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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7-04 02:57:01

에코(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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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문 배경2. 자장가3. 기타

1. 장문 배경

자운 뒷골목 출신의 천재 소년 에코는 언제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시간을 조작할 수 있다. 그는 직접 발명한 Z 드라이브를 이용해 다양한 시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험하며 완벽한 순간을 포착한다.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지만 소중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무릅쓴다. 에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한 번의 시행착오도 없이 매번 완벽하게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에코는 기어 다니기 전부터 간단한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에코의 부모인 이나와 와이어스는 아들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했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들에게만큼은 밝은 미래를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이 볼 때 오염과 범죄에 찌든 자운은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에코의 부모는 하루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냈다. 위험한 여건 속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했지만 아들이 필트오버에서 기회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이까짓 노동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코의 생각은 달랐다.

에코는 부모님이 쥐꼬리만 한 임금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며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공장은 그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부유한 필트오버인들에게 팔아 어마어마한 이익을 남겼지만 정작 에코의 부모는 탐욕스러운 팩토리우드 감독관과 약삭빠른 필트오버인들 때문에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필트오버인들은 적은 돈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최상층을 거닐었고, 어떤 제약도 없는 자유로운 클럽을 즐기고 싶을 땐 중간층으로 내려왔다. 에코의 부모는 에코가 명망 높은 진보의 도시 필트오버에서 훌륭한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에코가 바라는 미래는 아니었다.

에코의 부모에게 자운은 숨 막히는 오염과 어두운 범죄로 점철된 희망 없는 도시였지만 에코의 눈에 비친 자운은 활력 넘치고 잠재력이 무한한 역동적인 도시이자 끊임없이 혁신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는 곳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몰려온 이주민들은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자운을 자운답게 만드는 건 물론 자운의 토박이들이었다. 자운에는 자신의 육체를 기계화한 폭력배들이나 매일같이 못된 짓을 일삼아 수시로 필트오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인간쓰레기들도 있었지만 오물 속에서 쓸만한 것들을 찾아내는 지하동굴 채집꾼들, 배관 청소부들, 그리고 수정 온실을 돌보는 원예사들도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자운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다. 이들은 슬기로웠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며 성실했다. 대재앙 속에서도 훌륭한 문화를 영위했고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소멸하고 말았을 자운 같은 도시에서 끊임없이 번영했다. 자운의 정신에 매료된 에코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품으로 자신만의 기계를 만든 뒤 직접 시험해보곤 했다.

자운의 정신에 매료된 건 에코뿐이 아니었다. 에코는 떠돌이 고아들과 호기심 많은 가출 청소년들, 그리고 짜릿한 모험에 대한 열망만큼은 에코에 뒤지지 않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독특한 재능이 있었다. 유달리 높은 곳에 잘 올라가는 아이도 있었고, 조각에 소질이 있는 아이도 있었으며, 그림이나 계획 세우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도 있었다. 많은 자운인들은 정규 교육 과정을 밟는 것보다 견습 과정을 통해 실무를 익히는 방식을 선호했다. 자칭 ‘자운의 잃어버린 아이들’은 미로처럼 복잡한 뒷골목을 스승으로 삼아 거리를 활보하며 자기들만의 활기차고 영광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자운과 필트오버의 경계에 위치한 경계 구역 시장을 누가 먼저 통과하는지 경주를 벌이기도 했고, 지하동굴에서 중간층, 그리고 최상층까지 이어지는 아찔한 높이의 벽을 타고 올라가 보자고 서로를 부추기기도 했다. 아이들은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자기들 기분이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다.

에코와 그의 친구들은 스스로를 범죄 조직원이나 화공 펑크족과 차별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온전히 보전하기로 했다. 그들은 왜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자신의 몸을 기계화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이나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의 물건이나 돈을 훔치는 짓도 하지 않았다. 결국 필트오버의 상류층과 육체를 기계화한 폭력배들이 그들의 목표물이 되었다. 아이들은 훔친 물건을 모두 은신처에 가져다 놓았고 은신처의 벽에는 직접 예술 작품을 그려 넣었다. 누구도 자운의 잃어버린 아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에코는 점점 더 기상천외하고 복잡한 발명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한 발명품을 완성하려면 폐기물 처리장에 ‘숨어있는’ 독특한 부품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에코는 무단 침입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육체를 기계화해서 거대해진 괴수단과 공격적인 보안 요원들은 계속해서 에코와 그의 불량한 친구들을 감시했고, 때로는 그 십대 소년들과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에코는 필트오버의 실험실이나 화공 남작들 소유의 공장에서 폐기물을 도난 당하지 않도록 엄중히 감시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그러한 폐기물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에코의 손에 들어오면 얘기가 달랐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지면 볼품없는 쓰레기도 어느새 쓸만한 물건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 날 밤, 에코는 최근에 철거된 한 실험실에서 폐기물을 뒤지다 놀라운 물건을 발견했다. 마력을 가진 청록색 보석 조각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에코는 재빨리 그 빛나는 보석의 파편이 좀 더 있는지 찾아보았고, 몇 조각을 더 찾아낼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조각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중간중간 조금씩 끊겼지만 조각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어떻게 해서든 수정의 파편을 모두 찾아내야 했다. 에코는 악취 나는 쓰레기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탑처럼 높게 쌓인 쓰레기 더미 아래 파묻혀 있는 남은 조각들을 찾아냈다. 자운에서 마법공학 수정을 모르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기와 영웅을 더 강력하게 해주는 마법공학 수정은 스스로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전해졌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마법공학 수정의 일부가 방금 에코의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마법공학 수정 조각을 발견한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에코는 그 폐품처리장에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괴수단이 폐품을 뒤지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에코가 쥐고 있는 수정 조각들이 분명했다. 에코는 가까스로 그들의 눈을 피해 폐기물 처리장을 빠져나왔다.

에코는 마법공학 수정 조각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미약했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수정 조각들이 한 데 모이면 각 수정의 모서리에서 치지직 하는 소리가 났고, 곧 공기 중에는 번개 같은 선들이 어지럽게 얽히며 빛을 발했다. 수정 조각들을 떼어 놓으니 자기저항 같은 것이 생겨 에너지가 발산되지 않았다. 수정의 파편들은 한 몸이었던 과거를 기억하는 듯했다. 놀랍게도 에코 또한 불현듯 어떤 순간이 정확하게 기억나는 듯한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에코의 머릿속은 다양한 아이디어로 가득했지만 마법공학 수정의 실험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정이 폭발하더니 산산이 부서져 먼지처럼 공기 중에 흩어졌다. 작게 부서진 수정 조각들은 반짝이는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이는 곧 시간 왜곡의 회오리로 변했다. 에코는 잘게 쪼개진 현실의 파편을 목격했다. 그중에는 여러 개의 ‘에코’도 있었다. 에코는 분열된 연속성을 바라보며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번 실험은 성공이었다.

에코와 그의 분신들은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 힘을 합쳐 에코가 현실 세계를 떠날 때 뚫어놓은 구멍을 복구시켰다.

에코는 산산조각이 난 수정의 시간 에너지를 장치에 담았다. 이론대로라면 이제 이 장비로 시간을 마음껏 조작할 수 있었다. 에코가 새로 만든 기계를 막 시험해보려고 하던 차에 친구들이 찾아왔다. 친구들은 빨리 올드 헝그리에 올라가 에코의 영명 축일을 축하하자고 졸라댔다. 에코는 장치를 어깨에 메고 친구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아이들은 자운의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오래된 시계탑 올드 헝그리로 열심히 기어올랐고, 중간중간 시계탑의 벽면에 명망 있는 필트오버인들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려 넣기도 했다. 꼭대기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한 아이가 잡고 있던 나무판자가 뚝 하고 부러졌고, 아이는 미끄러져 첨탑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 순간, 에코는 마치 이런 상황을 수천 번 겪어본 사람처럼 방금 전에 수정으로 만든 장치를 즉각 작동시켰다. 에코를 둘러싼 세계는 산산이 부서졌고, 에코의 몸은 소용돌이치는 시간의 입자 속으로 강하게 빨려 들어갔다.

전기로 인한 충격으로 팔에 난 털이 쭈뼛 곤두섰다. 머리가 어지럽고 멍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에코는 그의 친구가 썩은 나무판자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모습을 보았다. 그대로 두면 방금 전처럼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터였다. 나무판자가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매달려있던 아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나무판자는 둘로 쪼개졌다. 에코는 얼른 몸을 날려 추락하는 친구의 셔츠 깃을 잡았고 친구를 근처에 있는 바위 위로 던졌다. 그러나 에코가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친구는 쉴새 없이 돌아가는 시계탑의 톱니바퀴 쪽으로 던져졌다. ‘앗, 이게 아닌데.’

에코는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리고 조정한 뒤에야 겨우 친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코가 친구를 구하는 모습만을 목격한 아이들은 에코의 뛰어난 반사신경에 감탄할 뿐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에코의 지위는 급격하게 상승했다. 에코는 친구들에게 마법공학 수정과 시간 조작에 대해 털어놓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흥분하여 에코가 해낸 일에 대해 쉬지 않고 떠들었고, 심지어는 에코가 구해줄 테니 더 무모한 행위를 저질러보자고 서로를 부추겼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자 에코의 시간 왜곡 장치 Z 드라이브는 꽤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했다. 이 장치만 있으면 폐기물 처리장에서 부품을 빼돌리거나 화학 물질에 찌든 건달들을 두들겨 패주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였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유혹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 왜곡 장치를 이용하면 매번 멋진 첫인상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 체력만 고갈되지 않는다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

에코가 마음대로 시간을 조작한다는 소문은 필트오버와 자운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한 자운의 과학자 빅토르는 이 반항적인 천재 소년을 꼭 만나보고 싶었다. 그는 에코에게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하기 위해 강력한 기계 장비를 갖춘 자신의 하급 집행자들을 에코에게 보내기도 했다. 한편 필트오버의 저명한 발명가 제이스는 ‘시간을 달리는 소년’이 가진 기술을 면밀히 분석하고 싶었다. 그러나 에코는 독립성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누구와도 팀으로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에코를 뒤쫓는 사람들이 에코를 잡을 확률은 매우 낮다. 에코는 그들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에코는 자운이 높이 솟아올라 진보의 도시 필트오버의 존재를 가려버리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명문가 출신은 아니지만 배짱 하나는 두둑한 자운 출신의 소년이 뛰어난 재기와 굳건한 용기를 발휘하면 필트오버의 황금 건물들도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에코에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의 모든 시간이 그의 손안에 있으니 꿈을 실현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를 바꾸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닐까?

2. 자장가

마치 일주일 같은, 긴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긴 하루였다.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었고 이 상황을 바로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아주나. 하천 가운데 세워진 올드 헝그리 시계탑을 오르며 그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이 소년은 에코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친구들이 말릴 틈도 없이 올드 헝그리의 측면을 훌쩍 뛰어올랐다. 이번에도 에코가 나섰다. 다행히 Z 드라이브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아주나가 낙하 위기에 처한 장소가 어디인지, 또 어떻게 하면 그를 구출해낼 수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 에코는 아주나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무려 열여덟 번이나 돌려 들었다.

이후 에코가 페로스 가와 연계된 쓰레기 더미 속에서 쓸만한 것을 찾고 있는 사이, 괴수단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것으로 악명 높은 놈들이 몰려와 그를 빙 둘러쌌다. 이들의 거대한 체구를 뒤덮은 기계 장치들은 그 흉측함을 한층 더해주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갱단의 모습이 놀랍긴 했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총을 쐈다는 것에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필트오버인에게 에코 같은 이들은 살려둘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Z 드라이브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처럼 돌발적이고도 불가피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뿔싸!” 수십 번의 되감기 끝에 에코는 전혀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퍼뜩 떠올랐다. 그러고는 가장 최근에 만든 장비를 꺼내 들었다. 플래시바인더였다. 강한 불빛을 내며 폭발하도록 고안된 이 장치는 폭발하는 순간, 나사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끌어당겼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플래시바인더가 작동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 만들 때 생각했던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겠지. 우선 폭발은 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일은 바로 이때부터 벌어졌다. 폭발하도록 고안된 보통의 에코 발명품과는 달리, 플래시바인더는 파란 불꽃을 내며 다소 희한한 모습으로 폭발하다가 중간에 얼어버리고 말았다. 불꽃 가운데 부분에서는 푸르스름한 에너지가 마치 기둥처럼 높이 솟아올랐다. 이와 함께 디스크 조각들은 아주 느린 속도로 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폭발 속도에서 이런 식으로 파편이 튀었더라면 아주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둥근 모양으로 번쩍이던 섬광은 공중에서 얼어버렸다.

그런데 상황은 이때부터 한층 더 흥미로워졌다. 자체적인 폭발을 거듭한 플래시바인더가 손바닥만한 크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공중에서 에코의 손바닥 위로 정확하게 착지했다. 열은 완전히 식어 있었다.

’좋아.’ 에코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몇 번이나 거듭 시간을 되돌려 갱단 녀석들에게 던져봤다. 당연히, 과학적인 목적을 위해서!

에코는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몸은 무척 힘들고 지쳤지만 정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또렷했다. 아파트인 그의 집은 꼭 필요한 것만 갖춰놓고 있었다. 가구도, 화려한 장식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두컴컴하게 커튼이 쳐진 에코의 방은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온갖 잡동사니와 낡은 책, 구식 발명품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채였다. 그의 방 한쪽에는 Z 드라이브와 플래시바인더를 숨겨 두기 위한 비밀스런 장소도 있었다. 오늘은 에코의 부모님이 일찍 퇴근하는, 일 년에 몇 안 되는 날이었다. 에코는 부모님께 전할 말이 있었다.

“엄마, 아빠.” 두 분이 도착하기 전, 에코는 Z 드라이브의 원통형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리 연습을 시작했다. “업사이드 클랜이나 콧대 높은 필트오버 학교, 어느 곳에도 지원하지 않으려고요. 저는 엄마, 아빠,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남고 싶어요. 절대 자운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느껴졌다. 텅 빈 집에서 대꾸하는 상대라곤 휑한 벽과 눈앞의 자신뿐이었지만 말이다. 물론 이들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댕그랑 댕그랑 열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으로 가까워오며 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그러자 에코는 황급히 Z 드라이브를 테이블 아래로 밀어 넣고 검정색 천으로 덮어 씌웠다. 시간을 조작하는 마법공학 기기였지만 아직은 조금 불안정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괜한 걱정을 안기고 싶지는 않았다. 위험하다고 혀를 내두르실 게 뻔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에코의 부모님은 그날 밤 처음, 집안으로 들어왔다. 에코의 눈에는 두 분의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불과 몇 주 전이었지만 너무 힘들게 일을 하고 계셔서인지 그때보다 훨씬 더 늙고 초라해진 모습이었다. 부모님의 일상은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 일당으로 마련한 보잘것없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든다. 턱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깊이 잠들고 나면 에코는 조심스레 작업화를 벗긴 후 두 분을 침대로 옮긴다. 에코의 부모님은 식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대부분 세금이나 상납금 용도로 저축한다.

짙은 다크서클에 축 처진 어깨,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부모님이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팔 안쪽에는 종이로 둘둘 싼 작은 꾸러미 하나가 꽂혀 있었다. 양 끝은 노끈으로 묶인 채였다.

“우리 천재 아들! 잘 있었어?” 비록 녹초가 된 몸이었지만 엄마는 있는 힘껏 밝은 목소리로 아들에게 인사했다. 목소리는 좀 과장되었을지 몰라도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는 아들을 본 순간 느끼는 반가움만큼은 진심이었다.

“오셨어요?” 온 가족이 함께 모인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좀 더 살갑게 인사를 건넸으면 좋았을걸.’ 에코는 마음만큼 반가움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빠는 아들이 자랑스러운 듯 환히 웃어 보였지만 에코의 ‘닭벼슬 머리’를 쓸어 내리며 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 에코는 너무 빨리 나이 들어버린 아빠를 보며 젊은 시절의 모습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이마에 깊게 팬 주름과 힘없이 가늘어진 머리카락은 보기만해도 가슴이 저려왔다.

“머리 자르라고 얘기한 것 같은데” 아빠가 말했다. “필트오버에 있는 학교에 가면 이 머리는 너무 튈 거야. 팩토리우드에서나 이런 게 가능하지. 그리고 팩토리우드는 아무나 받아주는 그런 학교인데 넌 ‘아무나’가 아니잖아? 지원서는 잘 준비하고 있지?”

바로 이때였다. 텅 빈 집에서 혼자 연습하던 그 말을 해야 할 가장 적절한 타이밍! 하지만 아빠의 눈빛에 서린 강렬한 희망에 에코는 쉬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 엄마가 짠! 하고 나타났다.

“에코, 우리가 널 위해 준비한 게 있지!” 엄마는 들고 있던 갈색 꾸러미를 테이블에 내려 놓았다. 그러자 셋은 모두 테이블 앞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에코는 손을 뻗어 매듭을 풀고 노끈 두 개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러고는 갈색 포장지도 살살 풀어 보았다. 그 안에는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는 스위트브레드 한 덩이가 놓여 있었다. 겉은 꿀을 발라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고 설탕에 조린 견과류도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에코는 대번에 엘라인이 만든 케이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의 빵은 자운에서 최고로 꼽혔지만 에코네 형편으론 너무나 값비싼 것이었다. 그래서 에코와 친구들은 그 비싼 디저트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먹는 돈 많은 녀석들에게서 조금씩 훔쳐먹곤 했다.

에코는 고개를 들어 부모님의 반응을 살폈다. 뿌듯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건 너무 과해요.” 에코가 말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고기나 저녁 찬거리를 사지 그랬어요.” 에코의 핀잔에 아빠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에코, 일 년에 한 번뿐인 너의 영명 축일을 우리가 어떻게 잊어버리겠니? 그런데 어째 넌 기억 못한 것 같구나?

에코는 이날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이 선물은 너무 과했다. 자신에 대한 부모님의 꿈을 산산이 부숴버릴 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죄책감이 가시질 않았다. “한 번만 더 월세가 밀리면 쫓겨날 지도 몰라요.” 에코가 말했다. “그래.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보자. 하지만 에코, 너는 충분히 이 케이크를 먹을 자격이 있어. 어서 먹으렴. 일 년에 한 번인데 뭐 어떠니.”

엄마가 재촉했다. “그럼 엄마는 뭐 드시게요?” 에코가 물었다.

그러자 엄마와 아빠가 차례로 대답했다. “난 지금 배가 안 고파.”

“난 일하면서 요기를 했고. 필트오버산 치즈와 고기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에코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에코는 케이크를 조금 잘라 맛을 보았다. 버터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달콤함이 밀려들었다. 깊고 풍부한 맛이 혀에 착 감기는 듯했다. 에코는 케이크를 세 조각으로 잘라 함께 먹으려 했지만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아들이 먹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불렀다. 그러면서 엄마는 축일 기념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실 에코도 알고 있었다. 두 분은 절대 케이크를 먹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케이크는 아들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부모님의 선물이었다.

잠들지만 않았다면 아빠 역시 엄마의 콧노래에 동참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칠 대로 지쳐버린 아빠는 진작에 잠이 들고 말았다. 오늘도 여전히 의자에 앉아 가슴께까지 턱을 늘어뜨린 채로 말이다. 에코는 엄마를 힐끗 살펴보았다. 엄마 역시 쏟아지는 졸음에 당해낼 재간이 없는 듯 보였다. 반쯤 감긴 눈은 이미 풀려 있었고 흥얼거리던 콧노래 소리도 점차 희미해졌다.

에코가 늘 꿈꿔왔던 건 팩토리우드에서의 생활이었다. 극도로 힘든 경제적 상황에서 필트오버까지 나가 그들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에코는 아주 어릴 적 무심결에 들었던 부모님의 대화가 자신의 머리 속을 떠다니는 듯했다. 발명에 대해 나누었던 간절한 꿈, 그리고 클랜 입성에 대한 희망까지. 젊은 시절 이들이 꿈꾸던 것들을 실현했다면 세상을 바꾸고 앞날에 커다란 기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코가 태어나면서 그것은 미완의 꿈으로 남고 말았다. 그래서 에코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두 분의 유일한 희망은 자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에코는 자운에서의 삶이 마냥 좋았다. 만약 부모의 뜻대로 필트오버로 간다면, 가족과 친구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에코는 더 이상 케이크를 먹지 않았다. 대신 Z 드라이브를 실행시켰다. 순간 에코의 집은 강력한 소용돌이 속에서 형형색색의 먼지로 흩어졌다. 일상의 모든 순간은 일시에 절대 침묵으로 변해 버렸다. 빛의 소용돌이 속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있던 그 순간은 산산이 조각나 에코를 둘러쌌다.

미래의 순간이 다시 과거의 것으로 하나 둘 조립되고 나자, 그날 밤 에코의 부모님은 두 번째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계속해서 반복될 것이었다.

매 순간을 과거로 돌려놓으면서 에코가 그때마다 빼놓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기쁨, 그리고 앉은 채 잠드신 아버지의 입가에 번지는 자랑스러운 미소였다. 에코는 조작한 이 시간을 끝까지 붙잡아두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잠과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스한 집안 공기가 에코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결국 잠이 들었다.

마치 일주일 같은, 긴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3. 기타


에코의 코믹, 시공간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