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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Jehoram_of_Israel
이름 | 여호람 혹은 요람 Jehoram | |||
출생 | 기원전 870년경 | |||
미상 | ||||
사망 | 기원전 841년경 | |||
텔 이스르엘 | ||||
소속 | 미상 | |||
재위년도 | 기원전 852년~기원전 841년 약 9년 | |||
국적 | 북이스라엘 왕국 | |||
아버지 | 아합 | |||
이전 국왕 | 아하시야(이스라엘) | |||
다음 국왕 | 예후 |
북이스라엘 왕국의 9대 국왕.
여호람은 아하시야가 병사한 후 왕위에 올랐다. 그는 아합의 아들이었으며, 사마리아에서 12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는 아합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앴지만, 여로보암 1세 때부터 해 온 우상숭배는 버리지 못했다.[1]
아합이 죽은 후 모압 왕 메사가 북이스라엘을 배반하자, 여호람은 모압을 함께 공격하자며 남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냈고, 여호사밧은 흔쾌히 응했다. 에돔 광야 길을 거쳐 이동하면서 에돔 왕도 연합군에 합세했다. 그러나 군사와 가축을 먹일 물이 고갈되자 여호람은 좌절에 빠지고, 여호사밧은 하느님의 예언자가 있는지 묻고 엘리사에게 가자고 주장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사는 개천을 많이 파라고 말했고, 다음날 아침이 되니 정말 물이 흘러 가득하게 되었다. 모압 왕은 햇빛이 물에 비쳐 물이 붉은 색처럼 된 것을 보고 연합군이 자기들끼리 싸워 흘린 피인 줄 알고 성급하게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모압 왕이 자신의 아들을 인신공양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돌아갔다.[2]
이후 북이스라엘에 가뭄이 들고, 아람 왕이 쳐들어올 때마다 엘리사의 도움으로 여호람은 위기를 겨우겨우 벗어났다.
이때 엘리사가 한 말이 압권.
그 때 엘리사는 장로들과 함께 집에 앉아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냈는데 그 전령이 오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살인자의 아들이 내 목을 베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전령이 올 터이니, 미리 문을 잠그고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막아야 합니다. 그를 보내놓고 뒤따라오는 상전의 발소리가 저렇게 들리지 않습니까?" 엘리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이 들이닥치며 말하였다. "보아라, 이 재앙을 야훼가 내렸다. 그런데 이제 내가 야훼에게 무엇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열왕기하 6:32~6:33(공동번역성서)
열왕기하 6:32~6:33(공동번역성서)
심지어 수도 사마리아가 아람군에게 포위되어 식량이 떨어져 백성들이 인육을 먹을 정도였으나,
"야훼의 말씀을 들으시오." 하며 엘리사는 말씀을 전하였다. "야훼께서 말씀하십니다. '내일 이맘때쯤 되면 사마리아 성 문에서 밀가루 한 말을 한 세겔, 보리 두 말을 한 세겔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열왕기하 7:1(공동번역성서)
열왕기하 7:1(공동번역성서)
엘리사가 야훼에게 빈 덕분에 아람군이 철수했다고 성경에 나와있을 정도. 하지만 이때 엘리사의 말을 무시하고 불신했던 보좌관은 굶주린 백성들을 막다 깔려죽었다.
결국 예후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살해되었다.[3]
그리고 여호람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인 나봇의 포도원에 던져졌다.
여호람의 죽음을 끝으로 북이스라엘에서의 오므리 왕조는 막을 내리고 이후 아합의 딸 아달리야가 남유다의 왕위를 찬탈하여 6년간 재위하지만 결국 폐위당함으로써 오므리 왕조는 완전히 멸망한다. 다만 예후는 왕조의 정통성 때문인지 스스로를 오므리의 후손이라 참칭한 흔적이 보이며 또 아달리야를 몰아내고 즉위한 요아스가 아달리야의 외손자였던 관계로 남유다에서는 모계로 오므리 왕조의 혈통이 흐르게 된다.
[1] 다만 그렇다고 바알 신앙을 탄압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알 숭배자들은 여호람 시절까지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사람 어머니가 이세벨이다. '엄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여호람이 어떻게 어머니가 살아있는데 대놓고 바알 신앙을 탄압할 수 있을까? 물론 남유다에서는 그런 눈치 안 보고 할머니를 폐위한 왕도 있긴 했다지만 여호람의 어머니가 당대 부강한 도시인 시돈의 공주라는 게 문제다. 아버지인 아합조차 이세벨의 눈치를 봤다고 하는데 여호람이라고 다를지는...[2] 이 싸움 후 모압 왕 메사가 승리를 주장하며 세웠던 메사 석비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여기서는 오므리와 그 자손이 성경보다 훨씬 길게 통치했다고 나온다. 단 예후가 타국에는 오므리 왕조의 후손으로 자칭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오므리 왕조와 예후 왕조를 구분하지 못해서 그렇게 기록했을지도 모른다.[3] 이 장면이 구약성경 열왕기하 9장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여호람이 예후를 만나자 "예후 장군, 잘 되어가오?"라고 인사를 하니, 예후가 "네 어미 이세벨이 우상을 섬기며 음란을 피우고 밤낮으로 마술이나 일삼고 있는데 잘 되어가느냐가 다 무슨 소리냐?"라고 퉁명스럽게 외쳤고, 여호람은 예후가 반역을 한다고 외치며 놀라 전차를 돌려 달아나다가 예후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출처: 열왕기하 9장 22~2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