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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28 06:05:13

안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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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파일:안태은.jpg
이름 안태은
安太銀 | Ahn Tae-Eun
출생 1985년 9월 17일 ([age(1985-09-17)]세)
전라남도 해남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6cm
포지션 풀백
학력 광양서초등학교 (졸업)
광양중학교 (졸업)
광양제철고등학교 (졸업)
조선대학교 (졸업)
프로 입단 2006년 FC 서울
소속 구단 FC 서울 (2006~2009)
포항 스틸러스 (2010)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1)
국가대표 21경기 (대한민국 U-20 / 2004~2005)
2경기 (대한민국 U-23 / 2006)

1. 개요2. 선수 경력
2.1. FC 서울2.2. 이후
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출신 코치. 주로 소화한 포지션은 우측 풀백이었다.

2. 선수 경력

2.1. FC 서울

안태은은 광양서초등학교, 광양중학교, 광양제철고등학교, 조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떤 상대라도 두려움 없이 우직하게 돌진하여 거세게 부딪혀 '탱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외모와 말투가 축구 지도자 김태영을 닮았다고 하여 '리틀 김태영'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조선대학교 시절 안태은은 주목할만한 활약을 펼쳐 청소년 대표로도 소집되는 데 이른다.

대학 시절의 활약을 기반으로 안태은은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되어 FC 서울에서 데뷔했다. 안태은은 젊은 나이에도 기회를 부여받으면서 이기형과 함께 좌우측을 오갔고, 리그에서 14경기를 뛰었다. 당시 서울은 젊은 선수들이 팀에 곧잘 적응한 덕분에 순항하고 있었고, 안태은 역시 그 축이었다. 그러나 청소년 대표팀에서 맞은 한일전에서 엄청난 부진을 경험한 이후, 안태은은 상당히 위축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 때 이후로 그는 2년 동안 리그컵을 포함하여 14경기를 뛰는데 그쳤다. 이 시기동안 그는 부상을 당하고 쓸데없는 파울로 인한 퇴장을 당하는 등 시련이 이어졌고,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밀려났다. 2009년에는 최원권의 군입대와 이종민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잡아 18경기에 출전하였다. 하지만 이 때도 안태은의 활약상에는 한계가 보였다. 백업 자원으로는 제법 쏠쏠한 선수였으나 결코 주전급으로 평가받을 선수는 아니었다. 거친 파울과 항의가 많아서 카드 수집 기질까지 있었으니... 그나마 셰놀 귀네슈 감독은 안태은의 거침없는 기질을 높게 사 자주 경기에 출전시켰다. 이 당시 안태은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움 살랄에게 극적인 득점을 기록하는가 싶었지만,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팀은 이후 흔들리며 결국 리드를 놓치고 패배하는 불운이 있었다.

2.2. 이후

2010년에 서울이 포항 스틸러스에서 최효진을 영입할 때 똑같은 포지션의 안태은이 포항으로 이적했다. 그러나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고작 네 경기 출장에 그쳤다. 얼마나 못했냐면 당시 전북으로 임대 가있던 신광훈을 포항으로 급하게 복귀 시킬 정도. 짧은 출전 기간동안 퇴장을 당하기도 하는 등 그의 수모는 계속되었다.

결국 1년만인 2011년, 안태은은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재기를 모색했다. 당시 허정무 감독은 이준영을 대체하기 위해 안태은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그의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인천은 좌측이 주포인 전재호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에는 장원석을 기용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안태은은 주전 경쟁에서 낙오됐다. 설상가상으로 후반기에는 김한섭이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하면서 그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최종적으로 그는 7경기에 출전한 것을 끝으로 인천에서 방출당하였다.

3. 지도자 경력

인천에서 방출 당한 이후 선수 생활을 정리했으며, 2013년 해남중학교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5년에는 모교 조선대의 코치로 부임하기도 했고 간혹 생활 체육계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공격적인 재능이 뛰어난 풀백이었다. 이에 따라 수비적으로 아쉬움을 간혹 노출하기도 했고, 그것이 안태은의 발목을 잡았다.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거친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서 카드 관리에 실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