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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21:34:42

OR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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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엡손의 시계 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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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ORIENT WATCH CO., LTD.
オリエント時計株式会社
<colcolor=#191919> 파일:orient-logo.png
설립일 1950년 7월 13일 (다마계기)
창립자 요시다 쇼고로
모회사 세이코 엡손[1]
본사 소재지
[[일본|]][[틀:국기|]][[틀:국기|]] 도쿄도 신주쿠구 신주쿠
업종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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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평가4. 라인업
4.1. 과거 브랜드
5. 대한민국 오리엔트와의 관계6. 한국 오리엔트시계 라인업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시계 브랜드.

2. 역사

파일:orientoriginjp.jpg
[2]
1901년 요시다 쇼고로(吉田庄五郎)라는 이름의 시계 장인이 도쿄 우에노에서 창업한 '요시다 시계점'(吉田時計店)을 모태로 하고 있다. 이 시계점은 1913년 무렵부터 회중시계 금측의 제조를 시작하고 1920년에는 가마타 다케시로(蒲田竹次郎)의 '가마다 시계 계측 제작소'(蒲田時計測製作所)와 협력하여 '토요 시계 제조소'(東洋時計製造所)를 스가모에 설립하였다. 이어서 1934년에는 손목시계 업계 진출을 기획하고 1936년 4층 건물의 '히노 공장'(日野工場)을 완성했는데, 이곳에서 제조된 손목시계는 Locle, Aikoku 등이 있다.

파일:orientoriginjp2.jpg
[3]
2차대전이 발발하며 항공 병기를 제조하는 군수 물자 생산 기업으로 전환됐고 종전 이후 1945년에 '토요 시계 제조 주식회사'(東洋時計製造株式会社)를 개업했다. 하지만 전쟁의 영향으로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공장은 닫히고 말았다.

파일:orientoriginjp3.jpg
[4]
해산한 토요 시계 제조 주식회사는 사이타마현에 탁상시계 공장이 있어서 이것을 '아게오 공장'(上尾工場), 미나미타마군의 손목시계 공장을 '히노 공장'(日野工場)이라고 불렀고 '아게오 공장'을 주체로 탁상시계 전문 '신 토요 시계 주식회사'(新東洋時計株式会社)가 세워졌고 '히노 공장'을 모체로 손목시계 전문 '오리엔트 시계 주식회사'(オリエント時計株式会社)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사명이 '다마계기'(多摩計器)였으나 다음 해에 1951년 '오리엔트 시계'(オリエント時計)로 변경했다. 2차대전 시기까지 존속했던 토요 시계의 이름과 시계 생산라인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아직은 기계식 시계가 전성기였던 1970년대, 오리엔트는 독특한 디자인의 시계를 내놓으며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쿼츠 시계의 시대가 왔고 쿼츠 무브먼트를 활용한 알람시계와 카시오의 F 시리즈를 닮은 저가형 시계를 발매하며 전성기를 맞으면서 '동경 시계 주식회사'의 대주주가 됐지만 1984년에 청산한다. 그 밖에도 '아키타 오리엔트 정밀 주식회사'(秋田オリエント精密株式会社)[5]가 무브먼트를 제작하고 '우고 시계 정밀 주식회사'(羽後時計精密株式会社現)[6]는 밴드, 케이스 등을 제조했었다.

'오리엔트 스타'를 재출시하기 전인 1990년 기계식 시계는 개발을 멈췄지만 100%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활용한 것이 눈길을 끌어 매출은 훨씬 높아졌는데 이때가 카시오-세이코-시티즌-오리엔트 체제로 명성을 떨친 시절이다. 그러나 채무를 갚지 못해 2003년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를 겪는 일도 있었다. [7]

2003년에 오리엔트 기술 센터(OTC)를 설립하여 고급 시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 해에 '로얄 오리엔트'[8]를 부활시켰고 프린터 사업에 본격적으로 힘을 썼는데 당시에 매출의 과반 이상을 벌어오기도 한 효자 상품이다.

결국 2017년 세이코 엡손이 오리엔트 시계의 판매[9]를 포함한 나머지 사업부[10]를 통합하면서 법인으로서의 '오리엔트 시계 주식회사'는 창립 6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오리엔트의 정체성은 이어져오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만큼 우수한 모기업의 기술[11]을 수혈받아 무브먼트의 성능이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3. 평가

지금은 SEIKO, CITIZEN에 비해 인지도가 밀리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이 준수해서 특히 인기가 많은 북미를 비롯한 60여 개국에서 판매 중이다. 일단은 기본적인 기술력이 있어서 모든 시계에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쓰기 때문이다. 보급형 자사 무브먼트인 F6922조차 일 오차 -15 ~ +25 정도에, 수동 감기와 해킹[12]이 지원된다. 따로 저렴한 쿼츠 시계도 판매하는데 가성비로 이름난 기계식 시계 라인업 때문에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4. 라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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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과거 브랜드

5. 대한민국 오리엔트와의 관계

파일:orient-korea2.jpg
1989년 CIP 제정 전까지 쓰던 한국오리엔트 시계의 로고. 오리엔트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브랜드 수가 늘어나며 현재는 이 로고를 사용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서가 분리되어야 맞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근 30년) 무관하다.

시계 관련 일을 하던 강영진[13]이 1959년부터 영명산업을 창업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영명산업은 후에 '오리엔트시계'로 사명을 바꾸었다. 사명은 오리엔트시계 혹은 동방시계를 병행하여 사용하였다. 한국의 오리엔트시계는 일본의 오리엔트 시계를 단순조립하는 하청을 하다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의 오리엔트로부터 시계 부품을 받아 조립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2년에는 대한민국에서 만든 오리엔트 시계를 일본에 수출하려 했으나, 일본 수입업자한테 외장품의 끝부분이 날카롭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아 역수출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 이후 기술 개발, 제품 고급화에 나섰다. 당시 일본에서는 무브먼트 같은 내장재를, 대한민국 내에서는 외장재를 제작하여 시계를 조립했다. 이렇게 여러 사연 끝에 만들어진 한국 오리엔트 시계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국산 시계이자, 대한민국 시계 산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 후로도 한국오리엔트는 일본 오리엔트로부터 기술 제휴를 받고 일본 오리엔트의 대한민국 대리점을 맡으며 급성장하였다.

1980년대에는 기술연구소까지 세워 그동안 일본에서 수입해 오던 무브먼트 국산화를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 및 1988 서울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도 지정되었으며 1989년에는 일본 오리엔트와는 다른 CI로 변경하여 서서히 독자 노선을 걷게 된다. 당시 '샤갈'이라는 고급 브랜드를 내세우며 '블랙 센스', '매직액센트' 등 제품을 출시했었으며, 이후 1995년부터는 오리엔트 시계 라인업 내의 최고봉 브랜드(샤갈 오를로즈)로 스위스 현지 법인을 출범, 국내 브랜드 최초로 '스위스 메이드' 시계(ETA제 쿼츠, 오토매틱 무브먼트 사용)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일본 오리엔트와의 제휴 관계는 1997년 외환 위기 이전까지 계속되었으나, 이 시기에 한국 오리엔트시계가 무너졌고 일본 오리엔트 또한 사정이 나빠지자 제휴가 중지되었다.

1970년 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 일반 서민 입장에서는 소득에 비해 스위스 명품시계는 무척 비쌌고[14] 유통 경로도 한정적이었다. 그에 반해 오리엔트시계는 고가 라인이라 하더라도 스위스나 일본의 시계만큼 고가는 아니었고[15], 가격대별로 다양한 라인이 구축됨은 물론 전국 주요 거점에 유통망이 있었다. 거기에 국산 애호 풍조 등 요인이 더해져 다양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예물시계로도 가장 각광받을 정도였다.[16] 프라임타임에 TV광고를 진행하던 시기도 이때였는데, 광고는 당시 기준으로 세련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가 오리엔트시계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로 대한민국의 오리엔트시계는 별도의 길을 걷는 중. 이미 1990년대에 향후 결별을 대비하여 갤럭시라는 별도의 시계 브랜드를 런칭했다. 로고 또한 그때에 신규로 만든 것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 오리엔트시계는 주식회사 바이오제노믹스와 합병하였다. 이는 바이오제노믹스의 우회상장이 목적이었다. 2023년 현재, 오리엔트시계는 오리엔트그룹 안의 시계 사업부로 남아 있다. 오리엔트 그룹[17] 오리엔트 시계[18]

오리엔트 브랜드를 쓰는 탁상시계와 벽시계는 유진정밀#이라는 중소기업이 생산 중이다. 이 유진정밀은 다름 아닌 오리엔트시계의 설립자 강영진의 아들인 강춘근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이다. 그런 관련성이 있지만, 유진정밀은 오리엔트시계와는 전혀 별개의 회사이다. 오리엔트시계의 벽/탁상시계 브랜드는 갤럭시이다. 유진정밀의 벽시계는 전파 시계도 나오고 있다.

오리엔트시계는 사업의 주력 브랜드로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2018년 삼성전자와 법적인 분쟁에 얽혔다. 그동안은 삼성전자가 자사의 스마트폰 제품에는 삼성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고, 웨어러블 제품에는 원래는 삼성 기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였으나, 자사 갤럭시 스마트폰 브랜드와의 통일성과 연계성을 강조하고자 웨어러블 제품에도 삼성 기어 대신 '갤럭시'로 브랜드를 통일하면서 상표권에 충돌이 생겼다. 이에 오리엔트 측에서는 삼성전자에 상표권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기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오리엔트는 시계 부문에서 갤럭시를 상표로 등록해 사용하던 브랜드이고, 현재도 시계 주력 브랜드로 사용 중이라 소송은 오리엔트 측에 매우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하지만 누가 삼성공화국 아니랄까 봐 2019년 4월 15일, 삼성전자가 불사용 취소심판을 제기하자# 특허청은 상표등록을 취소했다. 결국 양자간 합의로 삼성전자가 오리엔트바이오가 가지고 있던 '갤럭시' 상표권을 모두 양수하였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수 브랜드 오리엔트 갤럭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현재 오리엔트시계에서 갤럭시 시계가 계속 출시된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삼성전자와의 합의안 내용 중에 오리엔트시계가 현재 사업을 계속 유지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짐작해봄직하다. 오리엔트시계 관계자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오리엔트그룹 계열사가 삼성한테 납품하는 게 얼만데 삼성한테 전력으로 대들 수 있었겠는가. 다만 경영진이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사의 상징적인 자산이 자본논리로 빼앗긴 것에 대해 깊은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라고 한다.

1970년대부터 1997년까지 MBC FM의 시보 광고를 오랫동안 맡은 바 있고[19],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뉴스데스크의 시보 광고에도 참여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2020년대의 캐롯손해보험처럼 고정 스폰서였고 1997년까지 스폰서로 참여했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위치한 오리엔트바이오가 바로 오리엔트시계였다. 공장 건물이 여전히 남아있다.

6. 한국 오리엔트시계 라인업

1988년 캐주얼 고급 브랜드로 출범, 앞서 설명했듯이 1995년부터 '샤갈 오를로즈' 라는 이름으로 스위스 현지법인을 설립해 ETA제 오토매틱,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한 '스위스 메이드' 시계를 제조. 한국 오리엔트 시계의 최상단을 장식하였다.[16]

현재에도 샤갈이라는 이름이 이어지지만 스위스 현지생산 시계는 한 종류뿐이다.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상당하다. 이 외에도 국내에서 생산하는 오토매틱 모델들도 있는데 미요타제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사용한다.
1980년대생 이상 세대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오리엔트시계의 예물시계 라인업. 샤갈 브랜드로 스위스 현지법인이 세워지기 전까지 한국 오리엔트시계의 최고봉이었던 라인업이며, 서브 브랜드로는 에스빠스(espace), 파라오(PARAO), 미톨로지(MYHOLOGY), 크리비(Crib) 등이 있었다. 예물시계 라인업이었다 보니, 스위스 쿼츠 무브먼트에 주로 텅스텐, 세라믹, 다이아몬드, 금 등의 고급 재질을 사용하였다. 현재에도 금,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시계를 만들고는 있으나 옛날 디자인을 그대로 채용해 올드한 느낌이 많이 난다. 현재는 오토매틱 모델과 크로노그래프 모델도 판매한다.
한국 오리엔트 시계의 보급형 라인업. 가장 기본적인 라인업으로서 주로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한다. 샤갈, 갤럭시 브랜드의 출범 이전에는 오리엔트 이름으로 저가와 고가가 분류되었으나, 현재는 한국 오리엔트 시계의 가장 기본형 모델로 분류되어 판매한다. 무브먼트는 미요타제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하는데, 아쉽게도 일부 모델 생산[17]은 중국에서 하고 있다.

[1] 1997년 제3자 할당 증자, 2001년 지주 비율 52%, 2009년 전액 출자, 2017년 4월 세이코 엡손 코퍼레이션 통합.[2] 당시의 요시다 시계점.[3] 해당 전시 전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쟁이다! 증산이다!" / 여성 작업자 모집 배치 공장명 도쿄부 남다마군 히노초 주식회사 요시다 시계 히노 공장. 중앙선 히노 역 하차 도보 십오분, 다마강변의 경치 좋은 농촌 지역에 위치하며 근대적 시설 보유. ◎담당 업무: 무기 부품 및 계기류이지만 매우 쉽고 또한 악취나 먼지 발산이 없어 건강에 해를 끼치는 걱정은 전혀 없습니다. ◎자격: 만 13세 이상이며 지조 견실하고 건강한 분.>[4] 전후 홍콩, 남중국에 시계를 수출.[5] 現 아키타 엡손 코퍼레이션. 1986년 설립, 1989-1996 잉크젯 프린터 생산 및 조립 개시.[6] 現 유티에스(株式会社ユーティーエス).[7] 증권거래소 시장 제2부에서 상장 폐지 일본 증권업 협회가 운영하는 그린 시트 종목(피닉스 구분)에 주식을 등록.[8] 1958년 출시한 럭셔리 라인. COSC 인증 Cal. 88700 무브먼트를 탑재해서 재출시했으나 2016년 생산 중단.[9] 엡손 세일즈 재팬 코퍼레이션.[10] 아키타 엡손 코퍼레이션.[11] 그랜드 세이코에 적용된 MEMS(마이크로 전기기계 시스템) 등의 반도체 기술.[12] 용두를 뽑았을 때 초침이 멈추는 기능[13] 초대 (한국)오리엔트시계 회장[14] 지금도 역시 무척 비싸지만 국민의 구매력은 그때에 비할 바가 아니다.[15] 지금이랑 비교도 안 될 만큼 국산 시계의 가격이 비쌌던 시기였다.[16] 당시는 시계로 예물을 함이 거의 당연시되었고, 국산 시계로 예물시계를 하기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현재, 예물 시계는 보통 '롤오까'를 선호하고 스마트워치로 퉁치거나 예물시계를 아예 생략해버리기도 하니 이 역시 시대상의 변화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17] 1990년대에는 시계에도 I자에 타원이 그려진 부분을 볼 수 있었다.[18] 제품에는 갤럭시 브랜드만을 사용하지만 과거 한국 오리엔트시계의 후신임을 강조하기 위해 상단 로고만 과거의 것을 사용한다.[19] 1980년부터 1988년 초반까지 '오리엔트 아나로그~' CM송 시보를 오랫동안 사용하다 샤갈 시보로 교체한 후 여러가지 버전을 선보였다.[16] 이때 만들어진 모델이 당시 태그호이어의 '스포츠 엘레강스' 모델과 상당히 흡사한 디자인이었다. 당시 판매가는 80~120만 원대.[17] 갤럭시 라인업 모델도 일부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