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39:09

안시중

성명 안시중(安時中)
생몰 1890년 12월 20일 ~ 1974년 11월 3일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
사망지 경상남도 함안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시중은 1890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암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1월 고종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상경했다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목격한 뒤 함안읍으로 돌아온 조한휘(趙漢輝), 이찬영(李讚榮) 등은 대산면 한문교사 안지호(安知鎬)와 함께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이리하여 3월 19일 정오경, 조한휘, 이찬영, 안지호 등은 수백명의 군중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눠준 뒤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때 안시중은 군중에 합세해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했다.

오후 2시경, 3천 명으로 불어난 군중은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주재소로 행진했다. 이때 출동한 마산경찰서와 현지 일본 경찰들이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자, 안시중을 비롯한 시위대는 주재소에 침입하여 공문서를 파기하고 건물을 파괴했다. 이후 안시중 등은 군수 민인호(閔麟鎬)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으며, 시위대는 등기소, 우체국, 일본인 소학교를 파괴했다.

그러나 마산 중포병대대의 탄압으로 시위대는 강제 해산되었고, 안시중은 헌병대에게 체포되어 1919년 5월 2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함안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74년 11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안시중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