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신선 재곤이>는 1975년에 출간된 시집 『질마재 신화』에 실린 서정주의 작품이다.2. 시 전문
신선 재곤이 서정주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1]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줄 천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2]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 수염의 조 선달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 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를 하러 간 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거라."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 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이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
3. 해설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의미의 '재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는 가난으로 인해 자기 한 몸을 건사하기가 벅차다. 이를 딱하게 여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그의 끼니를 챙겨주고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그런데 갑술년인가 을해년 즈음부터 재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앉은뱅이였던 재곤을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북이로 기억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하늘이 천벌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천벌은 내리지 않았고 농사도 여느 마을처럼 제대로 되었다.
이에 대해 조 선달 영감은 재곤이가 하늘로 신선살이를 한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마을 사람들 역시 이 말을 믿으며 재곤이가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부정한다. 그렇게 해서 재곤이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양쪽 겨드랑이에 두 개의 날개를 단 거북 모양의 신선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바람에는 재곤이가 좋은 곳으로 갔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장애를 가진 앉은뱅이 '재곤'이라는 인물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심성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고 있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재곤이라는 인물의 평생을 간추린 것으로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를 이루며, 이런 점에서 이 시는 이야기시의 계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서정주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서로 돕고 보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시를 통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