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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2 10:56:04

알렉산드르 민

<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민
Александр Павлович Мин
Aleksadr Pavlovich Min
파일:Aleksandr_Pavlovich_Min.jpg
출생 1915년 12월 15일
러시아 제국 프리모리예주 체르산돈 마을
(現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 프리모리예 지방 시코톱스키군)
사망 1944년 7월 9일 (향년 28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볼린주 스타로비젭스키군 파리두비 마을 인근
(現 우크라이나 볼린주 코벨군 파리두비)
묘소 우크라이나 볼린주 투리스키군 루키우 마을 공동묘지
본관 여흥 민씨
학력 국립극동대학교
사라토프 금융대학교
랴잔 보병학교
복무 노농적군
1941년 ~ 1944년
최종 계급 대위 (노농적군)
병과 보병

1. 개요2. 생애
2.1. 출생과 성장2.2. 제2차 세계 대전 그리고 전사
3. 수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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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인 출신 소련군 대위이자 보병 연대 지휘관.

예브게니 킴과 함께 유이한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한국계 인물이다.[1]

2. 생애

2.1. 출생과 성장

1915년 12월 러시아 제국 프리모리예주[2] 체르산돈(Черсан-Дон) 마을에서 이주 조선인 소작농 집안에서 출생했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국립극동대학교 예비학교에서 재학했고 러시아어 교사로 재직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가족 전체가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으며 아랄스크에서 어업총국 부기로 일한 뒤 사라토프 금융 대학교에 재학 후 회계사로 근무했다. 1941년에 독소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소련군에 징집되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그리고 전사

랴잔 보병 학교 졸업 후 건설대대에 배속되었고 1941년 모스크바 공방전에 참전했다. 1942년 가을에 브찬스크 전선군 제13군 부속 소위 과정을 마치고 임관하여 605 소총 연대 1대대의 보좌관으로 복무했다. 1943년 7월 5일 쿠르스크 전투 당시 4번의 독일군 역습을 격퇴하여 적성훈장을 수훈받아 해당 연대의 보좌관에서 지휘관이 되었고 대위로 진급했다. 1944년 7월에 우크라이나 볼린 주 탈환 전투에서 5번의 독일군 역습을 격퇴하고 중요한 거점 마을을 성공적으로 사수하였지만 7월 9일 파리두바에서 전사했다. 이듬해 3월 24일 레닌훈장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가 추서되었다.

3. 수훈 목록



[1] 소비에트 연방 영웅은 법적으로 소련에서 수훈될 수 있는 최상위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이다.[2] 현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 프리모리예 지방. 한국에서는 흔히 '연해주'로 불리는 지역이다.[3] 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독소전쟁 참전 군인 중에서 유일한 한국계 인물이다.[4] 소비에트 연방 영웅칭호나 사회주의노력영웅칭호를 수여받으면 자동적으로 레닌훈장이 수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