을 운영하다 폐업, 히로시마 전철에서 차장으로 근무, 한동안 지인의 컴퓨터 판매점에서 근무하던 중 초창기의 개인용 컴퓨터 중 하나인 Apple II를 입수하게 되며 소프트웨어를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2.2. 컴파일 대표이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컴파일(게임 회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1987moo.png
MSX Magazine 1987년 6월 호에서

1982년 4월에 컴파일을 설립했다. 창업 초기에는 3-Programmers.inc라는 이름으로 1인 기업으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설립 2년 차인 1983년부터 세가로부터 외주를 받아 아케이드 게임 N-Sub를 SG-1000에 성공적으로 이식하며[6] 호평을 받게 된다. 초창기 시절에는 프로그램에서 음악까지 모두 혼자서 만들었고, 거의 매일 회사에서 숙식을 했다 한다. 때문에 초창기 외주 회사로서의 컴파일은 약간 무리한 납기 요구를 받더라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납품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고 한다.

당시 외주를 수행하여 히트 친 작품이 1986년작 슈팅 게임 '자낙'. 이 작품은 외주작이지만 디스크 스테이션으로 컴파일의 게임이라 홍보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알레스터'와 같은 슈팅 게임을 히트시키며 꾸준히 회사를 성장시켜 나갔다.
파일:attachment/moo_niitani.jpg 파일:niitani.png
기업인으로서 전성기 시절[7]

1991년 출시한 '뿌요뿌요'가 입소문을 타고 슈퍼 패미컴 버전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며 컴파일은 연매출 70억 엔을 기록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후 니이타니 마사미츠는 ‘뿌요뿌요’의 성공을 계기로 평소 꿈꿔오던 다양한 게임 IP 활용 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2.2.1. 게임 개발 외 활동

파일:arlemoo.png
아르르 나쟈의 코스프레를 한 모습
파일:moo_satan.jpg 파일:satanmoo.jpg 파일:satanmoo2.jpg
사탄의 코스프레를 한 모습
'뿌요뿌요 SUN'에서는 '사탄', 새턴판 '뿌요뿌요 通'에는 '카방클'의 성우를 담당했다. 신작 게임 판촉 행사에서 본인이 성우를 맡은 사탄으로 코스프레하며 등장한 것이 유명한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8]

1994년부터 히로시마의 명물 모미지 만주를 '뿌요뿌요' 캐릭터로 만든 ‘뿌요만’을 런칭. 그 이후에도 각종 ‘뿌요뿌요’ 캐릭터 상품을 런칭했다.

1995년 모터사이클 팀 ‘컴파일 레이싱 YAMAHA’를 창단해 레이싱에 뛰어들었다.
뿌요뿌요 전국 대회 기록 영상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뿌요뿌요 전국 대회인 바요엔 투어를 진행했다. 1997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에서도 열렸다.
파일:moo_puyo.jpg 파일:moo_puyo2.jpg
슈퍼 나조 뿌요 2: 루루의 철완 번성기에 등장하는 니이타니 마사미츠

1996년작 '슈퍼 나조 뿌요 2: 루루의 철완 번성기', 1997년작 '파이팅! 에이스맨'[9]에는 아예 직접 출연했다.

1998년에는 게임이 아닌 비즈니스 소프트웨어인 'POWER ACTY'를 발표하기도 했다.
파일:madohland.jpg
마도랜드(뿌요뿌요랜드)[10] 기획안
마도물어 시리즈뿌요뿌요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테마파크 '마도랜드(뿌요뿌요랜드)' 기획을 시도했다.[11] 게임 회사를 넘어 월트 디즈니 컴퍼니와 같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나아가고자 방향을 잡은 것. 이 무렵 사옥도 크게 확장한다.
2.2.1.1. 음악 활동
니이타니 마사미츠 - 상심
니이타니 마사미츠 - 게임하자!

다나카 카츠미와 함께, 혹은 단독으로 컴파일 게임의 삽입곡들을 부르기도 하였다.[12] 드림캐스트용 리듬 액션 게임인 뿌요뿌요 DA!의 컨티뉴 시 나오는 노래[13]와 네임 엔트리 시에 나오는 노래[14]가 부른 노래 중 하나.
파일:singermoo.jpg
'상심'을 열창하는 1999년의 니이타니 마사미츠

1999년, 8cm 싱글로 음반을 발매했다. 음반 사진 傷心, ゲームしようよ!, 茜色の時刻과 傷心의 가라오케 버전 2곡이 수록되어있다.

한때 가라오케로 컴파일 입사 면접을 진행하기도 했다.
가라오케에서 제대로 노래하는 사람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잘 듣는 힘이 있다. 리듬과 음정도 사람을 보는 데 중요하다. 또한 장소와 청취자들, 시대의 유행을 생각해서 어떤 곡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마케팅 능력과 가치 기준을 알 수 있다.
니이타니 마사미츠 - 2012년 「마도동창회! 컴파일 나이트!!」에서 #

2.3. 컴파일 파산 이후

게임 개발 능력으로 유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회사 경영 능력은 부족했다 평가받는다. 컴파일은 개발자 니이타니 마사미츠의 1인 기업으로 시작했기에 일정 이상 규모로 성장한 이후에도 경영진과 개발진이 명확히 구분되지 못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다.

독단적으로 회사를 경영했고[15] 무리한 사업 확장, 신입 사원들에게 핑크색 유니폼을 입히는 등 여러 기행으로 인한 사내 갈등과 인력 이탈, 그에 따른 지출이 야기되었다. 직원 내부 고발 등으로 인한 대외 신뢰도 저하는 덤. 결국 게임 개발 외 'POWER ACTY'와 '마도랜드' 기획 등으로 커진 회사 규모[16]가 감당 불가 수준에 이르었고, 결정적으로 주력 IP인 마도물어 시리즈뿌요뿌요 시리즈 붐이 사그라들자 1998년 컴파일은 처음으로 화의 신청하게 된다. 이후 회복을 위해 뿌요뿌요의 저작권을 세가에 매각하고 인원을 감축하는 등 구조 조정을 실시했지만 닷컴 버블이 한창 꺼져가던 시점이라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컴파일은 2004년에 파산폐지.
파일:nyamoo.jpg
신작 게임 '포치와 냐~'를 발표하는 2002년 8월의 니이타니 마사미츠[17]

파산 폐지 직전에 니이타니 마사미츠는 컴파일 스태프 일부를 데리고 유한 회사 아이키(AIKY)를 설립해서 컴파일의 지적 재산권을 승계했으나 이것도 2006년 말에 도산했다. 2006년 컴파일 하트가 설립되면서 퍼즐 게임 '모두 함께~☆ 타코롱'의 개발 감수 역으로 참가했으나 이 관계도 오래가지 못해 같은 해 계약을 해지하고 회사를 떠났다.[18]

컴파일이 파산하지 않았다면 니이타니 마사미츠의 경영은 유쾌한 것으로 회자되었겠으나, 결과적으로 파산에 이르었고 최종 책임자로서 오명을 쓰게 되었다. 결국 컴파일 하트에서 퇴사한 이후부터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 종종 언급되는 경우에도 비난의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2011년 2월 트위터를 개설하고, 직후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는 등 외부 활동을 재개했다.
2012년 컴파일 전직 직원들이 모인 행사 「마도동창회! 컴파일 나이트!!」에 참석하여 언젠간 신작 게임을 내놓을 것이라 밝혔다.

2015년 TV 도쿄를 통해 아르바이트로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거나, 경비원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오랜만에 화제가 되었다. 기사 과거의 위상은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 그러나 그 와중에도 게임을 개발하고 있으며, 곧 신작으로 팬들을 만나겠다 밝혔다.

2.4. 컴파일○ 대표이사

2016년 5월 18일 '컴파일○' 를 설립하였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은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컴파일'로 읽지만 표기해야 할 땐 일단 '마루'라고 읽는 모양이다. 회사 등록명도 컴파일마루 주식회사(コンパイル丸株式会社)라고. 그 후 새로운 퍼즐 게임 '뇨키뇨키(にょきにょき) 여행길 편'이 2016년 11월 16일에 닌텐도 3DS 다운로드 소프트웨어로 발매되었다. 가격은 800엔. 그리고 2016년 11월 24일 일본 닌텐도 eShop 3DS 다운로드 랭킹 3위에 들었다.[19] 컴파일○의 자금 사정상 광고는 거의 없었기에 니이타니 마사미츠 개인에 대한 주목도만으로 이뤄낸 결과이다.
뇨키뇨키 우주 정복 편 크라우드펀딩 홍보 영상

뇨키뇨키 우주 정복 편 크라우드펀딩 페이지

이후 '뇨키뇨키 여행길 편'의 후속작으로 닌텐도 스위치로 '뇨키뇨키 우주 정복 편'을 내고자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했으나 목표 금액 1,000만 엔 중 503만 엔을 모으며 50.4%로 실패하였다.

이후 <라디오 컴파일>, <MOOTV> 등으로 스트리머 활동에 도전하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 10만 명이 되면 크라우드펀딩을 재시도한다고.

신작 '라우스의 탑 대작전(羅臼の塔大作戦)'을 기획하겠다며 유튜브에 캐릭터 디자인 등을 공유하고 의견을 받았으나 취소되었다. 한국인 시청자들의 요구를 받아 '환세취호전 2' 제작이 가능한지 D4엔터프라이즈에 문의해 보겠다 했으나 저작권 문제는 둘째 치고 수중에 인건비는커녕 식비마저 간당간당한 상황이라 어려울 것이라 밝혔다. 추후 크라우드펀딩에 재도전할 의사는 보이고 있다.

2022년 1월 인터뷰를 통해 뇨키뇨키 제작에 투입된 대출금을 여전히 갚고 있으며, FX마진으로 뇨키뇨키의 닌텐도 스위치 이식 자금 마련에 도전 중이라 밝혔다. # 인터뷰 번역

3. 한국에서의 인지도

3.1. 컴파일 사장 시절 - 1997년

1997년 디스크 스테이션 3호: 제3회 뿌요 바요엔투어 in 서울[20]
파일:한국판디스크스테이션_창간호_MOO대담.jpg
한국판 디스크 스테이션 1호 - 창간호 특별 대담 MOO VS 趙
니이타니 마사미츠와 한국의 관계는 KCT미디어와 합작으로 컴파일 코리아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전성기에도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컴파일이 유일하게 진출한 국가가 한국이었다.[21]

제3회 <뿌요 바요엔 투어 in 서울>에 니아타미 미사미츠는 직접 내한하여 뿌요뿌요 한국 대회 우승자에게 일본 1997년 바요엔 투어 전국대회 초대장을 수여하였다. 이 외에도 업무차 서울에 10번 정도 방문하였다. 충청남도 부여는 일본 발음으로는 뿌요가 되기에 흥미를 가지고 방문한 적도 있다고.

컴파일 게임이나 굿즈에 사장 얼굴이 찍혀 나오는 게 상당수다 보니 한국의 컴파일 팬들도 자연스럽게 니이타니 마사미츠를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작열의 파이어댄스가 니이타니 마사미츠가 부른 노래라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컴파일 파산 이후에는 자연스레 회자되는 일이 줄어들었다. 이후 고전게임 갤러리 등지에서 니이타니 마사미츠가 컴파일 전직 직원 모임 행사 「마도동창회! 컴파일 나이트!!」에 참석하여 ‘POWER ACTY’를 전달받고 씁쓸해 하는 표정 등이 추억팔이 농담으로 간간히 소비되곤 했었다.[22]

게임 커뮤니티 등지에 뇨키뇨키를 제작 중이라는 소식이 과거 컴파일 게임을 추억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소소하게 알려졌다. 게임 다시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꽤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이미 부활을 노리며 제작한 포치와 냐~도 실패한 경력이 있기에 대부분은 별 기대 안 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나온 뇨키뇨키는 일본 닌텐도 e숍에서만 구매할 수 있어 한국에서는 몇 안 되는 구매 희망자들도 상당수 구매를 못 했다.

3.2. 디시인사이드에서의 유행

2018년 4월경부터 뜬금없이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를 중심으로 디시인사이드에서 뇨키뇨키와 함께 밈이 되었다. 뇨키뇨키의 홍보차 이것저것 벌리던 일 중 유튜브와 트윗캐스트 방송이 있어 주목을 끌게 되었다. 컴파일 할배, 뇨끼할배 등으로 불리는 중. 한때 잘나가다가 회사를 망친 사람에 대한 비틀린 관심이 반, 컴파일에서 만든 환세취호전, 뿌요뿌요를 즐긴 추억이 반으로 디시인사이드답게 대부분 조롱하고 모욕하는 게시글과 댓글이 위주이다.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에서 죽어가는 늙은이라는 말이 나오다가, 급기야는 혐한이라는 밈으로 발전[23]하면서 2019년 말에는 이중인격 '뇨뇨와 끼끼', '달밤의 조선인 사냥꾼'이라는 괴악한 별명까지 나왔다.
좌우 대칭을 한 사진을 이용하여, 순한 인상의 사진은 '천사 뇨뇨'의 인격, 험상궂은 인상의 사진은 '악마 끼끼'의 인격이라고 칭해주기도 한다.

니이타니 마사미츠는 이러한 조롱 글을 번역기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알고 있으며 컴파일 파산 건에 대해서는 간혹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래도 방송에 한국인 유입이 늘자 이후로는 한국어를 배우는 방송을 하는 등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 덕에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올라간 측면도 있다며 감사 인사를 남겼다.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 매니저는 니이타니 마사미츠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때때로 니이타니 마사미츠 유튜브 방송 계정에 찾아가 '컴파일 파산의 책임을 지라', '컴파일 레이싱 야마하라니 정신 나갔는가'라는 요지의 채팅과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 정도가 과해 갤러리 이용자로부터 비판받기도 하였다.#

3.3. 스트리머 활동

디시인사이드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와 몇몇 서브컬처 갤러리 등지에서 인기를 끌자 매주 하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한국인 유입이 점차 늘어 급기야 기존의 일본인 시청자들이 다 빠져나갔다. 컴파일 마루의 공식 방송 <라디오 컴파일>[24]이 트윗캐스트와 유튜브 동시 방송을 하던 2018년경에는 일본인은 트윗캐스트, 한국인은 유튜브로 나뉘었다. 이후 한국인 시청자층이 늘면서 트위치에서 방송해 달라는 요구가 많아지자 트위치에서 주로 방송했었다. 트위치에서는 뇨키뇨키를 하지 않고 화투, 마작 등을 했었다.

트위치 방송은 신통치 않았고, 유튜브에서 다시 <라디오 컴파일>을 진행하다가 유튜브에 개인 채널 <MOOTV>를 개설하였다.

2019년 말 이후로는 한국인이 <MOOTV> 방송의 절대다수를 차지하자 아예 초반부터 한국어 "여러분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인터넷 방송인 과로사의 유행어[25]를 구사하는 등 한국인 시청자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 여러 조언을 적극적으로 듣고 있다. 링크

한국어 배움에 대한 열의가 상당하다. 최근 들어 시청자들이 보내주는 간단한 한국어 표들을 보고 미안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등의 회화를 구사하며 매 방송마다 한 문장씩 시청자들에게 배워가겠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때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한 디시인이 직접 참석해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모양. 후기 1 후기 2

유튜브 수익 창출 이후 2020년 1월 11일, 40만 원 도네이션이 터졌다. 도네이션 리액션들 아들한테도 자랑하며 뿌듯해 하기도 한다. 이 무렵 한국인 시청자들이 보낸 도네이션 일일 수익이 세전 30만 원 가까이 찍는 나날이 반복되자 경비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에 도전하겠다 선언한다.

방송 시간대는 월요일을 제외한 주 6일 오후 8시에서 오후 10시까지이다. 외에도 쉬는 날이 있다면 전날 방송으로 직접 알려준다. 방송 시간 대부분은 스팀 유저들이 선물해 준 게임들을 주로 진행하며, 링크 오후 10시에서 오후 11시까지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게임을 주로 한다. 대개 바둑이다.

2020년 1월 경부터는 한국인 시청자들의 조언을 듣고 7시 30분부터 저녁 먹방을 찍는 방송을 보여주고 있다. 링크
ソウルに行くぜ、一万人登録で 서울에 가자, 구독자 1만 명으로

유투브 구독자가 1만 명이 넘게 되면 서울을 방문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꽤나 추상적인 계획이였지만 네이버 메인 화면, 각종 SNS에 뿌요뿌요 개발자의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로 <MOOTV>가 소개되어 빠른 속도로 구독자가 증가하였다. 이에 대해 1월 21일 방송에서 직접 밝힌 내용은 4월 중으로 서울을 방문할 것이고, 방송 관리를 도와주는 전 컴파일 직원과 함께 온다고 하며 이번 방문은 게임 관련 이야기보단 팬 미팅이 주가 된다고 한다. 팬 미팅은 호텔에서 방송을 봐주는 팬들과 함께 식사와 담소를 나누고 싶다고 하며 이벤트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니 트위터로 연락을 달라고 부탁하였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인해 서울행이 연기되었다.

1월 31일 자원봉사로 실시간 번역을 해주는 자막 제작자가 생겼으나, 구독자가 급증하자 제작자는 로열티 지급을 요청했고, 처음엔 거부하던 니이타니가 결국 지불을 한다고는 했지만... 터무니없는 니이타니의 열정페이로 2주 만에 그만두었다.

언어의 장벽도 있고 니이타니 마사미츠가 저작권 및 법적 문제로 과거 컴파일 게임을 하거나 언급하는데 제약이 많아 이후로는 점점 한국에서의 관심이 식어갔다. 니이타니 마사미츠가 D4엔터프라이즈의 허가를 받아 방송에서 플레이한 컴파일 게임 중 환세희담환세취호전 정도만 한국에 알려졌고 나머지는 한국 게이머들에게 생소했던 것. 타사 최신 게임을 하기에도 70살에 이른 니이타니가 익숙하지도 않은 게임을 전업 게임 방송인들처럼 원활히 플레이하긴 어려웠다. 더군다나 한국 언론 등지에서 '뿌요뿌요 사장님'이라 지칭될 정도로 뿌요뿌요에 의지한 인지도인데 정작 니이타니는 저작권 및 자존심 문제로 뿌요뿌요 시리즈를 적극적으로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상황.

한때 실시간 방송에 수백 명의 시청자가 참여했으나 결국 4월이 넘어가며 10명 내외의 한국, 일본 시청자만 남은 상황. 이에 생계 유지에 곤란을 겪어 2020년 상반기를 넘기지 못한 채 전업 유튜버를 포기했다. 서울 방문 공약으로 걸었던 구독자 1만 명도 요원한 상황. 그래도 유튜버를 포기하지 않고 평일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되 주말에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 밝혔다. 게임만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판단하여 일본 문화 소개, 자신만의 건강 비법, 기타 연주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3.4. 언론 보도

한국에서 화제가 되며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4. 기타

4.1. 개인 신상 관련

4.2. 스트리머 활동 관련

■チャットルール■
1.最大限チャットを見ていますが、見れないかもしれません!
2.スパムをしないでください!
3.政治的な問題や、相手を卑下して非難する用語はご遠慮ください!
4. 悪口や本人たちだけわかる隠語を利用しないでください!
■채팅 룰■
1. 최대한 채팅을 보고 있습니다만,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2. 스팸을 하지 마세요!
3. 정치적 문제나 상대방을 비하해 비난하는 용어는 삼가 주십시오!
4. 욕이나 본인들만 아는 은어를 이용하지 마세요!

4.2.1. 별명 및 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니이타니 마사미츠/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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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플레이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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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체적으로 일본인들이 종교는 없지만 신사 참배를 하는 것처럼 일본의 문화를 믿는다고 한다.[2] 2021년 작고, 향년 96세[3] 일본어로는 '콤파이루마루 카부시키가이샤'로 읽는다.[4] 일본은 지방 국립 대학들의 위상이 한국보다 높다. 히로시마대학은 2019년 THE 일본 대학 랭킹에서 12위를 기록했다.[5] 현 히로시마대학에는 없는 학과로 물성학과는 이후 물리학과에 흡수된다.[6] 니이타니 마사미츠 본인이 직접 단 댓글에 초기에 이식했다는 내용이 있다.[7] 선거 포스터 같은 사진에는 "의무 교육에 뿌요뿌요를 도입하겠습니다."라고 쓰여있다. 나중에 이 선거 문구는 뇨키뇨키에서 다시 오마주하여 써먹기도 했다.[8] 코스튬 제작 비용이 100만 엔에 달했기 때문에 니이타니 마사미츠의 방만 경영에 관한 에피소드 중 하나로 항상 언급된다. 코스프레 하나에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드냐고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는데, 퀄리티를 위해 비싼 재료로 떡칠했다고 한다.[9] 한국 정발판에는 컴사장으로 번역되었다. 일본 내에선 컴파일의 지적 재산권이 전부 세가 등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니이타니의 재산권이 세가에 있다는 농담도 있다.[10] 원래는 마도랜드였으나 니이타니 마사미츠가 훗날 2015년 이후 컴파일 시절을 회고하는 방송에 나와 설계도를 보여줄 때 어째서인지 뿌요뿌요랜드라고 소개되었다. 뿌요뿌요 시리즈가 여전히 인지도가 높다 보니 관심을 끌기 위해 명칭을 슬쩍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설계도는 경매에 나오기도 했으나 시작가가 너무 높아 유찰되었다.[11] 롯데월드 어드벤처 같은 실내 테마파크로, 실제로 기획 당시 참고하기 위해 롯데월드에 견학 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후에 어느 중세게임 갤러리 유저가 게임으로 마도랜드를 재현했다. 니이타니 마사미츠는 진심으로 감동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12] 이 때문에 다나카 카츠미가 부른 '작열의 파이어댄스' 등의 곡들이 컴파일 사장이 불렀다는 식으로 잘못된 정보가 국내에 퍼지기도 했다.[13] 제목은 傷心(상심)[14] 제목은 ゲームしようよ!(게임하자!). 이 곡은 소꿉놀이, 숨바꼭질, 깡통차기 등 어린아이들이 많이 하는 놀이와 한국, 일본 등 여러 국가 이름 등, 그리고 각종 비디오 게임의 장르들을 읊으며 모두 함께 놀자는 내용의 훈훈한 가사이다.[15] 니아타니 마사미츠 본인은 이에 대해 부정하는 입장이다. 중요 사안은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 하고, 자신은 최종 결정권이 아닌 거부권만 있었다는 것. #[16] 파산 위기 직전의 무리한 확장의 경우 대출 목적으로 회사 규모를 키우려는 의도였다는 주장이 있다. IMF 당시 대우가 쌍용차를 인수한 것과 비슷한 이유.[17] 발표 당시인 2002년까지는 컴파일 사장이었으나, '포치와 냐~'의 발매는 회사를 바꾸어 컴파일이 아닌 아이키에서 2003년에 진행된다.[18] 개발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으나 이 과정에서 사측과 협의가 원만하지 못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19] 당시 1, 2위는 각각 '포켓몬스터 썬, 문'이었다.[20] 해당 영상 5분 8초경 등장, 참고로 이때 뿌요뿌요를 부른 UP가 초청되었다.[21] 컴파일이 한국 외에 해외 진출한 게임은 건낙, 루나 볼(해외판은 'Lunar Pool'), 가딕 외전(해외판은 'Guardian Legend'), Godzilla Monster of Monster!, 고스트 버스터즈 게임 메가 드라이브판밖에 없다.[22] 행사 현장에서 잠시 전달받은 것으로 추정. 2019년, 자신은 파워 액티를 소장하지 않고 있다고 유튜브를 통해 밝혔다.[23] 혐한으로 오해했을 법한 사건이 발단이긴 했는데, 중에 해명을 하면서 본인이 혐한이 아니라고 못 박았고, 한국에 대해 배워나가겠다면서 오해는 풀린 상황이다.[24] 주 컨텐츠는 뇨키뇨키였으며 마리오 카트 8 디럭스도 자주 방송했었다.[25] 이 때문에 고독사라는 별명도 생겼다.[26] 월세 5만 엔 하는 아파트로 멘션이 아니다.[27] 이때는 컴파일이 해산된 상태여서 아이키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컴파일 해산은 같은 해 1월 21일에 선언하였다. 참고로 인터뷰 당시 입었던 옷을 지금까지도 입고 있다.[28] 컴파일 사장이 미트스핀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내용 등도 여과 없이 들어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니이타니 마사미츠가 부정한 바 있다.[29] 월요일에는 바둑 전용 계정에서 바둑을 두곤 한다.[30] 어느 시청자가 채팅창으로 쥬지를 남자라는 뜻으로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31] 간혹 자신의 성향을 드러낼 때도 있다. 노무현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평가한 반면, 이승만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리쇼반(이승만의 일본어 발음)을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잖아?"라며 별로 좋게 보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승만은 국내에선 좌파/우파에 따라 평이 갈리는 대통령이지만, 엄청난 반일주의자였기에 일본에선 정치 성향 막론하고 상당히 평이 안 좋은 편이다. 일본 극우파들의 주 타겟인 노무현을 호의적으로 평가한 거로 봐서는 현재에 와서도 극우파하곤 거리가 멀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트위터 답변에 따르면 중립인 듯하다.[32]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키에 대한 자부심이 센 듯하다. 히로시마인들은 주 1회씩 오코노미야키를 먹는다며 오사카 거보다 맛있다고 했다.[33] 디시인사이드 신조어 붕이로부터 파생된 중세게임 갤러리 유저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34] 니이타니 본인도 환세취호전 정품을 못 구해 복제판으로 플레이했다. 어차피 정품으로 플레이해도 니이타니에게 오는 수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