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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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라야누스 개선문.
Ancona
그리스어 Ἀγκών (앙콘)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마르케의 중심 도시다. 아드리아 해에 접하고 있으며, 현재 인구는 102,000명이다. 로마에서는 동북쪽으로 280 km 떨어져 있다. 115년에 세워진 트라야누스 개선문과 중세 성당들이 관광지로 유명하며, 피서지로 인기가 있다.
2. 역사
기원전 380년, 시칠리아의 도시인 시라쿠사에서 파견된 그리스 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 이름은 팔꿈치 라는 뜻을 지닌 Αγκων (안콘) 이었다. 기원전 268년에 로마 령이 되었으며,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가 처음으로 점령한 도시이기도 하다. 안코나는 로마에서 달마티아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항구였고, 달마티아를 통해 다키아 전선으로 갔던 트라야누스 황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개선문을 세우고 항구를 더욱 확장해 주었다.크리스트교가 들어온 후인 5세기에는 산 로렌조 바실리카가 지어졌다. 한편, 6세기에 벌어진 동고트 왕국과 동로마 제국의 전쟁 중에 539년과 551년에 고트족이 도시를 포위하는 등 안코나는 격전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라벤나 총독부의 주요 도시로 기능하였다. 하지만 728년에 롬바르드 인들이 점령, 스폴레토 공국에 속하게 되었다. 774년에는 샤를마뉴의 기증으로 교황령에 소속되었다. 840년, 안코나는 사라센 해적의 습격을 받아 도시가 불탔다.
2.1. 안코나 공화국
이후 10세기에 교황청이 혼란을 겪자 안코나는 점차 독립성이 짙어졌고, 1000년부터는 사실상 독립하여 안코나 공화국이 되었다. 공화국은 6명의 원로가 다스렸는데, 3개로 나뉜 선거구에서 선출되었다. 번영기에는 아고타노 라는 자체 동전을 주조하기도 하였으며, 라구사 공화국이나 동로마 제국과 연합하여 베네치아 공화국의 아드리아 해 독점을 견제하였다. 1128년에는 안코나 대성당이 완공됐다.12세기 안코나의 무역로 #
안코나 공화국은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였고, 1137년, 1167년, 1174년에 도시를 침공해 온 신성 로마 제국 군대를 격퇴하여 프리드리히 1세의 분노를 샀다. 이후 안코나는 신성로마제국의 침탈에 저항하기 위해 동로마 제국의 명목상 주권을 인정하거나[1] 구엘프 파에 속해 교황을 지지, 기벨린 (황제파)에 맞섰다. 하지만 베네치아는 12세기 중반들어 급성장 하였고, 1167년에 눈에 가시였던 안코나를 봉쇄하였다. 이후로도 1173년과 1183년에 안코나를 공격, 기어코 아드리아 해를 '베네치아 만'으로 만들었다.
2.2. 다시 교황령으로
안코나가 속한 마르케 지방은 1208년에 에스테 가문의 영토가 되었다. 그리고 1229년과 1257년에는 다시 베네치아의 공격을 받아 해상력을 거의 상실하였다. 한편, 1258년에 마르크 지방은 시칠리아 왕국의 군주 만프레드의 영토가 되었다. 그 지배는 오래 가지 못했고 도시는 다시 1274년에 베네치아의 공격을 받았다. 1323년에는 산 프란체스코 성당이 완공되었고 1348년부터 1383년까지 말라테스타의 지배를 받았다. 1428년에는 다시 베네치아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1532년, 안코나는 다시 교황령이 되었다. 교황령 하의 도시 중에서 안코나는 유일하게 유대인 거주가 허용된 곳이었다.3. 여담
이탈리아 개그로, 안코나는 마르케 지방에서 A컵 유두 모양으로 튀어나온 곳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구글 지도로 보면 정말 그렇다. #아동 교육의 어머니 마리아 몬테소리가 안코나 출신이다.
닭의 한 품종인 안코나가 여기서 유래되었다. 다만 영국에서 개량되어 영국, 미국 등지에서 인기가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드문 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와 자다르로 가는 페리편이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