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된 안흥진 수군 군적부의 모습 |
1. 개요
2020년 6월 4일 충남 태안군 신진도의 고가(古家)에서 지역주민의 신고로 발견된 조선 수군 충청수영의 군적부이다.2. 발견 경위
2020년 6월 4일 충남 태안군이 충청남도 기념물 제11호인 옛 수군 주둔지 안흥진성의 국가문화재로의 승격을 추진하고 있던 가운데,[1] 안흥진성과 인접한 신진도의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를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지역주민의 신고로 발견된 수군 군적부는 고가의 벽지로 사용된 상태였다고 국립 해양문화재 연구소 측은 밝혔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조선 수군 군적부로는 서산 평산진 수군 군적부가 유일하였으나 이번 발견으로 2개로 늘어나게 되었다.국가에서 관리하던 문서가 수군 주둔지역의 민가에서 발견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발견된 고가를 정밀 조사한 결과, 건물 자체도 단순한 민가가 아니라 당시 안흥진의 수군을 관리하던 지휘소라는 추정이 나왔다.#
3. 내용
군역의 의무가 있는 장정(壯丁)의 명단과 특징을 기록한 공적 문서인 수군 군적부는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안흥진 소속 60여 명의 군역 의무자를 전투 군인인 수군(水軍)과 보조적 역할을 하는 보인[2]으로 나누어 이름, 주소, 출생연도, 나이, 신장을 부친의 이름과 함께 적어둔 고문서다. 군적부의 용도는 작성 형식이나 시기로 미루어 수군의 징발보다는 18~19세기 일반적인 군역 부과 방식인 군포[3]를 거두어 모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국립 해양문화재 연구소측이 19세기 군적부로 추정하는 이유는 군적부가 발견된 태안군 신진도 고가(古家)의 상량문(上樑文)에 '도광[4]23년'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군적부는 도광(道光) 23년인 1843년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국립 해양문화재 연구소는 설명했다.
군적부에 따르면 수군의 출신지는 모두 당진현(唐津縣)으로, 당시의 당진 현감 직인과 수결[5]이 확인됐다. 수군(水軍) 1인에 보인(保人) 1인으로 편성된 16세기 이후 수군 편제를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3.1. 한시
군적부와 같이 발견된 한시3점의 모습 |
한편, 고가 벽지에서는 판독이 가능한 한시 3편도 함께 발견됐다.
淸風松榻鶴罷眠 맑은 솔바람 부는 자리 학도 졸음을 깨고
霧鎻柴門狵吹信 안개에 잠긴 사립문에 삽살개가 지키고 있네.
回首四處忽入眼 머리 돌려보니 사방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데
雲色蒼蒼起層層 구름 빛만 창창하여 층층이 일어나네.
- 고가에서 출토된 한시 3점중 한점의 시를 해독한 내용 중에서 -
이 시는 당시 조선 수군이거나 학식을 갖춘 당대인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수군진촌(水軍鎭村)의 풍경과 일상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霧鎻柴門狵吹信 안개에 잠긴 사립문에 삽살개가 지키고 있네.
回首四處忽入眼 머리 돌려보니 사방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데
雲色蒼蒼起層層 구름 빛만 창창하여 층층이 일어나네.
- 고가에서 출토된 한시 3점중 한점의 시를 해독한 내용 중에서 -
신진도 수군진촌에 자리한 능허대(凌虛臺) 백운정(白雲亭)은 예로부터 ‘능허추월(凌虛秋月)’이라 하여 안흥팔경(安興八景)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중국의 능허대와 모습이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며, 옛날 중국 사신들이 안흥 앞바다에 체류할 때 이곳을 소능허대(小凌虛臺)라고도 칭했다. 또한, 도처의 시객(詩客)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시를 짓던 유명한 곳이기도 하여, 새로 발견된 한시 3편은 이 지역의 문학적인 맥락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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