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1-17 15:10:34

오학선

<colbgcolor=#0047a0> 이명 이봉진(李鳳震)
출생 1925년 7월 20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옥포면(玉浦面) 강림리(江林里) 559
사망 2010년 3월 6일(향년 84세)
독립운동 한국광복군 제 3징모분처 대원(韓國光復軍 第三徵募分處將)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3. 독립운동4. 광복 이후5. 참고문헌

[clearfix]

1. 개요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상해에 있으면서 일본군 기밀 유출 등 비밀공작을 하다가 탈출하여,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에 입대, 중국 중앙군에 파견되어 대 일본군 공작 활동

2. 생애

1925년 7월 20일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옥포면(玉浦面) 강림리(江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봉진(李鳳震)을 사용하였다.

3. 독립운동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던 중 일본군 기밀 유출 등 비밀 공작을 벌이다가 탈출하였고,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징모 제3분처에 입대하여 중국 중앙군(中央軍)에 파견되어 대 일본군 공작 등에서 활약하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1944년 6월 중국 상하이(上海)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해군육전대(日本海軍陸戰隊) 사령부에 배속되어 근무하던 중에,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징모 3분처의 대원이자 지하공작원인 김만득(金萬得)과 비밀리에 연락하여 일본군의 기밀과 정보를 확보하였다. 이후 비밀 공작이 탄로 나자 탈출한다.

1944년 7월 김문호(金文鎬)가 대장으로 있던 한국광복군 징모 제 3분처에 입대한 이후 중화민국 중앙군(中央軍)에 파견되어 대 일본군 공작에서 활약하였다.

진주만 공습의 보복으로 1942년 4월 18일 둘리틀 특공대 미국의 폭격기가 불시착하여 미군 조종사들이 일본군의 포로가 된다. 1944년 11월 김문호, 정화암(鄭華巖), 중국 중앙군과 함께 미군 조종사 구출 작전에 참여하여 지리 안내 업무를 담당하여 작전에 기여하였다.

4. 광복 이후

1945년 8월 15일 중국에서 광복을 맞이하였고, 1946년 5월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5. 참고문헌

오학선의 공적정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6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