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앙리 베요 (Henri Baillot) |
생년월일 | 1924년 12월 13일 |
사망년월일 | 2000년 11월 9일 (향년 75세) |
국적 | 프랑스 |
출신지 | 프랑스 제3공화국 마그니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70cm | 70kg |
소속팀 | FC 메스 (1945-1950)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50-1952)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 (1952-1953) 스타드 렌 FC (1954-1955) |
국가대표 | 8경기 4골 (1948-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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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베요는 FC 메스에서 축구계에 데뷔했고 1946-47 시즌에 이미 디비지옹 1에서 21골을 넣어 주목을 받았다. 베요는 1948-49 시즌에는 25골, 1950-51 시즌에는 22골을 넣어 디비지옹 1 득점 랭킹 순위권에 올랐고 베요 외에도 이냐스 코발치크, 귀스타브 켐프 등 좋은 선수들을 보유했음에도 메스는 하위권을 전전했다. 베요가 메스에 머물던 5시즌 중 1946-47 시즌의 디비지옹 1 10위가 메스의 최고 성적이었다.메스가 1949-50 시즌에 강등당하자 베요는 FC 지롱댕 드 보르도로 이적했다. 그리고 1951-52 시즌은 보르도는 리그 1과 쿠프 드 프랑스 준우승을 거둬 가장 베요의 커리어에서 성공적인 한 해였다. 그럼에도 베요는 보르도에서의 생활에 불만이 있었고 1952년에 디비지옹 2의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베요는 1952-53 시즌에 팀을 디비지옹 2 3위에 올려놓고 1953-54 시즌에 16경기 6골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스트라스부르는 1954년 1월에 베요를 스타드 렌 FC에 매각했고 베요는 렌에서 1955년까지 뛰었다.
1955년에 베요는 무릎의 문제가 심해지면서 은퇴하게 되었다.
2.1.2. 국가대표
베요는 레블뢰에서 8경기에 출전해서 4골을 넣었고 그 중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임팩트를 남겼다.프랑스는 최종 라운드에서 유고슬라비아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프랑스와 유고슬라비아는 홈 앤드 어웨이로 펼쳐진 2경기에서 모두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베요는 이 2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결국 최종전은 피렌체의 스타디오 코무날레에서 열렸고 프랑스는 연장 후반, 유고슬라비아에 골을 허용해서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프랑스는 역사상 최초로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베요는 강력하고 빠른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였고 센터 포워드도 소화할 수 있었다. 베요는 강력한 슈팅을 포함해 킥이 좋고 스피드가 빠르며 운동 능력과 에너지가 넘치던 선수였다. 또한 그는 용감함과 교활함도 갖춘 선수였다.4. 수상
4.1. 클럽
- 디비지옹 1 준우승 1회: 1951-52(FC 지롱댕 드 보르도)
- 쿠프 드 프랑스 준우승 1회: 1951-52(FC 지롱댕 드 보르도)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