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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27 16:48:50

아시나 모리우지



蘆名盛氏
(1521 ~ 1580)

일본 전국시대의 다이묘. 아시나가 16대 당주. 아시나 모리키요의 아들.

1. 생애2. 일화3. 대중매체에서

1. 생애

1537년 다테 다네무네[1]의 사위가 되었고 1541년 가문을 계승한다. 덴분의 난이 일어나 다네무네와 다네무네의 아들 하루무네가 싸우자 처음엔 장인 다네무네를 지지하였다가 하루무네 편으로 돌아서 하루무네의 승리에 공헌하는 한편 다테 가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된 다이묘가 되었다. 1550년 나카도오리 지방으로 진출하나 다무라, 사타케가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에 호조 우지야스, 다케다 신겐과 연합하여 싸웠다.

1561년 장남 모리오키에게 가문을 양도하고 은거, 법명을 시시사이(止々斎)로 하였다. 하지만 은거 후에도 여전히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1563년 니카이도 모리요시와 싸웠으며, 니카이도를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 다테 하루무네군도 격퇴하였다.[2]

결국 모리요시는 장남 모리타카를 인질로 보내고 항복하였고, 하루무네와는 모리오키를 하루무네의 4녀 히코히메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강화한다. 다무라가를 종속시키는 데 성공하는 등, 주변의 여러 씨족들을 제압하며 세력을 확대하는 도중 모리오키가 29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모리오키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바람에 인질로 잡고 있던 모리타카를 모리오키의 미망인과 결혼시키고 양자로 삼아 가문을 잇게 한다. 이후 모리우지는 유키, 우에스기가의 가독 계승문제에 개입하는 등 활발하게 세력을 확대해나간다. 1580년 사망. 향년 60세.

모리우지 사후, 원래 니카이도씨인 후계자 모리타카에게 불만을 가진 중신들, 오랜 기간의 전란으로 인한 전비 부족 등, 여러 원인이 겹치면서 아시나가는 급속도로 쇠퇴한다.

아시나 가문을 오슈의 강자였던 다테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시켰지만,[3] 가장 중요한 후계자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모든 공적을 날려드셨다.

이 외, 위에서 언급한 잦은 원정으로 이미 경제를 파탄시켰는데, 이를 위해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영지 백성들만 착취했다. 여기서 가신들까지 착취하면 당연히 인기가 없어져 하극상이 일어날 확률이 높으니, 가신들에게는 빚을 탕감해주는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슬슬 왔던 시점이다. 이 상황에서도 정신 못차리고 오다테 난 등에 개입하는 등, 이 때문에 모리우지의 말년에는 이미 아시나 가문이 저물던 시점이였고, 그나마 정통성있고 능력있던 모리우지가 사라지면서 버티질 못한 것,

어찌보면, 평생 동안 텐분의 난, 오다테의 난 등, 타 가문의 가독 상속 문제가 생기면 적극 개입해서 문제를 키웠고 이득을 챙겼는데, 결국 본인 가문도 가독 상속 문제가 생기면서 괴뢰 가문으로 몰락해버렸으니 자업자득일지도,

2. 일화

두 차례나 금주령을 내렸는데, 특히 두 번째는 자기보다 먼저 죽은 아들 모리오키가 술독 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내린 것이라 한다.

3. 대중매체에서

파일:蘆名盛氏.jpg 파일:蘆名盛氏1.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대지대머리1.jpg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만능형 다이묘다. 천도 기준으로 통솔 79 무력 71 지력 85 정치 86 족경강화 특기를 지녔다. 그러나 아시나 가에는 모리우지 외에는 우수한 무장이 없어서 원맨쇼를 펼치고 다녀야 한다.

태합입지전5에서도 등장. 여기서도 능력치는 만능형이긴 한데, 기능이 정말 능력치값을 못하는지라 게임상 대우는 좋지 않다. 능력치 자체는 72/68/80/81/85로 "오 괜찮은데?" 하기 쉽지만 내정쪽 기능이 2레벨이상 되는게 단 하나도 없고, 전투쪽으로도 족경, 기마, 궁술이 2레벨인 것이 최고인지라 CPU의 경우 아래로는 사타케, 위로는 다테가에 치이는 신세. 직접 플레이할 경우는 능력치 자체가 괜찮으니 기능을 빠르게 습득할 경우 괜찮은 편이다.

세키로의 주연 캐릭터인 아시나 잇신은 역사성 측면에서 아시나 모리우지를 모델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북쪽 지방의 다이묘란 점과 입양을 통해 가문을 잇게 한 점이라던지, 당대에는 가문이 부흥했지만 후계자 대에 들어서 가문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 유명한 다테 마사무네의 증조할아버지[2] 모리요시는 하루무네의 사위였다.[3] 무로막치 막부로부터 오슈의 대다이묘로 인정받은 세력은 다테와 아시나 가문 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