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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02:58:51

원담(삼국전투기)

1. 개요2. 설명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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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 등장한 원담을 서술하는 문서.

2. 설명

원소가 가르마였다가 데긴으로 역변하면서 데긴의 아들인 기렌 자비로 나온다. 작가 소개에서는 원소에 못지않은 뛰어난 재능을 갖췄으나 원소만큼의 인망은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패기 넘치는 원상과 달리 신중하다는 표현도 있고, 간간히 등장해서 야심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묘사를 봤을 때 유능하지만 냉정하고 음험한 야심가 이미지를 컨셉으로 잡은 듯 하다. 근데 아무리 봐도 연의는 물론이며 사서상의 이미지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카리스마있는 악역인 기렌에 대한 모독이라는 말이 많았다.

3. 작중 행적

장사 전투 (3)편에서 타이틀 컷을 차지하는 것으로 선행 등장한다.

우이 전투 편에서는 원소의 명으로 청주로 가서 공융과 전해를 전부 간단하게 제압하고 청주를 차지한 것으로 묘사된다.

중간정리 편에서는 오랜만에 등장. 원소의 뒤를 이을 야망에 휩싸여 의욕을 불태우며 연설문을 작성 중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창정 전투 편에서는 원소에 의해 창정으로 직접 출진하는 원상의 서포트를 할 것을 명받는다. 그러나 원담은 그런 원소의 결정에 내심 반발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원상을 도와 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원상이 조조에게 발린 뒤 움직여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다.

그러나 원상이 정욱의 십면매복에 제대로 걸려서 지나치게 빠르게 창정의 모든 거점을 날려먹자,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는 예상을 못 했는지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양 전투 편에서는 빠르게 원소의 빈 자리를 차지한 원상 때문에 업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밀려나 여양에 자리를 잡았다고 묘사된다. 이후 여양으로 조조군이 쳐들어오자 봉기를 시켜[1] 원상에게 지원 요청을 보냈으나 거절당하자, 홧김에 일말에 주저 없이 봉기를 죽여버렸다. 이후 원상이 직접 나섰음에도 조조에게 처참하게 털리자 파운딩 당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며 박수를 보내면서 조롱하기도 했다.

업 전투 편에서는 원상과 함께 조조에게 패배하고 업으로 후퇴한 후, 잠시 원상과 손을 잡고 조조에게 대항해 조조를 주춤하게 만들었지만, 조조가 군을 물리자마자 다시 형제끼리 싸우기 시작했다고 묘사된다. 그리고 형제 싸움에서 패배한 원담은 결국 업에서 평원까지 쫓겨나게 되는데, 심배의 조언을 받은 원상이 원담을 아예 무너트릴 작정으로 평원까지 쫓아가서 원담을 포위하자 마지막 남은 장수인 잠벽을 보내지만 잠벽이 여광에서 한 칼에 당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원담은 이대로 끝이냐고 당황하지만, 곽도가 조조에게 항복하여 그에게 업을 치게 한 뒤 조조가 원상을 격파하면 그 틈을 타 지친 조조군을 쳐서 업을 가로채고 천천히 천하를 도모하자고 제안하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여겨 그 제안을 수용했고, 신비를 조조에게 보내서 지원을 요청하게 했다.

조조가 지원 요청을 승락하여 군을 기주의 업으로 돌리자 원상은 빠르게 업으로 회군하게 되었고, 원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평원에 원상이 남겨둔 여광, 여상을 꼬드겨 회유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렇게 포섭한 여씨들을 조조의 원상 토벌군에 잠입시켜 조조가 원상을 치면 조조의 뒷통수를 치게 했으나, 조조가 그 여씨들을 재포섭하여 원담의 계획이 조조에게 전부 까발려지게 됐다.

유성 전투 편에서는 조조가 업을 함락시키며 원상 세력을 궤멸시키자 사전에 계획했던 대로 조조의 뒤를 치려 하지만 이미 여씨 형제는 조조 쪽으로 전향한 뒤였기에 역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고 남피로 도주했고,[2] 조조가 직접 남피를 공략하게 되면서 도망치다가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원소 사후의 큰 틀에서 비중이 낮은 하동 전투를 순전히 마초 띄워주기용으로 3화에 걸쳐 연재한 것을 빼면 조조의 하북평정은 사실상 3화에 전체 압축되어 진행된 만큼 비중은 잉여로 전락했고 결국 한 컷만에 죽는다.

생전 원소에게서 폐출된 사실은 언급되지 않으나, 이 점이 지적되자 최훈은 단행본에서 이를 언급하며 적극적으로 부정하였다. 심배가 쓴 글에서 원담 폐출의 내용을 언급함을 들어 원상 진영의 사람인 심배의 발언이니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에 더해 구주춘추의 내용을 인용하며 원소가 자식들의 재능을 살펴보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원담을 후계에서 배제하려 했다는 뉘앙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앞뒤도 맞지 않으며, 원담 또한 청주를 평정하면서 후계자로서 결함을 보인 바가 없다는 것이 것이 주장의 근거다.

하지만 원담의 폐출 사실은 심배의 글과 별개로 후한서와 자치통감의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고, 한번만 언급된게 아니라 원담 진영의 인사인 곽도와 신평의 발언을 통해서도(이를 심배 탓으로 돌려 원담을 부추기고 있긴 하지만) 재차 확인되기에 무작정 심배의 말이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심배의 발언이라 해서 원담의 폐출 자체를 부정하고 원소 발언의 의도를 자식들의 능력 확인이란 문면 그대로 해석해 원소는 원담을 배제한 적이 없다고 보는 것도 기본적인 전거가 잘못된 추론이다. 원소의 의도가 먼 미래의 후사 문제보다는 당장 원씨 일족의 족벌경영을 통한 권력강화에 있었다고 본다면 후사 문제를 일단 원담 폐출이라는 미봉책으로 마무리짓고 원담을 포함한 자식, 조카들로 외주를 관리하게 하는 것은 앞뒤가 어긋나는 판단이 아니다.

또한 최훈은 원담이 후계자로서 어떤 결함도 보인 바가 없어 원소의 미움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구주춘추에서 원담이 화려하게 청주를 평정하는 부분만 인용했는데, 원담은 청주를 통치하며 막장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심지어는 심배의 문서 조작을 거론하며 피장파장이란 식으로 요지를 흐리기까지 했다.


[1] 봉기는 원담파가 아니었지만 해당 시점에서는 조절역으로 원담에게 와 있었다.[2] 신야 전투 편에서 밝혀지는 바에 의하면, 이 때 신평에게 막말을 퍼부어서 홧병이 걸려 죽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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