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lyn Matthei
1. 개요
에벨린 마테이는 칠레의 정치인으로 세바스티안 피녜라 1기 정부에서 노동사회보장부 장관을 지냈고, 2013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 후보로 미첼 바첼레트와 붙었으나 당선에 실패했다. 현재에는 프로비덴시아 시장이다.2. 생애
1953년 11월 11일, 산티아고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페르난도 마테이는 군인이었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에서 보건부 장관을 역임한 군사정권 인사였다. 여기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피노체트 집권 이전 페르난도 마테이와 미첼 바첼레트의 아버지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친구였기 때문에 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알베르토 바첼레트의 경우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에서 일한 경력도 있고 1973년 쿠데타에 반대했는데, 결국 피노체트 정권은 그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웠고 그는 쿠데타 6개월 만에 사망했다.[1] 이때 책임자가 페르난도 마테이였다. 과거의 친구가 이념의 차이로 적이 된 것인데, 다만 페르난도 마테이가 알베르토 바첼레트의 죽음과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법원 판결도 있었다.1970년대 초반 에벨린 마테이는 영국 유학 중이었다. 음악과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그녀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어 장학금을 받아 영국에서 경력을 쌓기로 했지만, 3년 후 그만두고 칠레로 돌아갔다.
1974년 칠레 교황청립 가톨릭 대학교의 경제학 연구소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여러 수상을 했으나 논문이 도난당하여 경영학 전문 자격증 요건을 이수할 수 없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와 빈곤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의 논문을 작성한 적이 있다. 이후에는 칠레 교황청립 가톨릭 대학교의 국제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개인 상담소에서 1년 동안 연구원으로 일한 후, 그녀는 당시 민영화된 연금 제도에 의해 칠레의 운영을 감독하는 정부 기관인 AFP 감독관의 분석가가 되었다.
민주화 직후인 1989년, 국민혁신당(National Renewal)의 후보로 23 선거구 의원에 출마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대선 출마가 언급되었는데, 세바스티안 피녜라와 관련된 도청 스캔들이 터진 후 대선 출마를 포기하게 되었고 당의 대응에 실망해 탈당하고 1999년까지 독립민주연합(UDI)에 입당하기 전까지 무소속으로 정치활동을 했다.
1997년 코킴보 지역구에서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05년 재선했는데, 상원의원으로서 상원 예산 감독 위원회를 주재하는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2011년 1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 의해 노동사회보장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사임했다.
장관으로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교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낙태, 동성결혼, 세제 개혁에 대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견해로 인해 강경우파 연립여당인 자신의 당과 불화 역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7월 20일, 당의 대선후보가 되었으나 2013년 12월 15일 대통령 선거에서 38% vs 62%로 미첼 바첼레트에게 패배했다.
현재에는 프로비덴시아 시장 2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3. 여담
동료 경제학자이자 전 칠레 중앙은행 부총재 호르헤 데소르모와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영어와 독일어도 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