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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36:53

안교일

성명 안교일(安敎一)
생몰 1888년 6월 11일 ~ 1950년 6월 29일
출생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사망지 서울특별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교일은 1888년 6월 1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1년 11월 서울에서 신봉균(申鳳均)[1]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 및 독립운동 선전을 목적으로 한 혈복단(血復團)을 결성했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충남 논산군 연산면 연산리에 거주하는 홍진유(洪鎭裕)의 집으로 가서 혈복단 규칙서 수십 매 등을 교부하고 지방 부호로부터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권유했다. 그해 11월 20일, 안교일은 김일(金一)의 지시에 따라 독립신문 호외 50매를 정희종에게 인쇄하도록 했으며, 11월 25일에는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의 선언서를 역시 정희종에게 인쇄하도록했다. 안교일은 인쇄된 문건들을 김일에게 전달했다.

이후 그는 김일로부터 문건들을 돌려받은 뒤 동대문 부근에서 강정희(姜正熙)를 만나 11월 27일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정희종에게 26일밤에 모두 배포하라고 알려줬다. 이윽고 11월 26일 밤, 그는 김교선(金敎善)의 집에서 정희종에게 선언서 200매를 전달하고 내일 자동차로 시내 각지를 돌며 배포하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곧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었고, 그는 체포된 뒤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6.25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6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안교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신봉균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