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5-18 09:53:22

앙투안 바토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장 앙투안 바토
Jean-Antoine Watteau
출생 1684년 10월 10일
프랑스 발랑시엔
사망 1721년 7월 18일
프랑스 노장쉬르마른
직업 화가, 예술가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1. 개요

[clearfix]

1. 개요

프랑스의 화가, 예술가.
장 앙투안 와토(1684 년 10 월 10 일 세례 - 1721 년 7 월 18 일 사망)는 짧은 경력으로 색상과 움직임에 대한 관심의 부흥을 불러 일으킨 프랑스 화가다. 그는 쇠퇴해가는 바로크 양식에 활력을 불어넣어 덜 심각하고 자연주의적이며 형식적으로 덜 고전적인 로코코 양식으로 전환시켰다. 와토는 연극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목가적인 매력의 장면인 페트 갈랑테라는 장르를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주제 중 일부는 이탈리아 희극과 발레의 세계에서 가져온 것이다.

와토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견한 듯 자신의 미래와 재정적 안정에 대해 부주의한 태도를 보여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병약하고 육체적으로 허약했다. 1720년, 그는 당대 가장 세련된 의사 중 한 명이자 와토의 작품을 좋아했던 리처드 미드 박사와 상담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그러나 런던의 습하고 매캐한 공기는 미드 박사의 건강에 좋은 음식과 약의 효능을 상쇄시켰다. 와토는 프랑스로 돌아와 제르생과 6개월을 보냈고 마지막 몇 달은 그의 후원자인 하랑제 수도원장의 영지에서 보냈으며 1721년 결핵성 후두염으로 3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수도원장은 와토가 마지막 날에 반쯤 의식이 있고 벙어리였으며 페인트 붓을 쥐고 허공에 상상의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그의 미술은 사후 로코코의 두 얼굴 중 하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당대 로코코 미술이 받았던 비난은 현대에 이르러 찬사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