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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9 23:23:46

오귀스트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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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내용은 특성상 뒤의 내용을 선 공개하는 작품에서 정식 공개되지 않은
줄거리와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설명합니다.



'''갈리코의 오귀스트
{{{#6699cc Auguste de Briand'''
파일:언니내왕 오귀스트.jpg
소설 웹툰
프로필
<colbgcolor=#F3DC8E><colcolor=#6699cc> 국적 갈리코 왕국
나이 미상[1]
신분 왕족(군주)
직위 갈리코의 공주
가족관계 샤를 7세 (아버지)
필리프 4세 (큰 오빠)
루이 왕자 (작은 오빠)
(사생아 겸 조카)[2]
마르그리트 왕비 (고모)
알폰소 데 카를로 (고종사촌 동생)
루이 드 브리앙 (조카)[3]

1. 개요2. 소개3. 작중 행적
3.1. 전반부3.2. 후반부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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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의 등장인물. 갈리코 왕국의 공주.

2. 소개

필리프 4세의 여동생[4]이자 알폰소의 사촌[5]. 새하얀 피부에 색이 옅은 백금발을 가지고 있으며, 이목구비는 모두 작고 섬세하게 아름다우나[6] 어딘가 신경질적인 인상이 있다고 한다. 성격 역시 큰오빠 못지 않게 교활한 편이다. 국왕 필리프에게 아직 왕비가 없기에, 미혼의 공주로서 몽펠리에 궁정의 실질적인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변덕스러운 성정을 가진 필리프도 하나뿐인 여동생을 각별히 아끼며 그 사실을 몽펠리에 궁의 모두가 알고 있다. 즉, 필리프의 최측근인 동시에 사실상 국왕의 정부인 인물.

사실상의 정부답게 국왕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하고 임무를 달성한다. 오귀스트는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자 바로 둘째 오빠인 루이 왕자를 쳐내고 큰오빠인 필리프에게 무한한 충성을 바쳤다. 라리에사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폰소를 몽펠리에로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한 것도 이 인물이며, 알폰소가 갈리코에 끌려온 엘코의 석방을 요구하자 발끈하기도 했다.

3. 작중 행적

3.1. 전반부

첫 등장부터 필리프와 비앙카의 국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는데다 공식 석상에서도 오빠와 근친상간 분위기를 진하게 풍긴다. 회담이나 만찬장에서도 국왕의 옆자리에 배석했다. 율덴부르크 대공과 십자군 후원금을 논의하는 자리에도 참여했다고 한다.[7] 오죽하면 색에 무디다는 율덴부르크 대공마저 남매의 사이를 눈치챌 정도. 이후 마련된 갈리코와 에트루스칸 양국 회담에서 마르그리트 왕비의 죽음에 대한 거액의 배상금과 에트루스칸 침공 중 하나를 고르라는 뻔뻔한 요구를 하여 알폰소의 분노를 산다. 두 남매는 알폰소를 인질로 잡고 타란토의 비앙카를 갈리코 왕비로 요구할 작정이었으나 다행히 알폰소는 율덴부르크 대공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한다.

알폰소의 탈출 후 양국 간에 전면전이 벌어지자 아리아드네가 갈리코 군에 흑사병을 퍼뜨리고, 전염된 채로 귀국한 군대가 다시 병을 옮기는 바람에 갈리코 왕국이 쑥대밭이 된다. 이때 오귀스트 공주 또한 흑사병에 걸려 사망하고, 여동생에게 비정상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던 필리프 4세는 절망해 국사를 내던지고 칩거하게 된다.
또한 외드 대공의 언급(필리프 4세는 미혼이라 적통 후계자가 없으며, 동생인 루이 왕자와 오귀스트 공주도 모두 사망해서 갈리코 국내에는 왕위계승권자가 없다)으로 보아 갈리코 왕위 계승권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8]
한편 아리아드네와 알폰소가 트레베로로 갔을 때는 친오빠 필리프와의 사이에서 사생아 아들 ‘쟝’을 출산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심지어 필리프는 쟝에게 계승권을 주기 위해 직접 트레베로로 가서 알레망 법[9]에 대한 대사면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전생에서는 흑사병으로 죽지도 않고 체자레 즉위 당시까지 멀쩡히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생의 필리프 4세는 비앙카와의 결혼 시도가 실패하자 대신 그레도 왕국의 공주[10]를 왕비로 들였는데, 왕비가 얼마 살지 못하고 사망하는 바람에 오귀스트 공주가 독살했다는 의혹이 있었다고 한다.

작중 등장하는 나라의 국력이나 여성 본인의 나이 및 지위를 고려하면 알폰소의 왕자비로 상당히 유력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라리에사도 오귀스트가 자기 대신 알폰소와 결혼하게 될까 봐 경계했으며, 죽은 지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왕족 간 통혼의 예시로 종종 언급된다.[11] 알폰소 역시 사촌지간이라 근친혼 규제에 걸리긴 하겠지만 법황의 특별 허가가 있으면 결혼이 가능했을 텐데, 왜 갈리코가 적통 공주인 오귀스트 대신 방계인 라리에사를 국혼 상대로 내밀었는지 이상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12] 필리프가 제안한 알레망 법 대사면 자체는 통과되지만, 다행히 문서주의 강화법도 같이 통과된 덕에 쟝의 왕위계승 계획은 틀어지고 만다.

3.2. 후반부

유료분 스포일러 접기/펼치기
분량은 적지만 사후에도 갈리코 쪽 스토리에 상당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 생전에는 오빠의 정신적 지주 역할 및 내조를 제대로 했던 모양인지[13] 오귀스트가 죽지 않은 전생에는 필리프가 나라를 순조롭게 다스렸다고 한다. 그러나 오귀스트가 요절한 이번 생에서는 필리프 4세가 이미 죽은 여동생에게 끝까지 집착해[14] 무리수를 거듭하다 몰락에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갈리코 왕국 전체가 망조에 든다. 오죽하면 오귀스트 공주야말로 이사벨라에 버금가는 팜 파탈이라는 독자들의 평가가 나올 정도.

결국 필리프 4세가 트레베로와 에트루스칸 침략이 모두 실패하고 알폰소와의 1 대 1 대결에서도 대패하고 불구가 되어, 포로로 끌려가 교황청의 심문을 받으면서 오귀스트 역시 친오빠와의 근친상간부터 사생아 출산까지 모조리 폭로된다. 결혼도 안한 일국의 공주가 친오빠와 근친상간을 저질러 애부터 낳은 전대미문의 추문에 법황인 유스티아누스 8세를 비롯한 교황청 전체가 경악하는 건 물론, 필리프를 심문하던 이단심문관이 오귀스트를 가리켜 친형제를 유혹한 뱀이라고 모욕할 정도로 온갖 고문을 받은 필리프 4세 못지않게 오귀스트 역시 사후에도 수난을 면치 못한다.[15]그래봤자 다 자업자득이다 이와중에도 필리프는 오귀스트를 모욕하는 말에 발끈하여 이단심문관의 채찍질에 묵묵히 견디던 것도 집어던지고 "우리만이 깨끗하고 고결했고 네놈이야말로 더럽다. 그 더러운 입에 오귀스트의 이름을 올리지 말라"라고 반박해서 매를 더 번다.역시 근친 순정남

그나마 종교재판에 회부된 필리프 4세가 오귀스트를 형제와 놀아난 탕녀이자 근친상간을 저지른 죄인이 아닌 친오빠에게 강제로 범해진 피해자로 만들어, 어떻게든 사후의 명예나마 지켜주고 이를 통해 쟝의 안위도 지키고자 스스로 배교자이자 근친상간범이라는 걸 인정하여 파문 및 폐위가 확정되면서 처지가 나아진다. 하지만 오귀스트가 스스로의 의지로 필리프와 연인이 되고 사생아까지 낳았으며 오빠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 같은 형제인 루이 왕자까지 숙청하는데 적극 동조했다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필리프의 바람과는 달리 사후 명예가 회복되는 건 여의치 않아 보인다. 특히 조카이자 갈리코의 새 왕이 된 루이 8세가 즉위 후 필리프 4세는 성직자들과 귀족들에게 가혹했어도 평민들에게 지지를 받던 왕이라고 언급하면서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평민들은 만만한 오귀스트를 두고 왕을 홀린 요부라고 욕할 가능성이 높다.

살아생전 친오빠와 근친상간으로 낳은 사생아 쟝이 필리프 4세의 아들로 정식 인정받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하지만 이런 소원이 무색하게 필리프가 성황청으로 끌려간 뒤 쟝은 존재 자체가 죄악인 저주받은 자식으로 취급받게 된다. 그나마 필리프 4세와 유스티아누스 8세의 협의로 쟝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알려져 공식적으로 사망처리되고 존재 자체가 지워지면서 알폰소와 루이지 라지오네에게 숙청당할 이유가 사라져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나 직후 근친상간과 그간의 폭정행위로 인해 파문 및 폐위된 필리프 4세도 오귀스트는 옛적에 죽고 쟝의 안위도 보장받았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었는지 계단에 굴러 떨어져 자살하면서 남매이자 연인이었던 오귀스트와 필리프는 나란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사후에 아마 남매가 쌍으로 지옥불에서 불타고 있을 듯

4. 평가

오빠이자 연인인 필리프 4세와 똑같이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자기 인생을 스스로 말아먹다가 비참한 최후를 자초한 위인이다.

작중 묘사를 보아 필리프의 살벌한 집착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혹은 그 집착을 이용해서 권력을 얻으려고 억지로 필리프의 비위를 맞추고 육체 관계까지 가진 게 아니라 필리프가 자신에게 그런 것처럼 본인도 진심으로 큰오빠를 연인으로서 사랑하여 기어코 남매 간의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왜 샤를 7세[16]가 죽을 때까지 딸을 결혼시키지 않았는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중앙 대륙 여성의 혼인적령기는 10대 중후반~20대 초반으로 묘사되며, 특히 통치가문 출신의 왕족 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약혼하는 경우도 잦다고 나온다. 그런데도 오귀스트는 샤를 7세의 살아생전에 이미 나이가 어림잡아 10대 중후반이었고, 손꼽히는 강대국인 갈리코의 유일한 직계공주이며 미모도 뛰어났는데 결혼은 커녕 약혼 상대도 없었다니 확실히 이상하다.

또한 필리프 4세는 샤를 7세의 적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생 루이와 치열한 왕위쟁탈전을 벌인 것도 모자라 십자군 후원 약속으로 법황의 지지를 받아내 즉위했을 정도로 정통성이 불안했다는 암시가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오귀스트와 필리프가 아버지 생전부터 근친상간을 저지르다가 샤를 7세에게 발각되어 필리프는 적장자라는 프리미엄에도 간신히 왕위에 오를 정도로, 정통성이 깎여나갔고 오귀스트 역시 큰오빠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알려져서 평판이 떨어지고 왕실의 골칫거리로 전락하여 모든 혼담이 중단되는 불이익을 받은 게 아니냐는 것.

그리고 예상대로 샤를 7세의 살아생전부터 필리프 4세와 근친상간을 저질러왔고 이를 아버지에게 들키는 바람에[17] 필리프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샤를 7세와 루이 왕자까지 살해하고 필리프가 왕위를 차지하게 도왔으며 심지어 반란이 실패했을시 필리프와 함께 탑에 뛰어내리자고 약속까지 했다는 게 밝혀진다.

어쨌든 어린 나이에 팔려가다시피 레오 3세와 결혼해 불행하게 산 고모 마르그리트 왕비와 달리 중앙 대륙의 손꼽히는 강대국인 갈리코의 하나뿐인 적통 공주라는 엄청난 신분과 아름다운 외모에 갈리코 국왕인 오빠의 총애도 한몸에 받았다는 걸 생각하면, 다른 나라의 왕비가 되어 남편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확고한 지위에 올라 충분히 호사를 누릴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으니 오귀스트 역시 필리프 4세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개인적인 욕심과 무분별한 판단력 때문에 재앙으로 만들어버린 구제불능이었다.
[1] 다만 1122년 기준으로 18세인 라리에사가 언니라고 하고 큰 오빠 필리프가 20대 후반이었다는 점과 작은 오빠 루이 왕자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오귀스트는 1122년 기준으로 최소 19~23세 정도로 추정 가능하다.[2] 친오빠 필리프 4세에게서 얻은 자식으로, 오귀스트에게는 친자인 동시에 조카가 된다.[3] 작은 오빠 루이 왕자의 유복자이지만 프랑수아에 의해 '루이지 라지오네'라는 이름의 에트루스칸 소년으로 자랐다.[4] 외드 대공이 필리프의 형제로 남동생 루이 왕자와 여동생 오귀스트 공주만 언급한 것으로 보아 부왕 샤를 7세의 외동딸로 추정된다.[5] 정확하게는 외사촌 누나. 알폰소보다 1살 연상인 라리에사가 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6] 특히 웹툰판에서 처음 오귀스트가 등장했을 때 독자들은 원작 삽화보다 더 예쁘다고 감탄했다.[7] 이 장면이 왕의 누이인 공주이자 왕의 정부인 오귀스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필리프 4세가 사람 좋게 웃고 있는 동안 오귀스트가 나서서 성전의 목적을 비웃고 십자군의 후원금을 후려쳤다고. 실제로 로얄 미스트리스의 주 역할은 국왕에게 갈 비난을 대신 받는 것이며, 율덴부르크 대공은 여동생이 활개치도록 묵인한 필리프 4세보다 오귀스트 공주를 더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보인다.[8] 갈리코의 모델이 된 프랑스 왕국살리카 법 때문에 여성이 왕위를 승계할 수 없었다.[9] 사생아의 작위 계승을 금지하는 법안.[10] 그레도 왕국 선왕의 딸로 지참금을 많이 가지고 왔는데, 자녀가 있는 과부에다 필리프보다 연상이었다.[11] 현 시점의 중앙대륙은 알폰소와 결혼할 수 있는 신분, 즉 통치가문 출신 미혼 여성이 현저히 적은 상황이다. 레오 3세가 잠시 염두에 둔 율덴부르크 대공녀도 가난한 북쪽 소국 군주의 딸인데다 3살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통치가문 출신 과부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수가 늘어난다고.[12] 이유는 당연히 이미 임자가 있었기 때문(...). 작중 묘사를 보면 적어도 갈리코 내 귀족 및 성직자들은 필리프 4세와 오귀스트의 근친상간 관계를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브리앙 왕가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타국의 왕족과 혼인시키기에도 껄끄러운 실정인데 브리앙 왕가의 막장 실태를 잘 아는 갈리코의 귀족들에게 있어 오귀스트는 그야말로 결코 혼인할 수 없는 블랙리스트 1순위였을 것이다. 또한 필리프 입장에서도 감정 문제 이전에 자신의 강력한 지지자인데다 왕위계승권까지 가진 여동생을 외국으로 보내는 것보단 국내에서 본인의 최측근으로 데리고 있는 편이 유리했을 것이다.[13] 실제로 율덴부르크 대공이 알폰소를 탈출시킨 것을 알고 노발대발하던 필리프를 진정시킨 것이 오귀스트였으며, 갈리코의 에트루스칸 침공 당시에도 그나마 유일하게 오빠의 명령에 이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인다.[14] 오귀스트에 대한 필리프의 집착은 실로 엄청난 수준으로 1128년 기준으로 죽은 지 이미 4년이 다 되어가는 누이에게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여동생이 죽자 그녀의 오래된 드레스를 입힌 베개를 끌어안고 사는 것도 모자라 주변에 그 어떤 여자도 가까이 하지 않고 오귀스트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이유로 그녀와 자신의 사생아인 쟝을 후계자로 만들려 기를 쓰는 중. 심지어 '우리는 처음부터 함께였으니 죽어서 윤회하지 못하고 끝없이 지옥 불에 타더라도 오귀스트와 함께라면 나쁘지 않다'고 독백하거나, 성황청으로 끌려가 고문당하는 와중에도 오귀스트를 생각하며 굴복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오로지 죽은 오귀스트의 명예와 쟝의 목숨만을 지키기 위해 종교재판에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것도 관두고 스스로 배교자이자 근친상간범임을 인정하면서 파문 및 폐위를 감수하는 등, 얀데레 기질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순애는 좋은데 왜 하필 친여동생이 상대냐는 독자들의 아우성은 덤[15] 필리프 4세의 종교재판에선 아르칸델레 추기경이 오귀스트를 가리켜 필리프가 흘레붙은 암캐라고 할 정도. 면전에서 그리도 사랑하던 오귀스트가 모욕당하는 형국에 천하의 필리프도 분노로 눈물을 흘린다.[16] 필리프 4세, 루이 왕자, 오귀스트 공주 남매의 아버지이자 갈리코의 선왕.[17] 비단 샤를 7세뿐만 아니라 루이 왕자도 필리프와 오귀스트의 근친상간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