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오쇼 라즈니쉬 ओशो रजनीश | Osho Rajnee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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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라즈니쉬 찬드라 모한 자인 रजनीश चन्द्र मोहन जैन Rajneesh Chandra Mohan Jain |
출생 | 1931년 12월 11일 |
인도 제국 가다와라 | |
사망 | 1990년 1월 19일 (향년 58세) |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푸네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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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힛카리니 대학교 (중퇴?, 1951~?)[A] DN 제인 대학교 (철학 / 1955년 학사)[A] 사가르 대학교 (철학 / 1957년 석사)[A] |
종교 | 무신론 |
링크 | 공식 사이트 |
1. 개요
인도의 구루. 1960년대 이후 아차리아 라즈니쉬(Acharya Rajneesh)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자신을 브하그완 슈리 라즈니쉬(Bhagwan Shree Rajneesh)라 불렀고, 죽기 불과 1년 전인 1989년에 '오쇼'(Osho)[4]라는 이름을 새로 택하여 그 뒤로는 주로 '오쇼 라즈니쉬''라고 불린다.2. 생애
1. 초기 생애와 학창시절(1931–1953)1. 출생과 유년기
1931년 12월 11일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의 작은 마을 쿠츠와다(Kuchwada)에서 태어남.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찬드라 모한 자인(Chandra Mohan Jain).
자이나교 신앙을 가진 외조부모 집에서 성장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됨.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과 반항적인 태도가 강했고, 전통적인 관습에 의문을 자주 제기하는 편이었음.
2. 학업과 사고의 형성
열렬한 독서가로, 고전문학, 종교,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다양한 사상을 접하면서 스스로의 관점을 형성하기 시작함.
1951년쯤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의 철학 서적들을 광범위하게 읽었고, 독특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게 됨.
3. 대학 시절
1953년 ~ 1955년 사이, 사가르 대학교(Sagar University)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 이후 대학원 과정까지 마침.
뛰어난 토론 실력과 논리적인 사고로 철학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정규 교육 제도나 전통 종교 권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유지함.
2. 아차리야 라즈니쉬 시기와 초기 강연 활동 (1953–1966)
1. ‘아차리야(Ācārya)’ 칭호 사용
대학교에서 철학을 마친 후, 수년간 철학 강사로 재직하면서도 전국을 돌며 다양한 종교·영적·철학 강연을 시작함.
이 시기부터 '아차리야 라즈니쉬(Acharya Rajneesh)’로 불리기 시작하는데, ‘아차리야’란 산스크리트어로 ‘스승’을 의미함.
2. 사상과 가르침의 형성
기존 종교·사회 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개인의 자유, 의식적인 삶, ‘깨달음’(Enlightenment)에 대한 가르침을 펼침.
재산이나 권위·제도에 얽매이지 말고, 자아 실현을 통한 진정한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
이 시기에 인도 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강연에서도 점차 열정적이고 도발적인 화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끔.
3. 초기 논란
인도의 전통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기성체제를 흔드는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함.
그러나 동시에 젊은 지식인 계층과 자유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으며 추종자가 늘어나기 시작함.
3. 푸나(Pune) 1차 아쉬람 시기 (1970–1981)
1. 푸나 아쉬람 설립(1974년)
1966년 무렵부터 공식적으로 철학 교수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인 영적 지도자 활동에 전념함.
1970년대 초,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주의 푸나(Pune, 현 푸네) 지역에 아쉬람(Ashram, 공동체)을 설립.
이곳에서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다이내믹 명상(Dynamic Meditation)’ 등)을 운영하고, 서구권에서 온 학생·구도자들에게도 문호를 열기 시작함.
2. 사상적 확장과 제자들의 증가
영적 추구, 개인 자유, 성(性), 사랑, 의식 확장, 적극적 명상 등의 가르침을 통합적으로 제시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음.
사랑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언급, 기존의 종교적 금기 깨기 등이 큰 화제가 되어 서양인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추종자가 몰려듦.
점차 ‘Bhagwan Shree Rajneesh(바그완 Sri 라즈니쉬)’라는 존칭으로도 불리게 됨.
3. 철학과 명상 기법
전통적 명상에서 벗어나, 춤·호흡·소리·카타르시스 등을 활용한 역동적이고 몸의 움직임이 강조된 명상 기법을 개발.
“의식적이고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하는 동시에, 억눌려 있던 감정을 표출하고 해소하는 과정을 통해 내적 자유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함.
인도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많은 이들이 푸나 아슈람에 찾아와 명상 캠프에 참여함.
4. 이 시기의 문제와 논란
성 개방적인 태도, 기존 종교 제도의 권위 부정, 자본주의·소비주의를 동시에 인정하는 모습(고급 자동차·시계 등을 즐김) 등이 논란을 일으킴.
인도 정부 당국 및 일부 종교 단체와 마찰을 빚게 되며, 조세 문제 등 행정적 충돌도 발생하기 시작.
4. 미국 오레건 ‘라즈니쉬푸람(Rajneeshpuram)’ 시기 (1981–1985)
1. 미국으로의 이주
1981년 건강 문제(디스크·천식 등)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감.
미국 오레건(Oregon) 주의 와스코(Wasco) 카운티에 큰 땅(약 260km²)을 매입하여, ‘라즈니쉬푸람(Rajneeshpuram)’이라는 커뮤니티(코뮌)를 건설하기 시작함.
2. 대규모 공동체 건설
수천 명의 제자 및 방문객들이 함께 생활하며 도시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대규모 공동체로 발전함.
농장·학교·경찰 조직 등 자체 행정 시스템을 갖춘 독립적인 자급자족 사회로 운영되어 지역 사회와 마찰을 빚게 됨.
3. 주요 활동과 갈등
오쇼 본인은 한동안 ‘침묵’(Silence)을 선언하고 공개 강연이나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며, 그의 측근인 마 안난드 시라(‘마 싱게티 쉬일라’ 등으로 불림) 등이 공동체 운영을 주도함.
현지 주민 및 정부 당국과의 갈등: 토지 이용, 선거, 환경 파괴, 지역 정치 개입 문제로 오레건 주민들과 잦은 충돌 발생.
결국 이 과정에서 살모넬라균을 이용한 식중독 사건(‘바이오테러’ 의혹), 지역 정치인 및 주민에 대한 감시, 도청, 살인 모의 등으로 큰 사회적 파문이 일어남.
4. 이 시기의 몰락
1985년, 시라 등 핵심 측근들의 비리와 폭력, 음모 사건이 드러나면서 FBI 등 미국 정부가 수사에 착수.
결국 공동체가 급격히 붕괴되고, 오쇼 본인도 미국 이민법 위반 등을 이유로 기소되어 벌금형을 받은 뒤, 미국에서 추방당함.
5. 미국 추방 이후 세계 순회(1985–1986)와 각국 입국 거부
1. 강제 추방 및 세계 순회
미국에서 추방된 뒤, 오쇼는 여러 나라를 돌며 강연과 명상 워크숍을 시도했으나, 그가 머물려는 나라들 대부분이 입국을 거부하거나 추방 조치를 내림.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스페인, 독일, 그리스, 우루과이 등 다수 국가가 그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며, 공항에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됨.
2. 국제적 논란
이 시기의 오쇼는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Welcome Nowhere)’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국제 사회에서 논란이 심했음.
미국 법무부 등에서 오쇼와 그의 공동체 활동을 다양한 범죄 혐의와 연루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여전히 ‘영적 스승’으로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존재했으며, 오쇼가 방문할 때마다 명상을 원하는 제자들이 모이곤 했음.
6. 푸나 2차 아쉬람 시기와 최후 (1987–1990)
1. 인도로 귀국
여러 나라에서 입국 거부를 당한 끝에 결국 인도로 돌아와 푸나의 옛 아쉬람으로 복귀함(이제는 ‘Osho International Meditation Resort’로 발전).
이때부터 ‘오쇼(Osho)’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종전의 ‘바그완’ 혹은 ‘라즈니쉬’ 대신 새 명칭을 공식화함.
2. 건강 악화와 최후의 가르침
미국에서 추방된 후의 투옥 및 이동 생활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고, 건강이 빠르게 나빠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나에서 매일 강연이나 ‘다르샨(darshan, 가르침 모임)’을 이어가면서, 명상 기법과 의식 진화에 대한 최종적 가르침을 전함.
그 시기에 “노-마인드(No-Mind)”, “자유롭고 의식적인 삶”, “집단 에너지 명상” 등을 강조하며 활동함.
3. 사망
1990년 1월 19일, 푸나 아쉬람에서 향년 58세의 나이로 사망.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심장마비로 발표되었지만, 미국 수감 이후의 독극물 중독 가능성 등 다양한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함.
그의 몸은 푸나 아쉬람에서 화장되었으며, 현재 그 장소는 오쇼 제자들과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상 센터로 운영 중.
3. 사상
지식 있는 자(a man of knowledge)가 아니라, 아는 자(a man of knowing)가 되도록 하라.
그는 사회주의 등 각종 이념과 사상, 마하트마 간디나 기성 종교들에 반대하고, 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지지했는데 이로 인해 인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또 모든 종교가 허용되고 개인들이 중시되는 코뮨(commune, 자치 공동체)이라는 개념을 주장하였다. 비판으로는 과학자들에게는 무덤 냄새가 나고 철학자들은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다고 말한다.자이나교 신자로 태어났지만 주로 힌두교 비이원론에 입각한 가르침을 펼쳤고, 종교를 가리지 않고 여러 경전과 저술들에 대해 강의했다. 다만 그는 몇몇 종교들의 철학적인 면에는 많이 기댔지만, 신이라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거짓말로서 질서를 세우고 현실적인 삶의 부담을 정신적으로 덜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기본적으로 없는 것이라면서 공개적으로 창조론을 논파, 부정하고, '어떠한 믿음체계를 설파하려는 자들은 당신의 적이다'라는 주제의 강의를 남기는 등 신의 유무에 관해서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의 태도를 고수했다.
히피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추어 성 문화(그룹섹스를 포함한 자유로운 섹스)를 긍정하여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성에 굉장히 보수적인 인도에서 비난을 받았고, 그 때문에 제자의 절대다수는 서양인이었다. 현대인에게는 동적인 명상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여 춤과 감정의 발산을 특징으로 하는 명상법을 개발했는데, 그 중 '다이나믹 명상'이 대표적이다.[5]링크
4. 기타
미국의 다큐시리즈 Wild Wild Country[6]에서 오리건 코뮨 시절의 그의 행적과 코뮨의 역사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나름 지식인들이 모여 이상적인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나 했지만, 이들을 흔한 사이비 종교 정도로 생각한 인근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 시작하면서 점차 삐걱대기 시작해 결국에는 해체되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단순히 그들을 컬트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고, 비교적 공평히 양측의 의견을 다뤄주는 편이다. 이들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비록 갈 데까지 간 라즈니쉬 측이 독극물 살포, 암살 미수 등 몹쓸 짓을 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적어도 초창기에는) 평화롭게 살던 그들을 사실상 먼저 도발해 흡사 반국가단체 마냥 간주해 때려잡은 미국 정부와 주민들도 정당하진 않다고 주장하고,[7] 비판하는 측에서는 통속적 사회 규범을 깡그리 무시하며 행동해 불쾌감을 주었고, 어쨌거나 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니 해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8] 어느 쪽이 옳다고 섣불리 말하기 힘들지만, 종교의 자유, 그리고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니 곱씹어볼 만한 문제.
국내에는 무용가 홍신자가 그의 제자로 입문하고 그의 강의집 두 권을 번역해 내놓으면서 처음 알려졌다. 한국에서 1990년 초반 장원출판사에서 내놓은 그의 설화집 '배꼽'이 1백만 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출판시장의 스테디상품이 되어, 한국이 라즈니쉬의 책이 많이 번역된 나라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2010년대에는 많은 책이 절판 상태에 놓였다. 홍신자를 뒤이어 많은 한국인들이 라즈니쉬의 제자로 입문했는데, 작가 류시화, 개그맨 장두석 등도 있었다. 도사 컨셉의 개그를 선보이기도 했던 장두석은 후에 라즈니쉬 관련 출판사와 명상센터를 운영하기도 했다.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고 사후 인기가 많이 쇠락해, 라즈니쉬의 책은 국내 출판시장은 물론 외국의 뉴에이지 시장에서도 예전과 같은 인기품목은 아니다. 한국에서 그의 제자들이 열었던 명상센터들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인도의 라즈니쉬 아쉬람은 명상 센터라기보다 휴양 리조트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운영되고 있다. (아쉬람은 '살아있는 스승이 있는 공동체'라는 의미이므로 오쇼 사후에 아쉬람을 리조트로 명칭을 바꾸라는 유언이 있었다) 참고로 라즈니쉬는 에이즈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80년대 이전부터 일찍 경각심을 가져 아쉬람에 입장하려면 에이즈 검사를 필수로 받아야했는데 이는 현재도 그렇다.
5. 관련 인물
6. 같이보기
7. 외부 링크
[A] Anil Kumar Mysore Nagaraj, "Osho - Insights on sex", ncbi.nlm.nih.gov, 2013.1.[A] [A] [4] 승려에 대한 호칭인 '화상(和尙)'의 일본어 발음이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한다면 큰스님이라는 호칭을 자기 이름으로 삼은 셈이다.[5] 10분간 호흡을 깊고 빠르게 한 후, 10분간 하복부를 조이면서 '후-' 소리를 반복하며 서서 뛰듯이 점프하여 발 뒤꿈치를 자극하는 식으로 명상한다. 오쇼의 주장으로는 이 과정에서 성에너지의 중추가 각성되며, 억압되고 신체화된 마음의 한과 욕구, 부정적인 감정 등이 풀어진다고 한다.[6] 넷플릭스 판 한국어 제목은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7] 그들 스스로도 자기들이 흔한 컬트 집단과는 결이 다른 집단임을 누누이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다르기도 했고.[8] 작중 등장하는 미국 검사는 그들을 악마라고 딱 잘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