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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申鶴澈 | Shin Hakchul | |
<colbgcolor=#c19e76> 본관 | 평산 신씨[1] |
출생 | 1943년 12월 12일 ([age(1943-12-12)]세) |
경상북도 김천군 감문면 삼성리[2] 오성마을 1082번지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화가, 교사[3] |
학력 | 성의상업고등학교[4]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64 / 학사) |
경력 | 안용중학교 교사 근명중학교·근명상업고등학교 교사 남강고등학교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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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2. 생애
1943년 12월 12일 경상북도 김천군(現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 오성마을 1082번지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주로 동네 풍경이나 달력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실력을 길렀다. 하지만 화가가 될 줄은 몰랐다고.. 중학교 졸업 후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까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1960년 교사로 근무하던 이종사촌 형이 독일계 가톨릭재단에서 운영하던 성의상업고등학교(現 성의고등학교)로 입학시켰다. 고등학교에서는 한복 입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한국식 성화(聖畵)'로 연하장 만드는 일을 도맡았다.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스승으로 만나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미술대학으로 진학을 꿈꾸게 됐다. 이 때 사랑방에 촛불을 켜놓고 독학으로 석고상을 그리면서 입시를 준비했다고..이후 196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64학번)에 입학하였고, 대학시절 로버트 라우센버그에 영향을 받아 콜라주 형식의 그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1970년부터 1971년까지 화성군 안용중학교,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안양시 근명중학교·근명상업고등학교(現 근명고등학교), 1974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강고등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69년부터 1975년까지 <AG전>에 참여했으며,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서울방법전>에 참여했다. 모노크롬회화가 주를 이루던 1970년대에는 사진몽타주나 콜라주를 이용하여 일상의 현실을 보여주고, 산업사회와 대량소비사회가 가져오는 물질만물주의를 비판하는 작업들을 진행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캔버스로 돌아가 콜라주 대신 포토몽타주와 포토리얼리즘 기법을 통해 현실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역사를 관념으로서가 아닌 구체적 실체로서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때 <한국근대사> 시리즈와 90년대에는 <한국현대사> 시리즈 등 40여 점을 연작으로 발표하며 화단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1987년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제2회 통일미술전>에 출품한 <모내기>가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는 혐의로 구속되었고,징역 10월에 선고유예를 받아 구치소 생활 3개월 만에 보석으로 나왔다. 이후 2000년에 사면복권됐다. 제1회 미술기자상(1982), 제1회 민족미술상(1991), 제16회 금호미술상(1999) 등을 수상하면서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3. 작품
3.1. 모내기
3.2. 한국근대사
3.3. 신기루
3.4. 갑순이와 갑돌이
4. 여담
- 작품 〈모내기〉는 작가가 돌려받지 못하고, 검찰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졌다. 검찰 보관시 A4 형식으로 접힌 채 수십년을 있어서, 작품은 훼손되어 있었다. 신학철은 이 작품이 훼손된 것도 하나의 역사이므로 복원하지 않고 작품을 그대로 두기로 결심했다고...
- 2002년부터 13여년간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간병하다가 그녀를 떠나보내고 2016년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