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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6 01:35:54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의 저서.

한병철은 신자유주의가 개인을 성과주체로 만들고,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철학자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에로스의 종말>에서 현 시대에 진정한 사랑이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쾌락과 나르시시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오로지 획일적 자아만이 존재할 뿐, 타자는 사라진다. 타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진심어린 소통과 조건없는 사랑을 나눌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으로 즉, 에로스의 종말을 말한다.
우울증은 나르시시즘적 질병이다. 우울증을 낳는 것은 병적으로 과장된 과도한 자기 관계이다. 나르시시즘적 우울증의 주체는 자기 자신에 의해 소진되고 기력이 꺽여버린 상태이다. 그는 세계를 상실하고 버림받은 자이다. 에로스와 우울증은 대립적 관계에 있다. 에로스는 주체를 그 자신에게서 잡아채어 타자를 향해 내던진다. 반면 우울증은 주체를 자기 속으로 추락하게 만든다. 오늘날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는 무엇보다도 성공을 겨낭한다. 그에게 성공은 타자를 통한 자기 확인을 가져다준다. 이때 타자는 타자성을 빼앗긴 채 주체의 에고를 확인해주는 거울로 전락한다. 이러한 인정의 논리는 나르시시즘적 성과주체를 자신의 에고 속에 더 깊이 파묻혀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성공 우울증이 발생한다. 우울한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 속으로 침몰하고 그 속에서 익사한다. 반면 에로스는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주체를 나르시시즘의 지옥에서 해방시킨다. 에로스를 통해 자발적인 자기 부정, 자기 비움의 과정이 시작된다. 사랑의 주체는 특별한 약화의 과정 속에 붙들리지만, 이러한 약화에는 강하다는 감정이 수반된다. 물론 이 감정은 주체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타자의 선물이다.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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