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명대사

담이라는 이름도 예쁘지만 어쩐지 좀 더 특별한 이름으로 너를 부르고 싶어서.
연꽃에게서 널 선물받았으니 이 이름이 너와 날 어울릴거라 생각했다. 연선(蓮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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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지운

처음부터 혼자였으니, 외로움이 무엇인지 그리움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하여, 원망조차도 한 적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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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담이

[ruby(戀, ruby=그리워하다)], 　[ruby(不, ruby=아니하다)]
[ruby(戀, ruby=그리워하다)], 　[ruby(期, ruby=기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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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휘가 어린 지운에게 준 윤목

힘들 때, 의지가 되어 줄 것이라 했다. 그 아이에게도, 그러했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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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담이

용서하지 말거라. 미움이든 원망이든, 그 무엇이라도 좋다. 그 마음으로 살거라. 삶을 지탱할 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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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궁

명심하거라. 니가 진짜 세손이라는 걸. 너는 특별한 아이다. 누구보다 귀한 선택받은 아이인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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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궁

언제까지냐고 하신 겁니까. 아마 평생을 떠올리며 살 것입니다.
죄 없는 아이를 베던 아버지의 그 모습이, 앞으로도 평생, 저를 괴롭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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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불의라 하였느냐? 청백리라 불리던 네 조부의 삶이 나에겐 더없는 불의였다.
가족의 목숨은 지키지도 못하면서, 선비의 꿋꿋한 기개만을 외치며 사는 것이 정의라면...
평생 불의에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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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조

난 도망따윈 안 가오.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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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궐은 진흙탕 같은 곳입니다. 어차피 내 사람이 아니면, 다른 이가 틈을 엿보겠지요. 허니, 그런 일에 일일이 신경쓰지 마십시오.
홀로 고고할 필요는 없단 뜻입니다. 나의 사람이, 곧 저하의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소신의 이 뜻을, 잘 새기셔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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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재

실은 모두 제 얘기였습니다. 회강에서 했던 말들 말입니다. 하여 설령 이 일로 위험에 처한다 해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두려운 건, 진창뿐인 그들의 모습에 익숙해질까 봐, 그런 모습을 닮아갈까 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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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참으로 순진하시군요. 사람들의 마음을 믿어보라 하셨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나를 위해 남을 속이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일 수도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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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그래도 한 번쯤은, 믿어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저하를 위해서 말입니다.
사람들과 너무 거리두려 하지 마십시오. 그럼 저하께서 더 외로워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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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첫사랑이었습니다. 저를 많이 바뀌게 해준 아이였지요.
다시 만난다면, 고마웠다. 그리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젠 그리할 수도 없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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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 매번, 실컷 달리고 싶으시다면서.. 늘 여기서 멈추십니까? 왜..

- 돌아가야 되지 않습니까, 궐로. 제가 아는 길은, 딱 여기까지거든요. 형님께선, 아주 멀리까지도 가보셨다 하셨지요?
저 멀리엔, 뭐가 있습니까? 성문을 지나 줄곧 달려가면, 정말로.. 끝고 깊이도 알 수 없는 바다라는 것이 있긴 한 겁니까?

- 예, 있지요. 그곳에 돛이 아주 큰 배도 한 척 있습니다. 그 배에 오르면 어디든 갈 수 있지요. 아주 먼 곳이라도요.
저하께서 길을 물으시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언제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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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이휘

틀렸습니다, 저하. 저하의 행동에는, 옳고 그름이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저하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외조부인 내 말을 귀담아듣고, 나를 넘어서지 않는 것. 그것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이 곧 저하의 길이 된다는 것을. 그 길을 벗어나면, 아무리 귀애하는 저하일지라도, 제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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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재

가시려는 그 길, 함께 가고자 함입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어떤 방책으로, 외조부님을 따르고자 하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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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나를 염려하는 것은 정 사서의 일이 아닙니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모른 척, 그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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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적절히 내려 참 좋은 비처럼 저 역시
저하께 그런 사람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저하께서 제게 그리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비가 내립니다, 저하. 때마침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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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널 믿은 날, 이리 실망시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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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

잘 하셨습니다. 저하께선 분명, 잘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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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고맙습니다. 잘 참아줘서. 그리고, 함께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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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앞으로도 늘 함께해드리고 싶습니다. 저하께서 허락하신다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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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너희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아팠을지.. 나 역시, 조금은 알 것도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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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제 의지와 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숨길 수밖에 없던 그 마음들이, 너무 안타까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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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좋아해서 그랬다. 좋아해서.
곧 혼례도 올릴 테니 마지막으로 그 정도는 해도 되는 거잖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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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어떻게 변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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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꿈인 줄 알았습니다. 저하를 향한 제 불경한 마음이 꿈이 되어 나타났다고 말이지요. 헌데, 꿈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흔들린 거라고 하신다면 그렇다 믿어드리겠습니다. 허나, 저는 아닙니다.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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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감당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게 뭐라고 하던, 아니, 저하께서 제게 뭐라고 하시든. 전부 제가, 감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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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차라리,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허면 이렇게, 아플 일도 없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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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여인들만의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은 것은 함께 즐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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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1]

이휘: 때로는 나도 저들처럼 사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마음 편히 웃고,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기도 하고 말이지요. 궐에서는, 내 자신에게조차 솔직할 수가 없으니. 나는 평생 경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게 되겠지요. 사람들은 세자인 나를 부러워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기 있는 저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누구에게도 눈치보지 않고, 저리 마음껏 행복할 수 있으니.

정지운: 그리하시지요, 저하. 오늘처럼 웃으시고, 때론 우셔도 됩니다. 제 앞에서는 말이지요.

이휘: 고마웠습니다. 정 사서 덕분에, 단 하루라도 행복할 수 있었으니.

힘든 일이라도 있으셨나봅니다. 그런 날이 있지요. 저도, 오늘이 그런 날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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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단 하루가 아니라, 매일매일. 꿈도 희망도 없던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신 분이 저하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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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그 소리를 들으면, 그립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거든요.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던.. 아주 어릴 적, 어느 순간으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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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곁에 있고 싶습니다. 안고 싶고, 이리 마주 서 이야기 나누고 싶고, 함께 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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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저하께서 더 가지 못하고 멈추었던, 그 길 끝에 바다가 있다던 제 말을 기억하십니까? 그곳에, 돛이 아주 큰 배가 있다고요.
그 배를 타고 떠나시지요. 저하께서 원하는 곳이 그 어디든, 제가 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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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2]

제가 틀렸습니다. 다시는 저하를 홀로 두지 않겠습니다. 다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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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이 날을, 오랫동안 상상해봤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알게 되시면, 어떻게 될까 두려웠었거든요. 세자로서 아바마마를 원망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이 궐에서 태어난 한 사람으로서, 원망하였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었던 평범한 아이였으니까요.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다시, 제가 태어나던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같은 선택을 하실 겁니까? 어명이 아니었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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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저는, 한 번도 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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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제가 틀렸습니다. 다시는 저하를 홀로 두지 않겠습니다. 다시는요.
이젠 저하께서 뭐라고 하셔도, 저하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저하를, 지킬 것입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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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함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처럼 이리 마루에 앉아
지겹도록 꽃이 피고 지는 걸 함께 보시지요.
밤엔 별도 보고
흐린 날엔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함께 듣기도 하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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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아주, 먼 훗날에 있는 꿈을요. 깨고 나니, 마음이 조금 아프더군요.
내게 먼 날들은, 늘 그랬거든요. 아프고,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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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변했다고만 생각했는데,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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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나는, 정 사서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매일매일 행복하라 했던 그 말처럼. 그리 살아주십시오.
그것이, 정 사서에게 바라는 내 마지막 부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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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그날 나의 선택을, 오랫동안 후회하였다. 하여 나는, 또다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이휘, 너의 오라비의 이름이었지만, 이제 내겐, 너의 이름이다. 조선의 세자였고, 하나뿐인 나의 딸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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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

그저 살아만 다오. 나에게, 너의 소식이 들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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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

아무 말씀 안하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바뀐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지금 제 앞에 계신 분이 저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거면 됩니다. 저하만 계신다면,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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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허나, 단 한순간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은 없었다. 내 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 살아갈 것이다.
네 아비와 꿈꾸었던 그 세상을, 만들어나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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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종

너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진정 보여주길 바라느냐.
말하지 않았느냐. 욕망을 채우려는 것엔 이유같은 건 없는 법이라고. 왕이 되십시오.
저하의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신다면,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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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재

매일 두려웠습니다. 언젠가 제가 형님 자리를 빼앗게 될까 봐요. 한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어마마마와 조부님의 욕심 때문에, 언젠가 이런 날이 올까.. 그게 두려웠나 봅니다. 제가 죽을까 봐, 죽는 게 두려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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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현대군

나는, 나만 이리 힘든 줄 알았다. 나만 두려운 줄 알았느니라. 아바마마는, 내가 죽였다.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니라.
걱정 말거라. 내가 살려줄 것이다.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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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제 사람들은 건들지 않겠다, 그것만 약속해 주십시오. 하면 기꺼이, 외조부님의 인형이 되어드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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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안 됩니다. 아니라고 해주십시오. 저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함께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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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이젠, 제 곁에 오시면 안 됩니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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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선택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네. 선택은 늘 자네가 했을 뿐이지. 선택이란 자네처럼, 명문가에서 난 자들의 몫이 아니었나. 난 그저 갈 수 있는 길이 이 길뿐이라, 이곳으로 걸어온 것뿐이네. 하니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남아있는 길이 이 길뿐이라면... 이곳에 와 서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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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조

아프지 마십시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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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좋아해선 안 될 사람을 좋아하는 건, 그런 거더라고. 내색할 수도 없고, 내보이지도 못한 채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거. 내 마음이 원하다고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그 사람이 다칠 지도 모르니. 나는 그저 마음인데, 그 사람에겐 칼날이 될지도 모르는 거잖아. 해서, 평생을 숨기며 지켜보았다. 가족도, 친구인 너한테도 말 못 하고 혼자서 말이야. 품어선 안 될 마음을 갖는다는 건, 그런 거더라고. 그러니, 혹시라도... 네 마음이 향하는 곳 역시 그곳이라면, 더 아프기 전에 정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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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이 세상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너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람은 전하야.
그분이 잘못되면, 난 이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지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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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나도 마찬가지다, 현아. 이제는 나도, 전하가 내 세상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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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넘어져 다치시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선 늘, 안전하지 않은 길을 택하시니... 조금이라도 밝혀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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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기다렸습니다, 그 말을. 더 늦었다면...
그래도, 기다렸을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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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지요. 허나,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가족을 위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 말을요. 여전히, 어렵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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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불비불명(不飛不鳴). 삼 년 동안 울지도 않고, 날지도 않은 새가 있었다지요. 오래 참아온 만큼, 한 번 날아오르면, 하늘을 뚫고 솟을 것이고... 울기 시작하면, 천지를 뒤흔들 것입니다. 큰일을 위해 때를 기다리셨다고요. 하면, 저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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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정 주서가 그랬지요? 모두 감당하겠다고.
나도 해보겠습니다. 감당하겠습니다,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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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전하께서 질투를 하고 계시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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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거기 서십시오, 나는 아직 멈추라 한 적이 없습니다.
서거라, 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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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전하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전하를 잃지 않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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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신첩.. 잘은 모르오나, 중전을 국모라 부르는 까닭은 전하를 섬기는 백성들을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아끼고,돌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하옵니다. 헌데, 제 아이를 품어 본 적도, 낳아본 적도 없는 제가 어찌 그 뜻을 이해하고 백성들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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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경

그러니, 정주서께서 지켜 주십시오. 부디 전하를.. 지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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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궁

좋은 인연이고 싶었는데
아픈 인연이었나 봅니다.
그저 그런 인연도 있었다,
그리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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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은

담이야. 전하셨습니까, 담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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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정주서 역시 오래 아팠다는 거 압니다. 정주서와 나, 누구도 선택한 적 없는 일이었으니..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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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나 역시 그랬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기억으로, 버텨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정주서를 만나 행복했습니다.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 내 앞에 나타나 주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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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너를 보면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나를 닮지 않은 것이었다.
용서하지말 거라, 이 아비를. 지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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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조

비녀. 비녀가 갖고 싶습니다. 댕기말고, 고운 비녀요.
이 일이 끝나고, 궐을 나가게 되면... 꼭 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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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살고 싶습니다. 하여, 꼭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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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저와 함께 가시지요. 외조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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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연모합니다. 정 주서를 만나고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연모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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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애초에 탄생조차 하지 않았으니, 죽음인들 두렵고 억울할 연유 또한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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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재

가지 않았습니다.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함께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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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

지금껏, 그리 살아왔습니다. 살아서도, 살아있지 않은 채... 그렇게 말이지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허상의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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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아니요. 이젠 너머의 삶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여기 이대로도, 충분히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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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습니다. 아주 길고, 무섭고, 아름다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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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

앞으로는 무섭지 않고, 아름답기만 한 꿈을 꾸실 겁니다. 제가 늘, 곁에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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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