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및 경비지도사이자 강사에 대한 내용은 신현표(노무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성명 | 신현표 (申鉉表) |
이명 | 신호 (申琥), 신광열 (申光烈) |
생몰 | 1903.02.13~1980.11.11 |
출생지 |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면 동상리 |
1. 개요
자생한방병원의 비수술치료법의 바탕이 된 <청파험방요결>을 남긴 한의사. (자생한방병원 설립자 신준식 박사의 선친)2. 생애
1930년 초 조선공산당 만주총국(화요파)의 강석준(姜錫俊) 등과 함께 3.1 운동 11주년 기념 폭동 및 광주학생운동 호응 관련 선전문건 제작 등 지원 활동을 전개하다가, 함남 혜산진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경찰서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1]를 치렀다.(1930.4.21 ~ 1930.8.1)이후 숙부 신홍균 (申洪均, 이명 : 신흘 (申屹 )[신굴 (申矻)], 2020년 애족장, 한국독립군 군의 ) 선생을 도와 중국 장백현 (長白縣 ), 영안현 (寧安縣) 동승촌 (東勝村 , 일명 동구 (東溝 )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지원했다.
3. 경력
4. 관련인물
- 숙부, 독립군 대진단 단장 신홍균
[1] 수감번호 1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