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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6 12:12:48

연향

<colbgcolor=#000000><colcolor=#fff> 연향
파일:연향.jpg
본명 연향
가족 아들 이방지
분이
배우 전미선
1. 개요2. 작중 행적
2.1. 정체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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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용비어천가 시리즈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간난이라고도 불리었지만 본명은 연향으로 땅새분이의 어머니다. 드라마 초반에 아주 잠깐만 등장하여 그저 맥거핀인 줄 알았는데, 정도전에 의해 노국공주시녀였음이 밝혀졌다. 당시는 항아라는 이름을 썼다고. 정도전은 18년 전에 그녀가 이미 죽었다고 알고 있었고, 길선미는 땅새한테 노국공주의 죽음(사산)에 관련되어 있기에 고려의 죄인이 되었다며 다시는 간난을 찾지도 연향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도 말라고 말했다.

정도전의 말에 따르면 노국공주의 죽음 후 공민왕이 궁녀들을 잡아족쳤고 이 때 자결했다고 전해졌으나, 사실은 자결을 위장하여 궁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후 땅새와 분이를 낳고 살다가 무명에게 납치되었다는데...

27화 마지막에 노파를 부축하며 가는 모습으로 드디어 등장.[1] 이후 28화에서 사실 깨어있었던 분이가 납치 전날 무명 조직원과 연향이 접촉했고 이 때 조직의 암어로 서로를 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다음날 분이가 "아이들과 연을 끊겠다."라고 말한 것을 봤었다는 사실이 공개된다. 즉 납치가 아니라 원래부터 무명의 조직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밝혀진 사실은...

2.1.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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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에서 밝혀진 사실은 무명의 일반 조직원이 아닌 바로 무명의 수장, 무극이라는 자로 밝혀졌다.[2][3] 다시 말해 이 여자가 작중 일어났던 모든 사건의 진짜 흑막이다. 정야의 종처럼 꾸미고 다니는 건 같은 조직원들에게조차 상위 몇몇을 제외하곤 정체를 숨기기 위한 위장.

어찌 된 일인지 무명을 떠나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애를 낳고 살았다고 한다. 덕분에 수장을 잃은 무명은 한바탕 내전에 들어갔고 그게 바로 무오년에 있었다는 소동. 원래 주류 파벌이 점점 밀려서 당할 처지가 되자 육산은 연향의 아이를 죽인 후, 반대 파벌을 그 범인으로 위장, 알려서 연향을 무명으로 다시 불러 올 계책을 꾸민 것. 아이들이 죽은 줄 알았던 연향은 다시 무명으로 돌아와 반란을 진압하고 다시 무명의 수장, 무극으로서 활동한다. 초영의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전쟁고아였던 것을 무명에서 거둬들여 무극의 후보로 함께 길러졌다고 한다. 이후 초영을 제치고 무극이 되었다고... 이후 길선미로부터 자신의 자식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듣고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그를 비수로 찌르고, 자신이 모든 걸 안다는 사실을 육산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길선미에게 당부한다. 그리고 육산에게 이방원에 관한 것을 모두 맡기고, 이후의 정도전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그를 주시하겠다고 한다.

33화에선 분이와 해후를 하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씁쓸하게 헤어진다. 34화에선 정몽주의 의중을 알아채리고 정몽주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길선미에게 이성계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리는데, 이를 듣던 길선미와 무극의 말에 꿈쩍도 못하던 정야까지 무극께서 너무 극단적이고 서두르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데, 이에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이며 육산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것이 너무 힘에 부쳐 빨리 이 일을 정리하고 조직 내부 정리를 하려는 의도를 내비친다. 어쨌든 연향의 내부의 적은 육산이 확실한 듯.

이후 37화에서는 연향 본인이 직접 정도전을 만나러 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정도전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되려 서로의 극단적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뜻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정도전의 나라에 맞서겠다고 선언하고서는 떠난다. 38화에서 무명 회의에서 정보체계를 복원하겠다며 화도객방이라는 미지의 조직을 움직인다고 한다. 39화에 의하면 신라 시대 때부터 있던 상단인 듯.

그리고 비국사에서 적룡을 위협하던 이방원 앞에 직접 등장하였다! 이방원은 무명이 어떻게 70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이에 연향은 남은 무리들이 무열왕에게 무릎을 꿇었고 김춘추는 무명을 정보 조직으로 활용하였으나, 그의 다음 왕인 문무왕은 무명을 소탕하려 했기에 다시 어둠 속으로 숨었다고 답한다. 다른 왕자들을 제치고 방석이 세자가 된 상황에 대해서는, 자신들 무명이 이방원에게 판을 만들어 준 것이라 말하며, 정통성이 부족한 세자를 지키기 위해 정도전에게 권력이 집중될 것임을 예견한다. [4] 정도전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틈을 보일 것이라고 말하며, 나라가 안정을 찾으면 무명은 조용히 사라질 것이라 이른다. 초영과 육산을 북방으로 보내, 만상 객주를 중심으로 정보 조직인 화도객방을 재건할 것을 명령한다. 화사단이 완전히 정도전의 손에 넘어간 상황에서 비국사 만으로는 정보 수집에 한계를 느낀 듯하다.

41화에서 초영이 이방원 집을 찾아가다가 붙잡혀 순군부에서 이신적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자신들의 은거지가 발각되자 육산과 함께 도주를 하다 이방지를 만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게 원한을 품은 이방지에게 연향은 정도전을 버리거나 아니면 자신을 죽이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자신은 언제든지 네 손에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며 그게 네게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속죄라 말한다. [5]하지만 마음이 흔들린 이방지는 연향을 죽이지 못하고 이후 연향은 길선미와 함께 탈출한다. 42회에 등장, 황실에 조선의 여자들을 진상하는 사업을 통해 명나라 측과도 연줄이 닿아있음이 드러났다. 연왕 주체이방원이 서로 간의 협상을 마무리함에 있어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이후 등장은 없었고 심복인 적룡이 그녀의 대리인으로 이방원의 무인정사에 협력하였다. 정도전이 죽었으나 아직 2회분이 남아있기 때문에 재등장할지 혹은 그대로 암약할지 모르는 상황. 실제로 48회에서 재등장. 이숙번에게 쫓기다 부상을 입은 이방지를 길선미로 하여금 구출하여 자신이 은신 중인 산속 초가집에 머물게 했다. 어머니의 변명을 냉정히 자르며 상처를 회복한 이방지는 한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손잡고 자신의 주군이었던 정도전을 죽인 이방원을 향한 복수를 준비한다. 연향도 마찬가지로 이방원이 위험인물이라 손을 쓸 생각이다.

49화에서는 이방지에게 복수가 끝나면 같이 대륙으로 가자고 하였으나 이방지에게 어머니와 함께하는 것은 이번뿐이라며 거절당한다. 이후 육산에게 무취 무향의 독을 구해오라고 지시하였고, 길선미에게는 이방원을 죽일 때 육산도 같이 처리하라고 지시를 한다. 그리고 연회 자리에 독이 든 술잔을 내오지만 하필 그 시점에서 분이가 나타나 이방원에게 위험을 알리는 바람에 독살에는 실패하고 이후 무사들을 풀어 이방원을 죽이려 들지만 갑자기 난입한 척사광이 무사들을 도륙하면서 다가온다.

이방지가 척사광을 막는 걸 조마조마하게 보다가, 이 과정에서 연향을 도망보내면서 어머니라 부르게 되면서 이미 이방지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있었음을 육산에게 들킨다. 그래서 육산에게 죽을 뻔하나 죽어가던 길선미가 마지막 사력을 다해 육산을 죽여 위기를 넘긴다. 이후 방지에게 중국 남경까지 같이 간뒤, 자신의 갈 길을 갈 걸 권하고 적룡에게 살아남아 다음 명을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이후 무명이 잠적한 상태에서 다른 일은 벌이지 않고[6] 태종~세종 시대에 자연사[7]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방지도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모시면서 같이 지내다가 뿌리깊은 나무 당시에 몰래 조선으로 귀국해 북방에 가서 눌러앉았을 가능성이 높다.

3. 기타

오히려 육산이 마지막에 연향을 배신하고 죽이려 했기 때문에 육산이 진정한 악인으로 묘사되었다.


[1] 위의 사진이 그 장면이다.[2] 잠깐 복선이 나온다. 정야의 호위는 정야를 지키는 척하면서 연향을 지켰고 이후 길선미가 연향에 대해 물으며 어디 계시냐고 존대를 한다.[3] 무극이라는 단어가 시청자들에게 수장이라는 뜻으로 명확하지 않아서인지 33화부터는 자막에 '무명의 수장'으로 표시되고 있다.[4] 38화에서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군권을 포함, 유사시 대군들의 처분을 결정할 권한까지도 요구했고 결국 받아냈다.[5] '언제든지 와서 죽여도 된다.'정도가 아니라 '방을 붙이면 내가 직접 네 손에 죽으러 가겠다.'라고 말한다.[6] 이 시기 뭔가 연결할만한 사건은 2차 왕자의 난조사의의 난 정도인데, 2차 왕자의 난은 방간과 방원의 대화로 보아 방간이 약간의 사병만 이끌고 무모하게 벌인 일이고, 조사의의 난은 극 중 언급도 없지만 배후인 이성계가 아무리 이방원이 미워도 무명과 손잡을 가능성은 낮으므로 결국 태종, 세종시대에는 조직 유지를 위한 조치 정도를 빼고는 정치에는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받은 타격도 크거니와 이 때는 나라가 안정되었으므로 무명이 나설 명분도 없던 시대이다.[7] 노국대장공주가 승하했을 때의 나이를 20살로 보면 무인정사가 벌어진 1398년 때 이미 53살이란 적지 않은 나이고, 태종이 양위했을 1418년 때까지 살았다면 78살이다. 태종 재위가 1400년~1418년이고 태종이 죽은 해는 상왕으로 물러나고 세종 즉위 4년째 되는 1422년이다. 이때까지 살았다면 80살은 넘었다.[8] 애당초 자녀들을 두고 떠난 이유가 자신이 자녀들과 같이 있으면 자녀들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9] 당시 시대상으로는 당연할 순 있으나, 현대의 인권개념으로 보면 그냥 대규모 인신매매단의 수장. 명 황실의 눈에 들 정도면 어마어마한 규모로 가져다 바쳐야...당대에도 상국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이지 좋아서 보낸 것은 아닌데, 명나라의 요청도 없이 자발적으로 바쳤다면 당시 기준으로도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