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21:52:26

심재진

파일:심재진.jpg
<colbgcolor=#0047a0> 출생 1920년 2월 7일
강원도 횡성군 양천면 조곡리
사망 2006년 4월 12일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1]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심재진은 1920년 2월 7일 강원도 횡성군 양천면 조곡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심재영(沈在暎)이다. 그는 1939년이래 춘천중학교(春川中學校)에 재학하고 있을 때 독립운동가인 여운형(呂運亨)으로부터 항일독립사상을 감화받고 이를 고취시키기 위하여 학교내에서 독서회(讀書會) 운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 3월 23일 한일학생간의 민족차별과 식민지교육정책에 항거하고, 한일학생간에 교내에서의 충돌이 있었을 때 선봉에서 대항하며 학생을 구타하여 반일학생에 대한 일제 검거가 실시되었을 때 붙잡혀 1941년 6월 30일 제적당하였다. 이후 1942년 5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법 및 육국형법 위반으로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제 형사들에게 감시당하다 8.15 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광복 후 강원운수(江原運輸) 원주지사장을 역임하였고, 1969년 동신운수를 창립하였으며, 이후 태창운수(泰昌運輸)를 인수하여 강원도 내에서 가장 큰 운수회사로 성장시켰다. 동신운수 대표와 강원버스여객자동차 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을 지냈으며, 항일독립운동원주기념사업회가 출범하자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2004년 자서전 『신작로가 있는 풍경』을 출간했으며, 2006년 4월 12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심재진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이명인 심재영(沈在暎)으로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