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1. 개요
통일신라 말기의 반란자.899년에 중앙 정부에서 세금 독촉을 심하게 하자, 사벌주(沙伐州)[1]에서 원종과 함께 원종·애노의 난을 일으켰고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후삼국시대가 시작되는 신호탄이 되었다.
신라 조정은 나마 관등에 있는 장군 영기(令奇)에게 명령하여 토벌하게 했으나, 영기가 적들의 본진을 보고 두려워하여 진군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촌주(村主) 우련(祐連)이 전사했다. 진성여왕은 칙명을 내려 영기의 목을 베고, 나이가 10여 세에 불과한 우련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뒤를 잇게하여서 촌주가 되게 했다. 이후 원종과 애노의 난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고, 애노와 원종의 최후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자세하게 알기 어려우나 애노와 원종이 신라 조정의 토벌군에 토벌되어서 살해되었거나, 기록상 나중에 아자개가 이들과 같은 상주에서 호족으로 자리를 잡기 때문에 이 아자개 등의 다른 호족 세력에 격파당했거나 흡수됐을 것으로 보인다.
2. 창작물에서
소설 마의태자에서 신라의 귀족인 신홍의 심복으로 나오고 어떤 연유로 죽을 뻔한 것을 신홍이 구해줘서 섬겼다고 한다. 신홍이 위홍과 싸울 때 신홍의 집에서 군사들을 지휘하고 있다가 신홍이 패해 죽게 되자 숨어살다가 애노와 함께 군사를 일으킨 후에는 궁예의 부하가 되었다.그런데 원종이 믿지 못할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애노는 원종과 함께 왕건의 미움을 받아 벼슬을 빼앗겼다고 한다.궁예가 왕건의 쿠데타로 몰락하면서 궁예를 피신시켰는데, 피신 도중에 애노가 궁예의 의심을 받고 자결했다.
애노는 원종이 자살하기 전에 원종을 죽이려는 궁예가 칼든 팔을 붙들었으며, 애노는 원종이 칼로 자결하자 황천길이라도 같이 가자면서 칼로 가슴을 찔러 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