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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비나 야스하 (海老名 泰葉, 1961년 1월 17일 출생),[1]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탤런트, 음반 프로듀서이자 기업가이며, 야스하라고 흔히 불린다. 야스하는 일본 내에서 수많은 방송을 타는 등 성공한 탤런트로서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의 개인 삶 또한 많은 관심을 받았다.フライディ・チャイナタウン(Flyday Chinatown(1981)) |
야스하의 대표곡, 플라이데이 차이나타운 |
2020년, 본인의 채널에서 편곡한 버전 |
2. 약력
야스하는 도쿄도 다이토구에서 라쿠고 배우 산페이 하야시야와 소설가 에비나 가요코 사이에서 태어났다. 1981년에 가수로 데뷔한 후 "Flyday Chinatown"(1981)라는 곡으로 큰 히트를 쳤으며, 이 곡은 오리콘 싱글 차트에서 69위를 기록하기도 했다.야스하는 또한 일본 버라이어티 TV 프로그램 Gogo wa MaruMaru Omoikkiri TV (1987–1988)에 호스트로 출연하면서 텔런트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88년 야스하는 라쿠고 가수 슌푸테이 코아사(Shūnpūtei Koasa)와 결혼한 후 연예계를 은퇴했다.
야스하는 이후 슌푸테이 코아사와 이혼했고, 2007년에 데뷔하면서 연예 기획사 Iron Candle을 설립했다.
3. 어린 시절
야스하는 1961년 1월 17일 도쿄도 다이토구에서 라쿠고 배우인 산페이 하야시야와 소설가 에비나 가요코의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녀의 할아버지 하야시야 쇼조와 그녀의 두 형제인 하야시야 고부헤이와 하야시야 이페이 또한 아버지와 같이 라쿠고 배우로서 활동했다. 그녀의 여동생 에비나 미도리는 여배우로서 활동했으나 현재는 그만두었다. 에비나는 어린 시절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으나 음악대학으로의 진학에 실패했다. 대신 J팝 가수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4. 커리어
1979년 야스하는 일본 TV 버라이어티 쇼 Variety Do Re Mi Fa So La Ti Do (1979–1982) 및 Gogo wa MaruMaru Omoikkiri TV (1987–1988)와 같은 수많은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탤런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2]야스하는 1981년 폴리도르 레코드를 통해 싱글 앨범 "Flyday Chinatown"을 발표하며 데뷔했다.[3] 이 노래는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에서 69위를 기록하고 약 56,000장을 판매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 야스하는 2020년 6월 현재까지 7개의 정규 앨범과 더불어 2개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야스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쇼죠 타이의 곡 "Motto Charleston"(1986)을 작곡했는데, 이 곡은 일본 내 순위에서 16위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1988년 6월, 야스하는 라쿠고 배우 슌푸테이 코아사와 결혼한 후 자신의 남편이 기획사 하루하루도오의 대표로서 일하는 것을 돕기 위해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2007년 11월, 부부는 도쿄 임페리얼 호텔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이혼을 발표하고 에비나의 연예 활동 재개를 발표했다. 야스하는 이혼에 관한 책 '개운한 이혼(開運離婚)'을 출간하고 프로레슬링에 출전해 일본의 프로레슬링 선수 안조 요지와 겨루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08년 11월, 그녀는 자신의 기획사 Iron Candles를 통해 22년 만에 첫 싱글 "Ohisama yo Hohoende"를 발표했다.
5. 개인 생활
* 관계야스하는 1988년 6월 라쿠고 배우 슌푸테이 코아사와 결혼했고 아내로서 코아사를 내조하기 위해 연예계를 은퇴했다. 이후 야스하와 코아사는 2007년 11월 12일 기자 회견에서 이혼을 발표했다. 이 이혼 발표는 이후 야스하가 코아사를 "금발머리를 한 돼지새끼"라고 비난한 책 개운한 이혼(開運離婚)이 출간된 후 대중의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017년 9월 20일, 에비나는 페이스북에서 만난 이란 사업가 메디 카젬포르와 약혼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2018년 4월 약혼 결정을 번복한 후 결별했음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